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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니까, 괜찮아
메리 크리스마스 김독자 컴퍼니

2018.12.24
매우 의식의 흐름대로 쓴...
행복한 크리스마스 되세요 *v*











    쾅쾅쾅쾅.
    현관문을 거세게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미친, 뭐야. 머리가 띵하고 울렸다. 이어서 들려오는 초인종 소리. 딩동. 딩동딩동. 아니 시발 미친, 뭐 하는 짓이야? 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서 현관으로 향했다. 문고리에 손을 얹기도 전에 왁자한 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아, 밀지 마요!”
    “뭐야? 왜 이렇게 안 나와? 진짜 기절한 거 아냐?”
    “아 씨바 부술 수도 없고…….”
    이게 대체 뭔 상황이다냐.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잠금을 풀었다. 동시에 현관문이 휙, 열리더니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행여라 깔릴 세라 얼른 몸을 뒤로 피했기에 망정이지, 잘못했으면 그대로 햄버거가 될 뻔했다. 지나치게 익숙한 얼굴들. 나는 어이가 없어 벽을 짚고 선 채 입을 열었다.
    “아니, 저기. 이게 무슨……”
    “아! 아저씨!”
    “뭐임? 존나 멀쩡한데?”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은데요. 괜히 왔나?”
    “좀 비키지. 들어가게.”
    뒷편에서 으르렁대는 목소리가 울리자 그제야 일행들이 현관을 넘어 집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니, 저기요. 누구 맘대로 들어오는데요? 뭐라 반박할 새도 없이 물밀듯이 들이닥치는 사람들을 보고 헛웃음을 흘렸다. 시발, 기운이 없어서 화도 못 내겠네. 하여간 대책없는 사람들이다. 나는 흐느적거리며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독자 씨 집은 처음 와봅니다……”
    “나도나도! 의외로 멀쩡하게 하고 사는데?”
    그럼 뭐 곰팡이라도 피고 있을 줄 알았냐, 이지혜. 나는 속으로 궁시렁거리며 벽에 기대 섰다. 왁자한 소란에 골이 다 울려 끙, 소리를 내고 있자니 누군가 내 곁에 다가와 섰다.
    “독자 씨. 괜찮으세요? 역시 아직 안 나으신 거죠?”
    유상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나는 애써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쩐 일로…… 아니, 다들 어떻게 알고 왔답니까?”
    “아, 그건…….”
    유상아가 미안한 듯 눈꼬리를 조금 늘어뜨리더니 코트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화면을 이리저리 만지더니 카■오톡 화면을 보여준다.

독자 씨 오늘도 결근이에요.
많이 아프신 것 같은데...

이지혜
헐 아저씨 비리비리하더라니 아플줄알았다



    뭐 인마.

신유승
우리 아저씨 아파요???

안돼 병문안 가야돼 저 오늘 야자쨈


    역시, 유승아. 너밖에 없다. 근데 야자는 째면 안 되지.

한수영
ㅋㅋㅋㅋㅋㅋ김독자 아프다고?

구경가야겠다 ㅋㅋㅋ


    한수영 이 자식…….

김남운
메뚜기남 아프다고??
감기임? ㅋㅋㅋㅋㅋ



    이 새끼는 하여간 언제쯤 형이라고 부를 생각인지.

정희원
크리스마스인데 아파서 어떡해요 서럽겠다

저희라도 가서 놀아드릴까요


    희원 씨……!
    그 뒤로 조금 더 이어지는 채팅을 보고 있자니, 결과적으로 다 같이 병문안을 오기로 결정된 모양이었다. 아니, 저기요. 크리스마스인데 다들 약속 없어요? 그렇게 묻자, 내 팔을 끌어안고 있던 신유승이 말했다.
    “아저씨가 더 중요해요!”
    녀석. 기특한 소릴 다 하네. 나는 웃으며 신유승의 머리를 조금 쓰다듬어줬다. 그걸 본 이길영이 반대편 팔에 달라붙는 바람에 몸이 양쪽으로 흔들거렸다. 얘들아. 나 토할 것 같거든. 이것 좀 놔줘……. 내 얼굴이 점점 창백해지는 것을 눈치챈 정희원이 두 아이들을 떼어내주었다.
    “독자 씨. 일단 가서 누우세요. 안 되겠어요.”
    “아니, 그래도 손님들이 왔는데 누워 있을 순……”
    “저희는 병문안 온 거예요. 손님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런 것 치곤…… 저기 술병을 박스로 들고 온 분이 계신뎁쇼? 이현성이 들어오며 내려놓은 소주와 맥주병이 든 박스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정희원의 단호한 말에 결국 나는 방으로 다시 들이밀어졌다. 뭔 상황이야 이게. 내 집인데요?
    “자, 누우세요.”
    강제로 침대에 눕혀졌다. 희원 씨, 원래 이렇게 힘이 셌습니까……. 입 밖으로 차마 뱉지 못한 채 이불을 목까지 뒤집어씀 당했다. 옆에서 유상아가 물었다.
    “독자 씨. 식사는 하셨어요? 약은요?”
    “…….”
    “얼씨구.”
    정희원이 눈을 매섭게 뜨고 노려본다. 아, 아니, 나라고 먹기 싫어서 안 먹은 건 아니고……. 기절하듯이 자버린 탓에 못 먹은 거란 말입니다. 억울한 시선을 던지자 신유승이 내 손을 꼭 붙잡았다.
    “아저씨. 걱정 마세요. 제가 죽 끓여올게요.”
    “……네가?”
    불안감이 엄습했다. 내 기억으로 신유승은…… 요리와는 아주…… 담을 쌓은…….
    “제가. 죽. 끓여. 올게요.”
    “으, 으응…… 그, 그래…….”
    저 박력은 대체 뭔가. 나는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방긋 웃은 아이가 도도도 달려 방을 나갔다. 저렇게 좋아하는데 좀 맡겨도 괜찮겠지……. 아니 사실 안 괜찮을 것 같긴 한데……. 옆에 서 있던 한수영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김독자 약골 자식. 시나리오도 다 깬 놈이 감기가 웬 말이냐, 감기가?”
    “좀 닥쳐.”
    “욕할 기운은 있나 보네. 멀쩡한 듯?”
    빡치게 하지 마……. 씩씩거리며 노려보고 있자니 유상아가 내 이마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가 떼었다.
    “열이 좀 있는 것 같은데…… 집에 약은 있으시죠?”
    “…….”
    “와. 아저씨 진짜 안 되겠네.”
    어느새 들어와 있던 이지혜가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 아니, 진짜 억울하다. 마침 약이 똑 떨어진 거거든……. 하지만 변명할 틈도 없이 옆에서 이설화가 고개를 내밀었다.
    “걱정 마세요, 독자 씨.”
    아, 그렇지. 여기 의사가 있잖아. 갑자기 세상이 확 개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기대감에 찬 눈빛으로 이설화를 바라보았고, 그녀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감기는 약 먹으면 7일, 안 먹으면 일주일 후에 낫는답니다.”
    “…….”
    의사가 그런 소리 해도 돼? 희망의 빛이 사그라든다. 젠장. 감기로 이틀을 내리 앓아누운 사람한테 할 말입니까.
    “메뚜기남 그러다 골로 간다. 그러게 평소에 좀 잘 먹고 다니지.”
    “김남운, 입, 입!”
    이지혜를 따라 들어와 알짱대던 김남운이 다시 이지혜에게 입이 막혀 끌려나갔다. 뭐 하자는 거야. 정신이 하나도 없다. 정희원과 유상아가 사람들을 문 밖으로 밀어냈다.
    “저희도 나가 있을게요. 좀 주무세요. 죽 다 끓이면 약이랑 같이 가져올게요.”
    “……고맙습니다.”
    기운없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미소를 지은 두 사람도 문을 닫고 나갔다. 이제야 좀 조용하군. 하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정말이지, 행동력 하난 끝내주는 사람들이다. 좋은 사람들. 가슴이 조금 뭉클해졌다. 나는 눈을 깜빡거리다가 이내 까무룩 잠이 들었다.
    ……는 개뿔.
    “아! 아! 탄다!”
    “미친, 신유승 또 냄비 태우냐?!”
    “제가 끄겠습니다!”
    문 밖에서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려온다. 아니 이거 괜찮은 거야? 나 안 나가봐도 괜찮은 거냐고?
    “독자 아저씨 집 털자!”
    “와, 존나 기대된다. 메뚜기남의 야동 취향을 알아볼 수 있겠군. 크킄…….”
    뭐, 시발? 그건 안 된다. 벌떡 일어나려다가 컴퓨터에 잠금이 걸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고개를 베개에 묻었다.
    “어디 바퀴벌레 안 나오나?”
    “미친! 뭘 찾는 거야 이길영!”
    길영아…… 제발……. 나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병문안을 온 건지 놀러 온 건지. 역시 후자인 것 같다. 나는 결국 자는 것을 포기하고 밖으로 나갔다.
    “독자 씨, 누워 있으시지 왜……”
    “잠이 안 옵니다.”
    대충 대답하며 비척비척 걸어가 식탁 의자에 앉았다.
    “아저씨, 또 오징어 되면 안 돼…….”
    “뭔 헛소리야.”
    “방금 존나 오징어 같았단 말이야.”
    이지혜의 헛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식탁에 찰푸닥 엎어졌다. 탄내가 조금 나는군. 유승아……. 난 역시, 내 화신인 너는 믿지만 너의 요리 실력은 믿지 않기로 했다……. 젠장. 죽 못 먹는 건가. 한숨을 푹 쉬는데 옆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다.
    “……?”
    고개를 들어보니 유중혁이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엥? 내 집에 앞치마가 있었나? 나도 몰랐던 사실이다. 저걸 어디서 찾았대? 분홍색 꽃무늬 앞치마를 두른 유중혁이 나를 매섭게 쳐다봤다.
    “뭘 보나.”
    아, 거 까칠한 새끼……. 하지만 꽃무니 앞치마를 한 유중혁은 다시 없을 진귀한 모양새였기 때문에 나는 마음껏 웃었다.
    “아, 유중혁. 너 그거 개 잘 어울려.”
    “…….”
    눈썹을 꿈틀대는 유중혁의 얼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금 더 박장대소해주었다. 왜냐? 난 환자니까 좀 웃어도 된다. 저 놈은 희원 씨나…… 하여튼 누가 막아줄 테니까. 때마침 한수영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유중혁을 존나 놀렸다. 겁나 상쾌하다. 한수영이 도움이 될 때도 다 있네. 나는 키득거리며 다시 식탁에 고개를 묻었다. 아, 웃었더니 머리 아파.
    “아저씨이…….”
    유승이가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내 손을 붙잡았다. 나는 웃으며 그 손을 조금 토닥여 주었다.
    “괜찮아. 유중혁이 저래보여도 요리는 잘 해.”
    “그래도…… 제가 직접 해 드리고 싶었는데…….”
    “아니, 그건 좀.”
    나도 모르게 정색하자 신유승이 입술을 세모꼴로 만들더니 휙 다른 곳으로 가 버렸다. 아, 거, 좀 미안하긴 한데…… 요리는 진짜 아니다. 너에겐 다른 길이 있을 것이다. 나는 굳은 믿음을 다지며 눈을 조금 감았다. 식탁의 서늘한 감촉이 기분 좋았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약 사왔습니다!”
    현관문이 벌컥 열리고 이현성이 걸어들어왔다. 그 모습이 꼭…… 심부름 하고 와서 칭찬해 달라는 강아지 같은…… 아니, 그보다 문 어떻게 따고 들어온 거야. 비밀번호 있잖아?
    “유중혁이 알던데?”
    “미친 새끼. 우리 집 도어락 번호를 니가 왜 알아?”
    “알면 안 되나?”
    뭔 헛소리야. 눈을 부라렸으나 유중혁은 깔끔히 무시하고 야채를 썰기 시작했다. 탁탁탁탁. 도마를 두드리는 칼 소리가 기분좋게 울렸다. 고작 야채를 써는 데 손놀림이 저렇게 현란할 건 뭔가. 하여간 간지나는 새끼. 나는 입을 헤 벌리고 그 뒷모습을 조금 구경했다.
    “야, 김독자. 약 먹어라.”
    “엥. 빈 속에 먹으면 안 되는 거 아냐?”
    “이건 먹어도 괜찮아요.”
    약을 살펴보던 이설화가 방긋 웃으며 포장을 뜯었다.
    “평소에 위장이 약하신 편인가요?”
    “……예, 조금.”
    “아. 그럼 안 되겠다.”
    냉큼 포장에 약을 다시 집어넣는다. 아니, 뭔데 대체. 그 때 뒷편에서 김남운과 이길영의 함성 소리가 들렸다.
    “미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
    “형! 실망이에요!”
    뭔 소리야? 잠깐, 근데 저거 내 방에서 들리는 소리 같은데. 언제 들어갔어? 두 사내놈들이 허겁지겁 뛰쳐나와 내 어깨를 붙잡았다.
    “형!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뭐가.
    “메뚜기남…… 그래도 이것만큼은 믿었는데…….”
    넌 또 뭐가.
    이길영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말했다.
    “침대 밑에 야한 거 숨겨두는 거랬는데…….”
    “…….”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침대 밑에다 그런 걸 숨기냐. 어이가 없어 쳐다보니 김남운이 시선을 받았다.
    “아니, 메뚜기남 나이 정도면 침대 밑에 숨길 법하지 않나? 그 시절에 살던 사람 아냐?”
    아, 빡치는데 맞는 말이라 반박도 못 하고.
    “김남운, 너 언제까지 독자 씨 메뚜기남이라고 부를래.”
    정희원이 엄한 목소리로 말하자 김남운이 잠시 움찔했다.
    “아니 근데 이미 호칭이 입에 붙어서……”
    “쓰읍. 그래도 안 되지. 제대로 불러.”
    “크윽…….”
    정희원의 뒷편으로 불꽃천사의 그림자가 아른거리는 것처럼 보인 것은 착각이었을까…… 그래. 감기 때문에 헛것을 보는 게 틀림없다. 김남운이 눈을 굴리다가 나를 보고 말했다.
    “……아저씨.”
    아니 시발 김남운……. 너 나랑 몇 살이나 차이 난다고……. 빡친다. 이지혜 너는 뭘 또 고개를 끄덕여. 이리저리 투닥거리고 있자니 코끝에 맛있는 냄새가 와닿았다. 오, 벌써 다 됐나.
    “중혁 씨. 엄청 맛있는 냄새가 납니다.”
    옆에서 구경하던 이현성이 감탄한 목소리를 냈다. 나도 조금 기대가 된다. 이 녀석이 하는 요리는 결코 실패하는 법이 없다. 죽이라고 할지라도 겁나게 맛있을 게 틀림없었다. 고개를 들고 눈을 빛내자 유중혁이 찬장을 열어 그릇을 꺼내더니 죽을 퍼 담았다. 달칵. 내 앞에 먹음직스러운 야채죽과 수저가 놓였다.
    “오…….”
    “먹어라.”
    그러면서 어떻게 찾아낸 건지 플라스틱 용기들을 척척 꺼내 그 안에 죽을 나눠담기 시작한다. 저런 게 우리 집에 있었나. 나는 어쨌든 배가 고팠으므로, 눈앞에 놓인 죽을 기꺼운 얼굴로 바라봤다.
    “잘 먹겠습니다.”
    코끝이 조금 찡했다. 이런 인사를 하고 밥을 먹어본 지가 얼마만이더라. 나는 숟가락을 들어 죽을 조금 떠 입 안에 넣었다. 딱 먹기 좋을 정도로 따뜻하게 식혀진 온도다. 하여간 귀신같은 녀석, 안 보는 것 같아도 다 알고 있다니까. 물론 죽은 매우 맛있었다.
    “야, 너는 무슨 죽을 끓여도 맛있냐.”
    “고마우면 얼른 낫기나 해라.”
    “고맙다고 안 했거든?”
    그보다는 얼른 나으라는 말이 더 신기하긴 했지만. 눈을 들어 쳐다보자 팔짱을 끼곤 눈살을 찌푸린다.
    “어쨌든 번거롭게 만들지 말란 소리다.”
    “아, 예. 그러시겠죠.”
    나는 실실 웃으며 녀석을 바라봤다. 고맙다, 그렇게 말하니 앞치마를 벗어내며 고개를 돌려버린다. 부끄럼 타냐, 중혁아. 여러분, 우리 중혁이가 부끄럼을 다 탑니다. 속으로 웃으며 죽을 조금 더 떠서 먹었다.
    “독자 씨, 잔 좀 쓸게요.”
    “예? 아, 그러세요.”
    정희원이 잔을 한아름 가지고 거실로 향한다. 뭐야? 거실을 바라보니 언제 준비한 건지 술판이 벌어지고 있다. 뭔데? 진짜 병문안 아니고 놀러 온 거였냐고? 바닥에 깔린 과자와 술병들을 보며 입을 벌리자 유상아가 조금 웃었다.
    “다들 크리스마스라 들뜬 모양이에요.”
    아, 그래. 그러고 보니…… 크리스마스였지.
    나는 고개를 들어 베란다 밖을 쳐다봤다. 어둑해진 하늘 아래 불빛이 반짝거린다. 귀를 기울이면 캐롤이 들려올 것만 같은 기분. 요즘은 예전처럼 거리에 캐롤을 틀어주지는 않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흥겨운 캐롤이 들려왔다. 올 아이 원 포 크리스마스 이즈 유…… 대단히 익숙한 곡조. 블루투스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듣고 있자니 조금 기분이 들떴다. 죽을 다 먹고 약까지 먹고 나니, 몸도 제법 괜찮아진 듯한 기분이 드는 것도 같고. 나는 빈 그릇을 싱크대에 담가놓고 일행들 사이에 끼어 앉았다.
    “독자 씨?”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괜찮아요. 술 먹어야 빨리 낫는다는 소리도 있잖아요?”
    맞은편에서 이설화가 쿡쿡 웃었다. 아, 뭐요. 댁은 약 먹어도 안 먹어도 똑같다고 했잖습니까. 나는 흠흠 목을 가다듬으며 내 몫의 잔에 술을 채웠다.
    “자, 그럼 건배해요!”
    “사실 우리끼리 하려고 했는데. 이왕 이렇게 됐으니까, 독자 씨가 건배사라도 하시겠어요?”
    “제가요?”
    정희원이 빙긋 웃었다.
    “우리는, 김독자 컴퍼니잖아요?”
    그 말에 조금 기분이 묘해졌다면…… 이상한 일은 아니겠지. 나는 눈을 접어 웃었다.
    “자, 그럼…… 김독자 컴퍼니.”
    내가 잔을 들어올리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이런 건 역시, 조금 낯설고 쑥스럽다. 하지만 괜찮았다. 이 사람들은, 언제나 내 편인 사람들이니까.
    “우리는, 세계를!”
    “구할 수 있다!”
    까르르 웃는 소리와 함께 잔들이 엉망으로 맞부딪혔다. 소맥을 목으로 넘기니 금방 얼큰하게 술기운이 올라왔다. 아, 거 누가 말았는지 비율 완벽하게 잘 말았네. 한쪽 무릎을 세우며 고개를 기대고 사람들을 바라봤다. 우리 회사는 가족같은 분위기를 추구하며……. 그런 말이 문득 머릿속을 스쳤다.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그들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고맙습니다. 모두, 여기 있어줘서.



    으, 내 머리……. 역시 무리였던 것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독자 씨. 괜찮아요?”
    유상아와 신유승의 걱정스런 얼굴이 나를 향했다. 괜찮다고 말해보려 했으나…… 역시 더 버티긴 힘들 것 같다. 약기운인지 술기운인지 조금 졸린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작게 하품을 하며 고개를 까딱였다.
    “좀 자야겠습니다.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무슨 소리세요. 얼른 낫는 게 우선이죠.”
    부축해 드릴까요? 그 말에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일어나려다가 발이 꼬였다. 신유승과 유중혁이 양쪽에서 내 팔을 턱 잡았다.
    “아저씨이……. 얼른 나아야 돼요…….”
    금세 글썽해지는 신유승을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다른 쪽 팔을 붙잡고 있던 유중혁이 나를 다시 제대로 일으켜세웠다.
    “야, 괜찮아. 걸을 수 있다, 인마.”
    “…….”
    유중혁은 미덥잖은 표정이었으나 내 팔을 놓아주었다. 짜샤, 진짜거든. 난 지금 니 손가락이 여섯 개인 것도 확실히 보인다. 나는 비척거리며 방으로 걸어갔다.
    “독자 씨……”
    “내가 가지.”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대충 풀썩 엎어지니 유중혁이 따라들어왔다. 아, 거 괜찮다니까.
    “야, 중혁아. 나 진짜 괜찮거드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으나 유중혁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내 몸을 반 바퀴 굴려 천장을 보게 하더니 목과 무릎 뒤로 팔을 넣어 안아올린다. 미친! 야! 미친 새끼야! 어버버하며 녀석을 쳐다봤으나 유중혁은 그대로 나를 베개 위에 똑바로 눕히고 이불을 펼쳐 몸 위로 덮어줬다. 하여간 좀, 말부터 하고 행동하면 안 되냐.
    “…….”
    “…….”
    짧은 침묵이 오갔다. 일어서 있는 녀석의 높다란 고개를 올려다보자 한숨을 푹 쉬더니 침대 옆에 걸터앉는다.
    “김독자.”
    “엉.”
    “……아니다.”
    뭐야, 싱거운 놈. 나는 픽 웃으며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봤다. 눈은 안 오려나,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아니, 이제 곧 크리스마스인가? 몇 시더라. 눈을 깜빡이고 있자니 나를 바라보던 유중혁이 내 이마에 손을 얹었다.
    “……유중혁?”
    열이라도 확인해 본 것인지 다시 손을 떼어낸다. 인마, 너 체온 높잖아. 내 이마보다 네 손이 더 뜨거운 것 같은데. 아, 시발. 누우니까 갑자기 좀 아픈 것 같기도 하고. 흐릿하게 눈을 감았다 뜨며 유중혁의 잘생긴 얼굴을 쳐다봤다.
    “김독자.”
    “으응.”
    “아프지 마라.”
    뭐? ……방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나는 입을 조금 벌리며 멍하니 녀석의 눈을 들여다봤다. 미친 건가? 아닌데, 멀쩡한데.
    “……너도 감기 걸렸냐?”
    “뭔 헛소리지.”
    “아니, 안 하던 소릴 하니까.”
    내 말을 듣더니 피식 웃는다. 뭐야? 미친? 웃는다고? 내가 혹시 너무 아파서 헛것이 보이나? 눈을 세차게 깜빡였으나 여전히 유중혁은 내 옆에 앉아 있었다.
    “김독자.”
    “…….”
    “더럽게 눈치없군.”
    이 자식이 환자한테 왜 욕을 하고 난리야……. 울컥해서 뭐라고 하려는 찰나 녀석의 몸이 내 쪽으로 기울어졌다. 나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뭐야? 뭔데? 이마가 살짝 맞닿았다. 더운 숨결이 얼굴을 간지럽힌다. 나는 숨도 쉬지 못한 채 그대로 굳었다.
    “김독자.”
    “…….”
    “나는……”
    그 순간, 바깥에서 탄성 소리가 들려왔다.
    “눈 온다!”
    “와, 눈 와요!”
    “대박…… 화이트 크리스마스네…….”
    유중혁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몸을 일으켜 창 밖으로 시선을 향했다. 나도 얼떨결에 녀석이 바라보는 창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하얀 눈송이가 흩날려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삐빅. 디지털시계가 12시를 넘기며 작은 소리를 냈다. 잠시 그대로 있던 유중혁이 다시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물끄러미 그 얼굴을 바라보자, 유중혁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렇게 말하고 몸을 일으켜 문을 닫고 사라지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심장께를 내리눌렀다. 젠장……. 감기가 낫기는 커녕, 더 심해질 것 같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는데.
    작은 캐롤 소리가 문 틈새로 새어들어왔다. 나는 조용히 입을 열어 속삭였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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