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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밤의 약속
생일 축하해, 유중혁

2019.08.02
입덕 후 첫 유중혁 생일 축하글











    더워.
    덥고 습한 공기를 헤치고 한참을 걸어왔더니 정말이지 죽을 맛이었다. 나는 소파에서 한 바퀴 구르면서 바닥으로 팔을 축 늘어뜨렸다. 손끝에서 스마트폰이 달그락 굴러 바닥에 엎어졌다. 아, 지쳐서 주울 힘도 안 난다. 대한민국의 여름이란 늘 이런 식이다. 28년 플러스 알파의 인생…… 아니, 이제 인정하자. 서른 해가 넘는 시간을 이 지옥불반도에서 보내면서 얻은 교훈은 하나뿐이다. 여름엔 어딜 나가서는 안 된다. 나갔다간 반건조 오징어가 되기 십상이다. 물론 날씨가 엉망인 것은 겨울도 마찬가지지만.

    “야, 중혁아. 에어컨 온도 좀 더 낮춰줘…….”
    “가만히 있으면 금방 시원해진다. 기다려.”

    아, 저 깐깐한 새끼. 어차피 세계도 한번 망했다가 되살아난 마당에 전기세가 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지만 유중혁은 내 말을 전혀 들어줄 기색이 아니었다. 곁눈질로 에어컨 리모콘의 행방을 찾았지만 정확히 유중혁의 시야 안에 들어가 있었다. 용의주도한 놈. 결국 나는 포기하고 팔을 뻗어 스마트폰을 집어들고 꿈틀대며 몸을 위로 옮겼다. 곧 정수리에 딱딱한 감촉이 느껴졌고, 슬쩍 머리를 들어 유중혁의 단단한 허벅지에 폭 올리자 녀석이 눈을 가늘게 떴다. 내려다보는 시선이 영 서늘한 것이 어째 눈만 마주치고 있어도 기온이 내려가는 것 같다. 뭐…… 잘생기긴 했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각도에서도 전혀 빛이 바래지 않는 눈부신 얼굴을 잠시 감상해준 뒤 모른 척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눈길을 거둔 유중혁이 내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넘기는 것이 느껴졌다. 제법 기분 좋은 손길이었다.
    스마트폰의 액정을 눌러 일정을 확인했다. 곧 휴가철인데 다들 어디 놀러라도 가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캘린더를 뒤적이는데 문득, 몹시도 익숙하고 눈에 띄는 일정 하나를 발견했다. 8월의 세 번째 날에 동그랗게 쳐진 빨간 사인, 그리고 그 아래 적힌 글자 다섯 개.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이 일정이…… 아직도 살아있네.
    아주 오래 전부터 챙겨온 기념일이었다. 물론 언제나 나 혼자서 일방적으로 챙긴 것이지만. 오랜 시간 동안 이 날은 내 낡은 1년치 달력에서 가장 밝게 칠해진 날이었다. 처음 스마트폰을 사고 캘린더 앱에 이 일정을 등록하면서 매년 알림을 설정했던 것도 기억이 났다. 그게, 아직도 남아 있었구나. 시간 감각이 흐릿하긴 하지만, 멸망을 맞이했던 최근 몇 년간은 확실히…… 신경 쓸 겨를이 없기는 했다.
    슬쩍 눈을 들어올려 유중혁의 얼굴을 쳐다봤다. 특유의 무심한 표정으로 TV의 채널을 돌리고 있는 녀석. 그 얼굴을 보며 나는 짧은 고민에 빠졌다. 그러니까…… 당사자가 있는 생일 축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역시 여름엔 바다인데…….”
    “아냐, 산이지.”
    “아닌데요? 계곡인데요?”

    뒷자리에서 일행들이 최고의 피서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그래봤자 계곡으로 가는 중이면서 뭘 저렇게 열심히 얘기하는지 모를 노릇이다. <김독자 컴퍼니>의 여름 휴가지가 계곡으로 정해진 것은 사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결과였다. 산을 주장한 것은 한명오와 장하영이었는데, 한명오가 막상 주장해놓고선 자기는 딸과 함께 단 둘이 휴가를 보낼 것이라며 쏙 빠져나가 버린 탓에 장하영 혼자만 표를 행사하게 되었다. 그렇게 산은 기각. 다음으로 바다는 나와 이지혜가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일단 이지혜는 바다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을 테니 이해가 갔다. 그리고 나는…… 더운 것도 싫고, 딱히 수영에 취미가 있지도 않고. 무엇보다 사람이 많을 것 같은 장소는 딱 질색이었다(휴가철에는 어디든 사람이 많다는 것은 차치하자). 유중혁도 웬일로 사람이 많으면 귀찮다는 말을 얹어준 덕에 바다도 기각되었다. 유중혁의 말에 정희원과 한수영이 저거 애인 편 드는 것좀 보라고 쑥덕댔지만 나는 코웃음을 쳤다. 이놈은 그렇게 살가운 자식이 아닙니다. 보나마나 진짜로 자기가 귀찮아서 반대한 거다.
    어쨌든, 그러고 나니 남은 것은 계곡뿐이라서 계곡으로 결정되었다. 도심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도 나는 대찬성이었지만 일행들은 어떻게든 어딘가에 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뭐, 나도 이런 식으로 휴가를 보내본 경험이 없었으니까 조금…… 기대가 되기는 했다. 솔직히.
    한수영이 운전한 11인승 버스가 미끄러지듯 주차장에 들어섰다. 세계가 멸망했던 마당에 휴가지에서 펜션을 운영하며 바가지 요금을 처먹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있다. 그랬다. 어떻게든 요금을 깎기는 했지만 비수기보다는 월등히 비싼 요금으로 빌린 펜션은 다행히도 제 값만큼은 넓고 쾌적했다. 얼른 가방을 풀어놓은 아이들이 신나서 뛰어다녔다. 기운 좋네.

    “계곡에 왔으면 일단 물에 들어가야죠?”
    “아…… 뭐. 그러죠.”

    역시 그 정도는 해줘야 휴가 온 기분이 나겠지. 나는 여분의 옷을 챙겨온 것을 확인하고선 일행들과 함께 계곡으로 나왔다. 얕게 흐르는 맑은 물과 계곡 틈새로 불어오는 바람에 놀랍게도 여름이 아닌 것처럼 시원했다. 이래서 다들 계곡 계곡 하는 거구만. 아이들이 제일 먼저 물로 뛰어들었다. 찰방거리며 물을 튀기기 시작하는 것이 아주 신난 모양이었다.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더라면 좀 더 자주 데리고 다닐 걸 그랬나. 흐뭇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자니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씩 계곡에 발을 담갔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아, 차가울 것 같은데.

    “……앗, 차가워!”
    “야, 김독자. 빼지 말고 얼른 들어와!”

    한수영 이 자식……. 머리에 물이 끼얹어진 채 노려보는데 옆에 있던 정희원이 킥킥 웃으며 물을 한 움큼 떠서 내게 뿌렸다. 으악! 나는 미처 피하지도 못하고 그걸 그대로 뒤집어썼다. 으, 차가워……. 애초에 체근민 1이었던 몸으로 정희원의 날렵한 움직임을 피할 수는 없었다. 나는 신난다고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는 정희원과 한수영을 보며 팔을 걷어붙였다. 아예 물을 좀 맞고 나니 거리낄 것이 없어졌다. 다 죽었어. 당장 발을 담그려다가 흘긋 내 뒤에 서 있던 유중혁을 바라보았다. 팔짱을 끼고선 우수 어린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흠.

    “야, 유중혁.”
    “…….”
    “이리 와봐.”

    나는 귓속말을 하는 척 손짓을 하며 발돋움을 했다. 내 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이는 유중혁의 어깨를 이때다 싶어 팡 하고 계곡 쪽으로 밀쳤…… 밀쳤…….

    “야, 이럴 땐 모른 척 좀 밀려나 주면 안 되냐?”
    “방금 뭔가 했나? 건드린 줄도 몰랐군.”

    이 새끼가……. 나는 씩씩대며 유중혁을 한껏 노려봤지만 유중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 자식, 힘으로 상대가 안 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꿈쩍도 안 할 일인가. 그것까지 감안해서 진짜 세게 밀쳤는데? 내가 이렇게 힘이 없었다고? 이놈을 어떻게 물에 밀어넣지, 잠시 짱구를 굴리고 있는데 해결책은 의외의 곳에서 튀어나왔다.

    “중혁 씨, 여기까지 와놓고 설마 가만히 구경만 할 셈은 아니죠?”
    “설마. 아니겠지, 사부.”
    “그래도 아직 망설이는 것 같은데. 우리가 좀 도와줄까?”

    헉……. 정희원과 이지혜, 그리고 한수영 세 사람에게서 넘실넘실 피어오르는 기운에 나도 모르게 주춤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손 여섯 개가 뻗어와 유중혁을 끌어당겼다. 제아무리 유중혁이라도 ‘저’ 셋의 힘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었는지 휘청하다가 결국 물에 발을 담갔다. 낄낄거리는 웃음소리를 배경으로 유중혁이 스팀 오른 표정을 하며 머리를 쓸어올렸다. 혼자서 또 화보 찍고 앉았네. 이윽고 셋이서 연신 뿌려대는 물을 맞은 유중혁의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그마저도 정말로 모 잡지의 여름 화보라도 찍으러 온 것 같은 꼴이다. 결국 뚜껑이 열린 유중혁이 본격적으로 걸음을 옮겼다. 너희는 오늘 다 죽는다, 그런 소리를 지껄이자 세 사람이 끼약 소리를 지르며 도망쳤다.
    나는 새삼스럽게 <김독자 컴퍼니>의 주 화력 삼인방을 돌아보며 몸을 떨었다. 그 유중혁마저 물에 들어가게 만들다니. 무슨, 물귀신 모양의 이계의 신격이라도 본 것 같은 기분이다. 저기에 걸린 게 나였으면 저 자식처럼 서 있기는 커녕 머리부터 물에 풍덩 빠졌을 것이다.

    “어디 한눈을 팔아요?”

    물론 다음 차례는 나였다…… 젠장.



    한참이나 물놀이를 하고선 모두 쫄딱 젖은 꼴로 물에서 나왔다. 아, 몇 시간 놀지도 않았는데 완전히 녹초가 된 것 같다. 물론 재밌었지만……. 이렇게 말하긴 조금 쑥스럽지만서도, 어쨌든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물놀이를 한 거였으니까. 몸은 피곤했지만 기분만은 몹시 좋았다. 정희원과 이지혜가 머리에서 물을 짜내며 걸어갔다. 유상아는 곱슬머리를 털어내는 장하영에게 챙이 넓은 모자를 씌워주고 있었고, 이현성이 아이들을 번갈아 목마를 태워주고 있었다. 현성 씨, 좋은 아빠가 되실 것 같군요. 흐뭇한 광경에 빙긋 웃고 있는데 갑자기 이현성이 내 쪽을 보며 화들짝 놀란 얼굴로 아이들의 눈을 가렸다. 뭐야? 뭔데? 곧이어 다른 사람들마저 어머머, 남사스러워라, 따위의 소리를 지껄이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뒤를 돌아봤다. 거기에는…… 물에 젖은 티셔츠를 벗어 물기를 짜내고 있는 유중혁이 있었다. 그러니까, 상의를 탈의한 유중혁이.

    “아니 미친, 유중혁. 애들도 있는데 무슨……”
    “?”

    얼른 그 앞을 가리듯 막아서며 말했지만 유중혁은 전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젠장, 진짜로 영문을 모르고 있다는 걸 알아서 어이가 없다. 물론 내가 녀석을 가린답시고 선 것은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유중혁 이 자식의 몸은 나 하나로 가리기엔 역부족일 정도로 크고…… 넓고…… 아, 시발. 나도 모르게 녀석의 가슴으로 향하는-무려 <에덴> 공인 풍기문란한 가슴이니까 내가 이상한 것은 아니다-시선을 간신히 떼어놓고선 등짝을 두들겼다. 얼른 다시 입어. 얼떨결에 등짝을 맞은 유중혁이 미간을 팍 좁히며 노려봤지만 나는 꿋꿋이 시선을 맞받아쳤다. 뭐, 인마. 쳐다봐서 어쩔 건데. 결국 유중혁이 옷을 다시 입은 뒤에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 정희원이 슬쩍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독자 씨. 애인 간수 좀 잘 하세요.”

    ……이건 또 무슨 말이 뉘앙스가 이래? 어이없다는 얼굴로 돌아봤지만 정희원의 표정은 진지했다. 뭐, 반쯤은 농담이겠지. 하지만 나야말로 억울한 노릇이었다. 유중혁 저 자식이 과시하기 위해 옷을 벗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희원 씨. 아시겠지만…… 저 녀석은 외모에 신경을 1도 안 쓰는 놈입니다.”
    “허.”

    감탄인지 어처구니 없는 신음성인지 모를 소리를 흘린 정희원이 이내 납득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시나리오 클리어 할 때도 맨날 같은 옷만 입고 다녔죠. 아무리 아이템이라지만. 그리고 그나마도 더러워져도 신경도 안 쓰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1863회차에서는 더 심한 꼴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보다도 더 많이 산 회차의 녀석이니 봐 주시죠. 대충 헛소리를 하자 정희원도 헛소리 마세요, 그치만 알겠어요, 라는 얼굴을 하고선 돌아갔다. 대체 뭐람. 나는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다시 재잘거리며 펜션을 향해 걸어가는 일행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깨에 턱, 얹어지는 손길이 있었다. 돌아보자 유중혁이 무심한 눈길로 내 몸을 훑고 있었다. 뭐야, 왜 그렇게 봐. 갑자기 물에 젖어 몸에 달라붙은 옷이 몹시도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슬쩍 옷자락을 붙잡아 몸에서 떼어 놓으며 시선을 돌리자 유중혁이 다른 손으로 내 머리카락을 슥슥 빗어 넘겼다. 젖은 탓에 금방 넘어간 채로 고정된 머리카락을 빤히 바라보기에 뭘 하나 싶어서 다시 쳐다보자 이마에서 딱, 하고 불꽃이 튀었다.

    “아. 야! 갑자기 왜 때려?”
    “못생겼군.”
    “이 자식이.”

    눈썹을 역팔자로 모으며 노려보자 유중혁이 피식 웃었다. 이내 가벼운 딱밤을 때린 자리를 문질러주는 손길에 결국 나는 항복하고 말았다. 이 자식은 얼굴이 개연성이다. 저렇게 웃는데 어떻게 더 화를 낸단 말인가…… 잠깐. 나 혹시 얼빠인가. 이미 수십 번이나 한 생각이었지만 재확인을 위해 녀석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았다. 순순히 물음표를 띄우며 바라보는 시선에 나는 두 번째로 백기를 들었다. 얼굴이 개연성인 수준을 넘어서 세상의 모든 개연성을 쌈싸먹을 녀석이었다. 음, 그래. 나는 얼빠가 아니다. 이 얼굴을 보고 매료되지 않는 이가 있다면 그것이 비정상일 것이다.
    유중혁과 함께 터벅터벅 걸어 숙소로 돌아오자 어느새 저녁 시간이 가까워져 있었다. 밥! 밥 먹어요! 다들 어지간히 배가 고팠는지 밥 소리에 벌떡 일어나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계곡 휴가의 정석대로 저녁은 바베큐 파티를 벌였다. 유중혁 이 녀석은 무슨 똑같이 고기를 구워도 더 맛있게 굽는지 거의 신기에 가까운 노릇이었다. [파천검도]랑 [주작신보]도 잃어버린 녀석이 어째서 실력은 그대로냔 말이야. 나야 좋지만.
    모두가 만족스러운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설거지까지 끝내고 옹기종기 펜션 바닥에 둘러 앉았다. 한가로운 시간이 이어졌다. 누군가는 TV를 보고, 누군가는 잠시 눈을 붙이고, 누군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나는 아이들 셋이서 사이좋게 놀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감상에 젖었다. ……어째 멍청아, 바보야, 같은 소리들이 들리는 것 같았지만 그냥 잘 놀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원래 저럴 수록 사이가 좋은 거랬다.
    소진한 체력을 보충하려 잠깐 쪽잠을 잔 나는 일어난 뒤부터 계속해서 시계를 흘끔거렸다. 사실, 하루 종일 시간이 신경 쓰여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이윽고 째깍거리던 시계가 밤 11시를 가리켰고, 이현성이 방 한쪽에 쌓아둔 짐더미에서 폭죽 상자를 꺼내왔다. 상자를 풀어헤친 장하영이 아이들에게 불꽃놀이 세트를 쥐여주며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다들 손에 하나씩 폭죽을 쥐고 펜션 가까운 곳의 작은 개울로 나왔다. 큰 폭죽은 하늘로 쏴야 돼요! 아이들은 얌전히 하늘을 향해 폭죽 끝을 들어올렸다. 찰칵거리는 라이터의 부싯돌 소리와 함께 치직, 폭죽 끝을 타들여간 불꽃이 이내 점멸하며 눈부신 빛을 뿜어냈다.
    피유우웅! 퍼엉! 캄캄한 밤하늘 위로 주홍빛 불꽃이 긴 포물선의 잔상을 남겼다. 임계점에 도달해 꽃처럼 만개하는 불꽃이 마치 멸망 마지막 날과 같이 재로 흩어졌다. 그 빈자리를 이어서 쏘아올려진 불꽃이 다시 채웠다. 하늘을 수놓던 수많은 별자리들이 사라진 공백을 메우듯이.
    나는 한참이나 그 풍경을 넋을 놓은 채 바라보았다. 유성우(流星雨)가 말 그대로 비처럼 쏟아지던 밤을 기억한다. 그 별들을 모조리 땅으로 떨어뜨리던 사내의 뒷모습도. 그 환한 빗속에서 누군가가 말했었다. 이렇게, 우리들의 ‘결말’이 시작되는 거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 사내가 곧 쏘아 떨어뜨릴 나의 별자리를 바라봤었다. 무엇도 후회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렇게 결심하고 행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마지막으로 단 하나 바라는 것이 있다면. 뒷모습이 아닌 얼굴을 바라보며 말해주고 싶었다. 네가 나의 삶을 구했노라고. 그리고 이걸로 나는 네게 빚을 갚은 것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웃으며 추락할 수 있다면, 그걸로 정말이지 충분하다 생각했었다.
    뺨에 닿아오는 손길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유중혁이 손끝으로 내 뺨을 쓸어보고 있었다. 무슨 일 있냐고 눈으로 물어오기에, 나는 그날 지어주지 못한 미소를 대신 보여주었다. 살갗이 맞닿으며 전해지는 온기가 몹시도 안온해서 어쩐지 조금 목이 메였다.
    독자 씨. 유상아가 다가와 속삭였다. 열두 시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이들이 모두 알았다는 듯 시선으로 화답했다. 후우, 숨을 크게 몰아쉬고선 몸을 돌렸다.

    “유중혁.”
    “……?”
    “생일 축하해.”

    생일 축하해요, 중혁 씨. 생일 축하한다. 축하해요. 모두의 축하 인사가 여름밤 공기 위로 내려앉았다. 나는 슬쩍 유중혁의 얼굴을 살폈다. 녀석은 자신이 무슨 소리를 들은 것인지 쉽게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좀처럼 지어보이지 않는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기에, 나는 피식 웃으며 유중혁의 어깨를 두드렸다.

    “오늘 네 생일이잖아. 8월 3일.”

    오빠, 생일 축하해. 유미아가 다가와서 유중혁에게 폭 안겼다. 그제야 유중혁은, 무언가 천천히 이해해가는 얼굴로 유미아를 마주 안아주었다. 단단한 입매가 부드러이 풀어진 것을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무엇을 해야 좋을지 참으로 많이 고민했다. 하지만, 역시 내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진심어린 축하 인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결말을 써내려간 이들로부터의 축하도. 그들이 유중혁의 ‘생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적어도…… 축하해주는 마음만은 진짜일 것이었으므로.
    유미아의 등을 토닥여준 유중혁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고맙다.”

    그 한 마디에 담긴 무게를, 모두가 알아줄까.
    진심으로,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한 번 불꽃놀이가 이어졌다. 이번에는 하늘이 아니라 땅 위를 밝히는 작은 불꽃들을 바라보며, 나는 유중혁의 곁에 가서 섰다. 잠깐 걸을래? 유중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멀리서 매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쌔액, 쌔액. 찌르르 우는 풀벌레 소리와 화음을 이루는 것을 들으며 나는 피식 웃었다.

    “쟤들은 밤인줄도 모르나봐.”
    “그렇군.”

    유중혁은 내 보폭에 맞춰 조금 느리게 걷고 있었다. 자갈로 이루어진 길을 천천히 걸으며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혼자서 유중혁의 생일을 축하해 왔던 수 년의 세월들.

    “……내 생일은 언제부터 알고 있었지?”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유중혁을 돌아보았다. 유중혁도 멈춰서서 나와 마주봤다. 빙긋 웃어주고선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처음부터.”
    “처음?”
    “네 이야기를 읽었을 때부터 줄곧.”

    중혁이 생일은 8월 3일입니다. 그 말을 읽은 뒤로 매년, 나는 녀석의 생일을 홀로 축하해왔다. 정작 내 생일은 놓치고 지나치면서도. 그 흔한 케이크 한 조각조차 준비하지 못할지라도 꼭 축하한다는 말은 잊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을 듣는 장본인이 눈앞에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축하였다. 실제로 살아 숨쉬는 유중혁을 눈앞에 두니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기도 어찌나 민망하고 머쓱하던지.
    그래도 녀석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태어난 날이니까. 어쩌면 본인마저도 잊어버렸을지도 모를 날이지만. 1863번이 넘는 삶을 사는 녀석이 도대체 생일을 몇 번이나 맞이했을지는 가늠도 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 수많았을 생일들 중 제대로 된 축하를 받은 날은 얼마나 될까. 날짜 개념이라는 것이 모호한 <스타 스트림>의 시나리오 세계에서 ‘생일’이란 의미가 있기는 한 것일까. 차라리 회귀가 시작되는 날을 생일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을 것 같았다.

    “너는 모르겠지만, 나는 너를 알게 된 뒤로…… 매년 네 생일을 챙겼어.”
    “……그랬나.”
    “응.”

    그럼에도, 네 생일은 틀림없이 8월 3일이었다. 작가 외에 그것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서, 나는 반드시 네 생일을 챙겨야만 했다. 내 생일은 아는 이가 없어 누구도 챙겨주지 못했지만, 적어도 유중혁, 너는 그러지 않아도 되니까. 내가 있으니까. 그러니까 너는, 정당한 축하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알량하게 보일지라도 내게는 무엇보다 큰 진심이었다.
    유중혁의 손이 뻗어왔다.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는 팔에 순순히 안기며 조용히 웃자 유중혁이 고개를 숙여 뺨에 입을 맞췄다. 간지러워. 킥킥 웃으며 몸을 뒤틀었지만 안아오는 손길은 더욱 강해질 뿐이었다. 잠시 녀석의 넓은 어깨에 턱을 기대고 있던 나는 머리를 들어 눈을 맞췄다.

    “유중혁.”
    “왜.”
    “같이 살래?”

    어두운 가운데서도 유중혁의 눈이 커다랗게 떠지는 걸 볼 수 있었다. 나는 민망한 마음을 감추려 소리내어 웃어보였다. 천천히 눈을 깜빡거린 유중혁이 슬쩍 이마를 맞댔다.

    “이제야 말해주는군.”
    “기다렸어?”
    “그걸 말해줘야 아나?”

    조금 불퉁한 목소리에 웃음이 샜다. 콧잔등을 찡그렸다가 풀며 나는 말했다.

    “나 혼자 사는 데 익숙한 거 알지.”
    “안다.”
    “같이 살면 네가 불편할 수도 있어.”
    “상관없다.”
    “누구랑 같이 한 침대에서 자는 것도 낯설어.”
    “지금까지도 자주 그랬으니 다시 말할 필요 없다.”
    “반찬 투정 할 수도 있는데?”
    “그건…… 주는 대로 먹어라.”

    하하, 흑, 흐으……. 나는 한참이나 웃었다. 우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흐느끼듯이. 아직도 무섭고, 낯설고, 두렵고, 겁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기에서 한 걸음을 더 내딛을 수 있는 것은, 유중혁. 언제나 그랬듯이, 네 덕분이다.
    살짝 발돋움을 해서 입술에 입을 맞췄다. 가볍게 맞닿았다가 떨어졌던 입술이 다시 깊이 맞물렸다. 눈을 감고, 너른 등을 끌어안으며, 나는 속으로 작은 약속을 했다. 앞으로는 매년 8월 3일을 네 앞에서 축하해주고 싶다. 그렇게 할 것이다. 하루하루 함께 나이를 먹어가고 싶으니까.
    유중혁…… 생일 축하해.
    네 오늘 하루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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