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생각을 해 보자. 나는 어쩌다 이 꼴이 되었는가. 내 집은 어쩌다가 이렇게 미어터지게 되었는가. 나는 미간을 꾸욱 누르며 불과 삼십 분 전을 회상했다. ……는 무슨,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아, 어차피 넣는 거 그냥 팍팍 넣어요! 도수도 그냥 훅 가는 높은 걸로!”
“무슨 소리예요, 초콜릿 먹다가 취할 일 있어요?”
“이왕 만드는 거 술 들어간 거랑 아닌 거랑 구분 안 가게 똑같이 만들면 안 돼요?”
“혼난다, 이길영.”
왁자한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달다 못해 쓰게 느껴지는 초콜릿 냄새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도대체 뭘 한 건지 코코아 가루를 뒤집어 쓴 김남운이 재채기를 했다. 가루가 여기까지 날아오길래 얼른 몸을 돌렸더니 눈앞에는 얼굴에 밀크 초콜릿(처럼 보이는 것)을 묻힌 이지혜가 낄낄거리며 웃고 있었다.
“아저씨! 여기!”
번개처럼 빠른 손길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얼떨떨한 얼굴로 뺨을 쓸어보니 초콜릿이 묻어나왔다. 너 이 자식, 내가 지금껏 초콜릿 피하느라 얼마나 애를 썼는데…… 이렇게 쉽게……!
“이지혜…… 너……”
“아~! 아저씨가 괴롭힌다~!”
꺄르르 웃으며 도망가는 이지혜는 분하게도 너무 재빨랐다. 젠장. 금방 지쳐버린 나는 휴지를 뜯어 뺨을 닦아냈다. 오늘은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다. 스물여덟 플러스 알파의 인생을 살면서 이런 기념일은 챙겨본 적이 없건만 이 사람들은 구우우욷이 내 집에 쳐들어와서 초콜릿을 만들겠다고 난리다. 아니 왜 하필 제 집입니까? 그렇게 물었더니, 그럼 누구 집에 가요? 유중혁 집에라도 갈까요? 라고 답하기에…… 할 말을 잃은 나는 집을 내주었다. 그렇게 자포자기했더니 이 꼴이다. 그리고, 모양새를 보아하니 이 사람들도 발렌타인 데이를 기리기 위해 초콜릿을 직접 만들어 본 경험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는 것 같다.
문득 고개를 돌리니 옆에서 끙끙거리고 있는 이현성이 보였다.
“뭐 하십니까?”
“아, 독자 씨. 그게……”
이현성은 무언가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뭔가 하고 집어들어서 보니 대충 휘갈겨 쓴 듯한…… 그러니까…… 초콜릿 레시피였다. 이 글씨는 유중혁인데. 매뉴얼이 없으면 고생하는 이현성을 위해 뭐라도 써주긴 한 모양이었다. 물론 뭔 소린지는 나도 전혀 모르겠다. 중탕하는데 그릇 바닥이 물에 닿지 않게 하라고? 그게 뭔 차인데? 그냥 하면 안 돼? 거기다가 무슨 온도계까지 꽂아가면서 하라는 건지 온도까지 적혀 있다. 뭐가 이렇게 복잡해.
“야, 중혁아. 이거 그냥 대충 하면 안 되냐?”
유중혁이 고개를 들더니 시퍼런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미친, 초콜릿 만들다가 사람 잡겠다 인마. 어쨌든 안 되는 모양이다. 빠르게 제작을 포기한 나는 씩 웃으며 녀석의 곁으로 다가갔다.
“넌 뭐 만들어?”
유중혁은 대답 없이 턱짓으로 만들고 있던 것을 가리켰다. 물론 봐도 뭔지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반구형…… 이걸 몰드라고 하던가? 어쨌든, 거기에 쏙 들어가 있는 동그란 초콜릿들이 보였다. 위에는 구멍이 뚫려 있고. 속이 비어 있는 건가. 기웃거리고 있자니 옆에서 감탄한 듯한 유상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와아. 트러플 쉘이에요? 설마 이거 쉘까지 직접 만드셨어요?”
“파는 건 영 믿음이 안 가서. 맛도 없고.”
“손이 많이 갔을 텐데. 대단하네요.”
뭔진 모르겠지만 대단한 모양이다. 하긴, 그 유중혁이 만드는 건데 대단하지 않을 리 없지만. 빙긋 웃은 나는 유중혁이 그 둥그런 초콜릿들을 정희원과 다른 사람들에게 건네주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 채우면 된다. 윗부분은 템퍼링한 초콜릿으로 막을 거니까 약간 공간을 두고.”
“네, 네~.”
시원하게 대답한 그들은 팔을 걷어붙였다. 일단 와인병부터 집어드는데…… 뭐, 알아서 하겠지. 어느새 곁에 다가온 신유승과 이길영이 유중혁의 양쪽에 붙어 섰다. 잠깐 기다려라, 그렇게 말한 유중혁은 옆에 놓인 초콜릿 바를 칼로 잘게 썰기 시작했다. 오, 초콜릿을 식칼로 썰기도 하는구나……. 온통 처음 보는 것 투성이다. 나는 신기한 눈으로 녀석이 하는 요량을 지켜봤다. 냄비에 생크림을 재서 넣고, 천천히 데우다가 썰어놓은 초콜릿을 넣는다. 버터를 조금 더 넣고 저어서 잘 섞더니 네모난 틀에 담고 냉동실에 넣는다.
“굳으면 알려줄 테니까 가 있어.”
신나게 고개를 끄덕인 아이들이 총총거리며 떠났다. 방금 그건 뭐 만드는 거야? 하고 물었더니, 파베 초콜릿이란다. 겉에 코코아 가루를 묻힌 초콜릿이라길래 그제야 아, 하고 무슨 모양인지 알아차렸다.
“간단하니까. 애들이 하기엔 그 편이 낫겠지.”
네 녀석도 딱 그 정도가 맞을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면서 웃는 게 어딜 봐도 비웃는 얼굴이라 나는 눈을 부라렸다. 이 자식이. 물론 반박할 말 같은 건 없었다.
말하는 와중에도 유중혁은 계속해서 손을 움직였다. 뭘 하나 했더니, 아까 이현성에게 적어준 매뉴얼의 그 무언가를 하는 모양이었다. 중탕으로 녹인 초콜릿의 온도를 재더니 칼인지 뭔지, 비슷한 모양새의 도구로 널찍한 판에 펴바르듯 치댄다. 잠깐, 저거 대리석 아닌가. 저런 걸 어디서 가져왔대? 어쨌든 나는 녀석이 하는 걸 열심히 지켜봤다. 셔츠를 걷어올리고 손을 바쁘게 움직여대니 그에 따라 푸르스름하게 돋은 혈관들이 꿈틀거렸다. 역시 요리하는 남자가 섹시하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누구 애인인지 참.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손을 멈춘 유중혁이 나를 흘끗 쳐다봤다.
“뭘 히죽거리나, 김독자.”
……하여간 무드 없는 새끼. 나는 정색하며 팔짱을 꼈다.
“좀 보는 것도 안 되냐.”
“구경만 하지 않나?”
“내가 손 대면 싫어할 거잖아.”
“당연한 걸 굳이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
얄미운 자식. 나는 손가락으로 조금 전까지 녀석이 치대던 초콜릿을 찍었다. 그대로 유중혁의 잘생긴 코 끝에 콕 찍어주고선 바람같은 속도로 도망쳐 나왔다. 죽는다, 김독자! 그런 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깔끔하게 무시하고 히죽거리며 다른 사람들 곁으로 다가갔다.
“뭐 하세요?”
“아, 김독자. 잘 왔다. 이것 좀 해봐.”
뭔데 그래?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니 짤주머니에 담긴 초콜릿을 속이 빈 동그란 초콜릿 속에 짜넣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별로 안 어려워 보이는데? 아니 잠깐만.
“……뭐 하시는 겁니까?”
“초콜릿 만드는데요.”
희원 씨. 당신 손에 들린 건 와인병인데요. 가만 보니 정희원은 초콜릿들에 와인을 가득가득 부어대고 있었다. 뭘 만들고 싶은 거야? 술 초콜릿이야 초콜릿맛 나는 술이야? 얼떨떨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정희원이 손을 멈췄다.
“……너무 많이 넣었나?”
누가 봐도 그런데요. 나는 정희원의 손에 들린 와인병을 옆에 내려놓고 짤주머니를 집어들었다. 초콜릿만 채우면 되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열심히 짜넣는데.
“미친, 김독자 존나 못해.”
……나도 아니까 좀 닥쳐, 한수영. 나는 잔뜩 인상을 쓴 채 짤주머니 밖으로 열심히 흘러나오는 가나슈(라고 한다)를 바라보았다. 아니 이게 생각처럼 안 되네. 배를 잡고 웃는 한수영과 정희원, 이설화를 노려보고 있자니 유상아가 내 손에서 짤주머니를 가져갔다.
“너무 따뜻해져서 좀 녹았나봐요. 자, 이렇게.”
유상아는 제법 능숙한 손놀림으로 초콜릿 안에 가나슈를 채워갔다. 오……. 조금 감탄한 얼굴로 바라보니 유상아가 멋쩍게 웃었다.
“별 거 아니에요. 사실 못하는 게 좀 이상한 건데.”
……상아 씨 이런 말도 하는 사람이었나.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안을 다 채웠다. 어느새 온 유중혁이 빠른 손놀림으로 조금 전 치대던 초콜릿을 이용해 구멍을 막았다. 잠깐만. 이거…… 뭐가 술 들어간 건지 모르겠는데. 상관 없나.
다 만든 줄 알았더니 끝이 아니었다. 구멍을 막은 초콜릿이 굳자 그 위에 다시 한 번 초콜릿으로 코팅을 하고, 그 사이 아이들에게는 냉동실에서 꺼낸 초콜릿을 네모낳게 자른 뒤 코코아 가루를 묻히도록 시켰다. 둥근 초콜릿 위에 화이트 초콜릿으로 데코를 하고(물론 유중혁이 다 했다)…… 우여곡절 끝에 초콜릿들이 모두 완성되었다. 잔뜩 어질러진 집안 꼴을 보고 모두 한 마음으로 한숨을 내쉰 뒤, 분주하게 움직여 뒷정리를 마치고.
“헉. 시간 너무 빨리 간다.”
“엥? 벌써 12시예요?”
문득 시계를 쳐다보니 벌써 11시 40분이다. 뭐야? 아니, 물론 이 사람들이 저녁도 다 먹고 조금 늦은 시간에 찾아오긴 했지만. 어쨌든 정리까지 마친 우리는 완성된 초콜릿들을 놓고 둥그렇게 빙 둘러 앉았다. 그리고 너나 할 것 없이 초콜릿에 손을 뻗어 입 속에 집어넣는다.
“오…….”
“맛있어!”
“맛있는데요?”
“대박. 우리 요리에 소질 있는 거 아냐?”
아무래도 아닌 것 같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진짜로 맛있었으니까. 나는 입 속으로 퍼지는 부드럽고 달착지근한 초콜릿의 맛을 음미했다. 맛있네……. 조금 감동하며 다른 초콜릿을 하나 더 집었다. 그리고 그건 안에 럼주가 꽉 들어찬 바텐더 정희원표 초콜릿(술)이었다. 입 속이 다 화끈거리네. 혀를 빼물고 있자니 초콜릿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아무려면 어떠냐…… 제법 기분이 좋아졌다.
옆에 앉은 유중혁을 돌아보았다. 녀석은 초콜릿을 한 개 집어먹더니 그 뒤로 더 이상 손을 대지 않고 있었다. 하긴, 단 걸 별로 안 좋아하는 녀석이지. 그런데도 만들기는 잘 하는 걸 보면 또 대단하긴 하다. 나는 아이들이 만든 파베 초콜릿 한 조각을 집어 유중혁의 입가에 가져갔다.
“…….”
녀석은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순순히 입을 벌렸다. 입속에 쏙 넣어주자 우물거리며 먹는다. 맛있어? 그렇게 묻자, 조금 웃은 것 같기도 했다.
“독자 씨, 여기 봐요!”
문득 부르는 소리에 돌아봤다가…… 나는 눈을 깜빡였다. 뭐지? 그건, 제법 화려한 생크림 케이크였다. 그 위에는 초가 큰 것 세 개, 작은 것…… 아냐. 이건 비밀이다. 어쨌든 초가 꽂혀 있었고. 내가 멀뚱히 눈만 깜빡이고 있자 유상아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생일 축하해요, 독자 씨.”
“축하합니다!”
“아저씨, 생일 축하해요!”
아, 그래. 나…… 생일이었지. 어쩐지 조금 목이 메였다. 시나리오를 수행하는 동안은 생일 같은 걸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오늘이 며칠인지도 알 수 없는 날들이었으니. 그리고 물론, 유료화가 시작되기 전에도…….
생일 같은 걸 챙겨본 게 언제적이더라.
“독자 씨?”
“야, 김독자 우냐?”
“뭐? 아저씨 운다고?”
“안 웁니다.”
나는 눈을 부릅뜨며 불이 붙은 초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리고 숨을 들이켠 뒤 촛불들을 훅, 불어 껐다.
“와~!”
“소원 빌었어요? 비는 거 잊지 마세요.”
소원이라. 그런 걸 빌어본 지도…… 정말이지 오래 되었다.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여기에서 내가,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을까. 나는 이미 소중한 것들을 지켜냈는데. 이 사람들이 모두, 내 곁에 있는데. 하지만…… 그래도, 이런 나라도 무언가 더 빌어도 괜찮다면. 그럼…… 이런 꿈같은 날들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언제까지나, 이 사람들과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런 생각을 잠시 했다.
“우린 이제 가 볼게요. 너무 늦었네.”
사람들이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렌타인 데이는 사실 핑계였을 것이다. 그런 핑계를 들어, 일부러 나를 찾아와 준 그 마음이 정말이지 고마웠다. 나는 웃으며 그들을 배웅했다. 와줘서 고맙습니다. 축하해준 것도……. 사람들은 다들 나를 한 번씩 끌어안아주고 문을 나섰다. 현관을 나가려다 나를 돌아본 이설화가 빙긋 웃었다.
“독자 씨, 집 청소 잘 해보세요. 이 사람들, 선물을 열심히 숨겨놓더라구요.”
“예?”
“청소하다 보면 하나씩 나올 거예요.”
그러더니 찡긋, 윙크를 하고 마지막으로 문을 나선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심정으로 잠시 닫힌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선물이라니. 축하만으로도 이미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웃고 있자니 뒤에서 허리를 끌어안는 손길이 느껴졌다.
“넌 왜 안 가냐.”
“갔으면 좋겠나?”
“……그건 아니지만.”
중얼거리듯 대답하자 피식 웃더니 그대로 나를 데리고 방으로 향한다. 나는 얌전히 끌려가 침대에 앉았다. 잠깐 기다려, 그렇게 말하고 방을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 유중혁의 손에는 케이크 상자가 들려 있었다.
“케이크? 아까 그거랑 다른 거야?”
“다른 거지. 내가 직접 만들었으니까.”
와. 내가 살다 살다 유중혁이 직접 만든 케이크를 다 받아보고. 기쁜 마음에 씩 웃자 유중혁이 상자를 열고 케이크를 꺼냈다. 나도 이름은 아는 케이크였다.
“퐁당 쇼콜라?”
“그래.”
하얀색 슈가 파우더가 뿌려진 케이크는 먹음직스러운 빛깔을 띠고 있었다. 이거 그거 맞지? 반으로 가르면 안에서 초콜릿 흘러나오는, 그거? 내가 기대감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걸 알아챘는지 유중혁이 작게 웃었다. 그대로 내 손에 건네진 포크를 들고 케이크를 살짝 가르니 안에서 초콜릿이 스르르 흘러나왔다. 와……. 포크로 조금 찍어 입에 넣으니, 맛은 정말이지 말할 것도 없이 맛있었다. 엄청나게. 조금 전까지 단 걸 먹고 있었는데도 여전히 맛있다. 맛있는 거에 맛있는 걸 더하면 더 맛있는 거라더니.
“맛있다…….”
“당연하지.”
자신있게 말하는 게 당연한 녀석이라 좀 억울하지만, 어쨌든…… 대단히 고마웠다. 고개를 조금 기울여 뺨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그런 나를 보고 입꼬리를 올려 웃은 유중혁은 케이크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그러더니 흘러나온 초콜릿을 손가락으로 조금 찍어서,
“아, 미친. 야! 무슨……”
뭐라 항의할 새도 없이 입술이 막혔다. 조금 전 먹은 퐁당 쇼콜라 탓인지, 아니면 녀석이 내 입가에 묻힌 초콜릿 탓인지, 그도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어쨌든 아주 달착지근한 키스였다. 나는 눈을 감고 유중혁의 목에 팔을 감았다. 자연스럽게 나를 눕힌 유중혁이 내 티셔츠를 가슴팍까지 끌어올렸다. 그대로 손가락을 움직여 가슴을 더듬다가, 문득…… 손을 멈춘다. 왜 멈춰? 그렇게 물으려 입술을 살짝 떼었다가 뒤늦게 이유를 알아차렸다. 녀석은, 내 가슴에 나 있는 흉터를 매만지고 있었다.
이제는 오래된 흉터다. 완전히 아물어 통증 같은 것은 없는 것. 하지만 그 상처는, 코인과 스킬로 씻은 듯이 낫던 다른 상처들과는 달리 흔적을 남겼다. 얇은 자상.
“유중혁.”
“…….”
녀석은 대답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몸을 조금 일으켜 그에게 입을 맞췄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천천히 혀를 얽어온다. 녀석답지 않게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입맞춤이었다. 나도 모르게 조금 웃음이 나왔다. 유중혁, 뭘 걱정하는 거냐. 나는, 네가 내게 남긴 것이라면…… 상처든 뭐든, 상관없는데.
“유중혁.”
“……응.”
“사랑한다고 해줘.”
얼른. 그렇게 재촉하자,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녀석이 비로소 피식 웃었다. 그래, 유중혁. 이제 와서 그런 걸 걱정해서 뭐 하냐. 그런 건 우리 방식이 아니잖아. 유중혁이 내 허리를 끌어안으며 고개를 숙였다. 사랑한다, 김독자. 속삭이듯 낮아진 목소리. 그렇게 직접적으로 나를 향하는 올곧은 말을 들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저 다시 한 번 입술을 겹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