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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북극성에게 /1

「우승, 우승입니다! ‘스타 스트림’이 최종적으로 우승컵을 거머쥡니다!」
공간이 뒤흔들리는 듯한 열기였다. 쏟아지는 함성에 실제로 지진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였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스타 스트림’의 선수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환호를 내질렀다. 이윽고 모두 부스를 나와 검은색 유니폼을 흩날리며 무대 가운데로 걸어 나오고. 그들 중 단연코 가장 눈에 띄는 큰 키의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 우승컵 앞에 섰다.
「폴라리스 선수한테 있어서는 이번 결승전이 사실상 은퇴 경기인데요! 이렇게 또 전설을 하나 만들고 갑니다!」
「네, 비록 은퇴할지라도 폴라리스라는 이름은 역사에 영원히 남겠죠. 전설이 될 겁니다.」
리그의 전설. ‘폴라리스’ 유중혁.
유니폼 뒤에 하얀 글씨로 새겨진 Polaris, 일곱 글자가 눈부신 조명 아래 희게 빛났다. 데뷔 이래로 10년간 단 한 번도 정상의 자리를 내어준 적 없는 최고의 프로게이머. 이 게임 리그를 모르는 사람들조차도 그의 얼굴과 이름, 그리고 닉네임을 알았다. 압도적인 피지컬과 컨트롤은 따라갈 자가 없었고, 그러한 장점을 등에 업고 뽑아내는 몹시도 공격적인 슈퍼 플레이들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였다. 전 세계의 선수들이 그를 롤모델로 삼아왔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가 계속 업계에 남아 코치나 해설자가 되어주길 바랐다. 그러나…… 그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유중혁은 동료들과 함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수만 명의 환호성이 귀청을 찢을 듯 격렬하게 울렸다. 최고의 마무리를 보였으니 후회는 없었다. 스물여덟, 프로게이머로서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오랫동안 정상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니 이제 정말 떠나야 할 때였다.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청춘을 매듭 짓는 이 순간,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지난 10년의 세월도, 동료들도, 가족도 아닌…… 어떤 이의 하얀 얼굴이었다.
소년이라기엔 조금 처연한, 그러나 남자라고 칭하기엔 앳된, 그 나잇대 즈음의 애매한 얼굴.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유중혁은 그 얼굴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별하늘 아래에서 반짝이던 눈동자,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끝내 지어보이던 어설픈 미소. 우승컵을 쥔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김독자. 지금 너는 어디에 있나. 혹시, 아직도 나를 보고 있나.
그렇다면 나는.
아득한 시야 속에서 유중혁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 미소가 눈꺼풀 아래서 아른거렸다.



“그래. 잘 도착했다.”
[다행이네.]
유중혁은 어깨로 휴대폰을 귓가에 고정한 채 두 손을 움직여 캐리어를 열었다. 안에 들어찬 짐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켜 방을 훑었다. 아직 생활감이라곤 전혀 없는 오피스텔의 삭막한 정경. 당장 필요한 생필품들은 준비했으니 문제는 없지만…… 역시, 들여놓아야 할 게 많겠군. 이 침대부터 새 걸로 갈아야겠다. 싱글 침대를 바라보며 입가를 매만지는 유중혁의 귓가에 유미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왜.”
[그 사람 찾으러 갈 거지?]
유중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입을 다물고 잠시 그대로 서 있다가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대답이 없자 유미아가 계속해서 말했다.
[찾을 수 있겠어? 벌써 10년이나 지났잖아.]
“……찾을 거다.”
어떻게든. 저도 모르게 목소리에 조금 힘이 들어갔다. 마치 다짐하듯 말을 내뱉은 유중혁은 이마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대폰 너머로 유미아의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오빤 진짜 대단해.]
“뭐가 말이지?”
[아냐. 그냥 새삼스러워서 한 말이야.]
“…….”
미소 짓고 있을 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어렸던 유미아도 벌써 대학생이다. 정말이지 시간이 많이 흐르긴 흘렀군. 유중혁 또한 새삼스럽게 지난 시간을 추억했다. 유중혁을 영입한 캐나다의 모 팀은 그의 영입과 동시에 북미 리그 최정상을 찍었고, 2년 계약이 끝났을 때 즈음엔 전 세계의 팀들이 그를 데려가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 중에는 물론 한국 팀도 있었으나…… 유중혁은 일부러 중국 팀을 택했다. 단순한 조건상의 문제가 아니었다.
 2년, 긴 시간이었다. 유중혁은 김독자와 함께한 시간의 두 배가 되는 시간동안 그를 애타게 찾아다녔다. 수시로 한국을 왔다갔다하며 그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은 모두 뒤졌다. 그러나 김독자의 보호자였을 그의 외삼촌과 외숙모는 사업 실패로 사채 빚을 떠안고 도주해 행방이 묘연한 상태였다. 김독자가 부산에서 다녔던 고등학교에도 찾아갔으나 그는 자퇴처리 되어 있었다. 혹시 그의 소식을 아는 이가 있을까 싶어 주변 사람들을 모조리 탐문했으나 수확은 전혀 없었다. 예상했던 일이기는 했다. 그 김독자가, 허술하게 사라져 버릴 리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 즈음 유중혁은 깨달았다. 그랬다. ‘그’ 김독자였다. 사라지기로 결심했다면 절대로 들키지 않을 완전한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김독자는 그런 녀석이었다. 찾아내려 애쓰면 애쓸수록 더더욱 멀리 도망칠 것이다. 그걸 진작 생각했어야 했는데.
그래서 유중혁은…… 조용한 방식으로 그를 찾기로 했다. 거리감을 유지해야 했다. 지나치게 가까이 가려 하면 늘 먼저 한 발짝 물러서던 녀석이었다. 그래서, 혹시나 도망쳐 버릴까봐, 10년 전 그 시절에도 그토록 천천히 다가가지 않았던가. 그 때처럼 하면 된다. 느리고, 조용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찾아낼 것이다. 마치 사냥에 공을 들이는 맹수와 같은 눈빛이었다. 김독자, 나는 아직 네게 할 말이 남았다.
그것이 벌써 8년 전이었다. 그동안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옷자락을 붙잡아 온 끝에 유중혁은 드디어 단서를 하나 얻었다. 머릿속으로 휴대폰에 메모해 둔 주소 하나를 떠올렸다. 너무나도 많이 들여다봐서 외워버린 주소.
[나가야겠다. 나중에 연락할게, 오빠.]
“알겠다. 밥 챙겨 먹어라.”
[하여튼 밥 먹는 거 엄청 신경 쓴다니까.]
웃음소리가 이어지고 곧 통화가 끊어졌다. 유중혁은 천천히 휴대폰을 내려 손에 쥐었다.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으니 걱정 말고 다녀오라 말하던 유미아의 씩씩한 모습을 떠올리곤 피식 웃었다. 당연하다, 누구 동생인데. 유미아는 어디에 있어도, 무엇을 해도 잘 해낼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나는…… 내 할 일에 집중하면 되겠지.
유중혁은 휴대폰 위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곧 신호음이 울리고 달칵,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하고 들려오는 목소리. 유중혁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다. 잘 지냈나.”



“너 정말 변한 게 없네, 중혁아.”
잠시 말문이 막힌 듯 웃던 이설화가 말했다. 유중혁은 어깨만 으쓱이고는 커피잔을 들어 입가에 가져다댔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이설화가 눈을 한껏 접으며 재밌다는 듯 웃었다.
“3년 만에 다짜고짜 연락해서는 만나자고 하더니. 이런 목적이었어?”
내가 아니라 내 연락처만 필요한 거지! 장난스레 말하며 두 손으로 입을 가리는 게, 이설화도 여전하다. 픽 웃은 유중혁은 어깨를 으쓱하곤 팔짱을 꼈다.
“너라면 아직 모두의 연락처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너도 카톡방에 같이 있잖아?”
“그 방도 안 쓴지 꽤 되지 않았나.”
그렇긴 하지……. 흐음, 하는 소리를 낸 이설화는 휴대폰 화면을 켜더니 유중혁에게 연락처를 몇 개 전송했다. 그리운 이름들이었다. 정희원, 한수영, 유상아, 이현성……. 김독자가 사라진 뒤로도 몇 년간은 지속적으로 연락이 닿았으나 모두 사회인이 되면서 연락 주기가 점점 멀어졌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시절 동아리 부원들과 지금까지 연이 닿는 게 신기한 일일지도. 연락처를 저장한 유중혁은 고개를 들어 이설화를 바라보았다.
“바쁘게 사는 것 같더군.”
“응, 완전 바쁘거든. 그래도 네가 3년 만에 한국에 왔다는데 나와야지 어쩌겠어.”
다른 사람들도 너 보고 싶어 했어. 얼른 연락해봐. 그렇게 말하며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인다. 곧이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이설화의 휴대폰이 시끄럽게 울었다. 헉, 콜 들어왔네. 나 가볼게! 나중에 봐! 그렇게 말하며 후다닥 일어나 카페의 문을 열고 나간다. 잠시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유중혁은 지체하지 않고 바로 그룹 채팅방을 생성했다.



순식간에 숫자들이 사라졌다. 곧이어 쏟아지는 채팅들.




잠시 대화를 나누니 유중혁을 제외한 이들은 종종 만남을 가지곤 했던 모양이었다. 그가 계속해서 해외에 있었던 탓에 만나질 못했다며 되레 탓하는 말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 뭐, 그동안은 일에 집중하고 있었으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나저나 다들 뭐 하는 사람들이기에 이 시간에 이렇게 활발하게 대답이 돌아오는지. 그렇게 묻자 그들이 하나씩 근황을 전해왔다.


……월루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잘 살고 있군. 가만 보고 있자니 거꾸로 그에게 뭐 하고 사느냐고 묻기에 은퇴했다고 간단히 답했다. 은퇴라고? 하는 놀란 반응들이 이어졌지만 딱히 뭔가 더 해명할 생각은 없었다. 슬슬 본래 목적을 꺼내야겠군. 유중혁은 손가락을 움직였다.



몇 달 전에 퇴소했다고 하더군. 일순간 채팅창이 멈췄다. 분명 읽었다는 표시가 뜸에도 불구하고, 모두 할 말을 잃었다는 듯이. 곧 조심스러운 대화들이 이어졌다.


메시지를 보낸 유중혁은 미미하게 착잡한 마음에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김독자라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의도를 바로 눈치 챘을 것이다……. 아니, 이런 생각은 그만두지. 유중혁은 주소를 알려주고 날짜를 잡았다. 3일 뒤, 주말이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집이었다. 유중혁은 잿빛 벽돌로 세워진 담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집의 주인이 누구인지 다른 사람들이 안다면, 이렇게 멀쩡하게 남아 있을 리 없었을 텐데. 사람들의 시선이란 그런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났다지만 그녀에게 씌워진 살인자라는 굴레는 거둬지지 않을 것이다. 그 뒤에 어떠한 사정이 있었다 해도 말이다. 하긴, 요즘은 벽에 붉은 글씨를 쓰거나 하는 건 불법이겠지만……. 유중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조금 긴장한 기색인 일행들을 둘러본 뒤 거침없이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시죠?]
“이수경 씨 되십니까?”
대답은 금방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유중혁은 계속해서 말했다.
“저희는 아드님의 고등학교 동창입니다.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만.”
그 말에 스피커 너머에서 무언가 부산한 소리가 들렸다. 그대로 조금 더 침묵이 이어졌으나 곧 달칵, 하고 현관문의 잠금이 풀렸다. 생각보다 쉽게 열리는 문에 유중혁은 솔직히 의외라고 생각했다. 무얼 믿고 이렇게 쉽게 문을 열어준단 말인가. 하지만 일단 일행은 집 안으로 걸음을 옮겨놓았다.
깔끔한 집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전체적으로 건조한 느낌이었다. 조심스럽게 걸어 들어간 사람들은 안쪽에서 키가 큰 여성이 나오는 것을 보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숨을 들이켰다. 마른 체구, 수년간 수감되어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어 보이는 얼굴.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이목구비는…… 김독자와 꼭 닮아 있었다. 누가 봐도 모자 관계임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닮은 얼굴.
“어서 오렴. 우리 독자 친구들이라고?”
“……생각보다 금방 믿으시는군요.”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유중혁의 말에 그녀가 작게 웃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이쪽으로 오렴. 그렇게 말하고는 거실을 향해 안내했다. 이유가 있다고? 무슨 뜻이지? 유중혁은 일말의 기대감이 솟아나는 것을 느끼며 모두와 함께 거실에 자리를 잡았다. 차라도 마시겠니? 아니면 커피? 그렇게 묻는 말에 각자 적당한 대답을 했다. 이윽고 모두의 앞에 마실 것이 놓이고, 소파에 자리를 잡은 이수경이 조용히 찻잔을 들어올렸다. 정적 속에 찻잔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만이 고요히 울렸다.
“……네가 유중혁이구나.”
저를 향하는 말에 유중혁은 한쪽 눈썹을 들어올렸다. 무슨 의미인지 바로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무슨 뜻입니까? 그렇게 묻자, 이수경이 속내를 짐작할 수 없는 얼굴로 웃었다.
“독자가 네 얘기를 많이 했단다. 기억하고 있지.”
TV에도 나오는 유명인이잖니? 그래서 알아보고 문을 열어준 거란다. 그 말에 유중혁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물론 그는 TV에도 얼굴을 비춘 적이 제법 있으나, 아무리 유명하다고 해도 프로게이머란 아직 마이너한 직종이기 때문에…… 일반인, 그것도 이수경 나이대의 사람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졌을 리는 없었다. 그래서 유중혁은 생각했다.
정말로 김독자가, 내 이야기를 했나 보군.
김독자와 이수경이 그렇게 사이가 좋았던가? 싶다가도. 그 말에 어찌할 바 없이 조금 들뜨고 마는 자신이 있었다. 마음을 가라앉히려 작게 한숨을 내쉬고 있자 다른 사람들이 입을 열었다.
“저는 유상아라고 해요. 처음 뵙겠습니다. 독자의 고등학교 선배예요.”
“아, 저는 정희원이에요. 김독자랑 2년 동안 같은 반이었는데……”
이어지는 간단한 자기소개를 들은 이수경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 것 같다는 얼굴이었다.
“너희가…… 폴라리스인 거구나.”
오랜만에 들려오는 그리운 이름에 모두 흐린 눈을 했다. 그들 모두를 하나로 단단히 묶어 두었던 이름이었다. 그것도 벌써 십여 년 전의 일이 되었지만. 한참이나 찻잔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던 이수경이 조용히 말했다.
“독자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려고 온 거라면, 잘못 찾아왔단다.”
“……예?”
조금 얼빠진 얼굴이었는지 이수경이 옅게 웃었다. 차를 홀짝이고는 테이블에 내려두고 찬찬히 입을 열었다.
“나도 그 애가 어디 있는지 몰라. 아주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거든. 마지막으로 본 게 벌써…… 10년 전이구나.”
그 잔잔한 목소리에는 모두가 감히 짐작하기 어려운 무거운 세월과 감정이 묻어 있었다. 유중혁은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이수경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래 전부터 유중혁은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김독자의 어머니라고는 하지만, 정작 그를 가장 힘들게 만든 장본인 아닌가……. 물론 이제 와서는, 그도 나이를 먹었으니 예전처럼 치기어린 원망 같은 건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입을 다문 그 조용한 얼굴에서 김독자의 그림자가 보일 때마다…… 조금 곤란해질 뿐이었다.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만약 그 애를 찾는다면 전해주겠니? 나도 많이 보고 싶어 한다고. 일행들은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유중혁이 딱딱하게 대꾸했다.
“고려해 보겠습니다.”
이수경이 소리 내서 웃었다. 맹랑하구나. 그 말에도 유중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와 함께 이수경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온 일행이 너나할 것 없이 한숨을 터뜨렸다.
“그럼 그렇지, 김독자…… 자기 엄마한테도 아무 말도 안 하고 갔네.”
이거 진짜 완전 미친놈 아냐.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묻어 있는 완연한 그리움에 모두 시선을 떨구고만 있었다. 애꿎은 돌멩이를 발로 툭 걷어찬 한수영이 고개를 들었다.
“야. 유중혁.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유중혁은 대답 없이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불그스름하게 해가 저무는 초봄의 저녁 하늘이 이내 검푸르게 물들어갔다. 다시 시선을 내린 그가 성큼성큼 걸어 나가며 말했다.
“생각하고 있는 게 있다.”
확률은 낮지만. 제대로 설명해보라는 일행들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유중혁은 걸음을 옮겼다. 그는 언제나 이성과 합리를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운명, 점술, 운세, 그런 것들은 모두 허상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되면, 결국 그 웃기지도 않는 우연이라는 것에 걸어보고 싶어지지 않는가. 이토록 긴 세월을 버텨 고작 그런 것에 매달려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우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만큼 그가 절박하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유중혁의 걸음이 빨라졌다. 어딘가 조급하기라도 한 듯이.



“……이딴 걸로 되겠냐?”
한수영이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포크를 쪽쪽 빨며 유중혁을 쳐다봤다. 유중혁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런 주제에 매일 여기로 출근하고 있지 않나?”
“시끄러! 매일 아니거든!”
하루 걸러서 오고 있다고! 되도 않는 변명을 늘어놓는 한수영에게 코웃음을 쳐준 유중혁은 카운터 뒤쪽의 주방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한수영의 중얼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발, 저 자식은 왜 디저트도 잘 만들어가지고……. 욕인지 칭찬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한 귀로 완전히 흘려 들은 유중혁은 앞치마를 고쳐 매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한수영이 ‘이딴 거’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해는 갔기 때문이었다. 비단 한수영뿐만이 아니라 그 유상아마저 조금 난처하게 웃는 얼굴을 했으니. 물론 유중혁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어이가 없는 방법이었다.
유중혁은 디저트 카페를 차렸다. 처음 그 계획을 얘기했을 때 뒤로 넘어가도록 놀라던 폴라리스 멤버들의 얼굴을 떠올리자 한숨 같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10년간 뒤를 쫓았음에도 아무런 단서를 남기지 않는 녀석을 도대체 무슨 수로 추적한단 말인가. 그래서 유중혁은 방법을 바꿨다. 쫓아가는 대신, 그가 제 발로 찾아오기를 기다리기로.
그의 디저트 카페는 금세 유명세를 탔다. ‘프로게이머의 전설 유중혁이 직접 운영하는 디저트 카페’라느니, ‘점장이 그렇게 잘생겼다’느니 뭐니 하며 입소문을 탄 것이다. 유중혁 자신이 유명해지도록 다분히 의도한 것도 있기는 했으나 어찌 되었든 영업은 대호황이었다. 실제로 그가 만드는 디저트들은 기가 막히게 맛있기도 했고.
“쟤는 왜 이런 재능 썩혀놓고 프로게이머를 했대?”
“야, 쟤 프로게이머 때도 탑이었잖아. 그냥 재능충이라니까.”
“시발, 세상 살기 억울하네…….”
한탄하듯 대화를 나누는 정희원과 한수영의 앞에 새 디저트를 내려놓으며 유중혁이 팔짱을 꼈다. 그 당당한 얼굴에 정희원이 잠시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가 이내 웃었다.
“하여간 너도 진짜 대단하다.”
“그런 소릴 많이 듣지.”
“아 나 진짜. 칭찬해줘도 왜 빡이 치지.”
옆에 앉아 있던 이설화가 포크로 케이크를 갈라 찍어먹으며 맛있다고 눈을 크게 떴다. 이제 갓 인턴을 벗어나 레지던트가 된 이설화는 그래도 인턴 때보다는 살만하다며 종종 시간을 내 찾아오고 있었다. 뻔질나게 찾아오는 한수영이나 정희원은, 뭐. 시계를 바라보며 영업 종료 시간을 재고 있던 유중혁에게 이설화가 물었다.
“중혁아. 독자 선배가 정말 올 거라고 생각해?”
유중혁은 고개를 내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걱정 어린, 한편으로는 조금 기대감이 서린 눈빛이었다. 유중혁은 말없이 그 시선을 마주하다가 느리게 숨을 내쉬었다.
“모른다.”
짧은 대답이었지만 이설화는 그 뒤에 남아있을 말들을 알아 듣기라도 한 듯 그저 눈을 깜빡였다. 기다리는 수밖에 없으니까. 유중혁은 그렇게 생각했다. 김독자, 네가 정말 나를 조금이라도 좋아했다면…… 그렇다면, 언젠가는 나를 보러 와줄지도 모른다고. 대놓고 찾아오는 것이 아니더라도, 어떤 방법으로든.
왜냐하면, 지금 나는 네 얼굴이 몹시 보고 싶으니까.
날이 저물어갔다.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던 한수영과 정희원을 쫓아낸 유중혁은 아르바이트생들까지 모두 돌려보내고 가게 뒷정리를 했다. 그의 가게는 영업시간이 불규칙적인 편에 속했다. 그날그날 디저트의 남은 수량을 재가며 문을 열고 닫았기 때문이었다. 주방 정리를 마치고 숙였던 허리를 일으키며, 모레는 문을 닫아야겠군……. 그런 생각을 한 유중혁은 앞치마를 벗어 벽에 걸어두었다. 물론, 문을 닫아 손님을 받지 않는 날에도 유중혁은 오랫동안 가게를 지켰다. 김독자가 언제 불시에 찾아올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막연한 기대일 뿐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주방을 나와 습관적으로 통유리로 된 가게 밖을 바라본 순간이었다.
동공이 커다랗게 확장됐다. 눈꺼풀이 깜빡이는 것조차 잊고 멈춰 섰다. 일시적으로 숨이 멈췄다. 유중혁은, 그 자리에서 튀어나가듯 달렸다. 순식간에 가게 문을 열어젖히고 도망치려는 남자의 팔을 붙잡아 멈춰 세웠다. 한 손에 들어오는 마른 팔목.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호흡이 거칠어졌다. 유중혁은 온 몸을 긴장시킨 채 남자의 뒤통수를 바라봤다. 가느다랗고 검은 머리카락이 옅게 흩날렸다.
그에게 붙잡혀 아, 하고 탄성 비슷한 것을 낸 남자가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도 무엇이 두려운지 오랫동안 유중혁의 목덜미 부근만 바라보더니, 아주 느리게 시선을 들어 올려 눈을 마주쳤다. 애매한 미소가 얼굴에 퍼져나갔다. 유중혁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 수많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별처럼 빛나는 눈동자.
“중혁아. 너 아직도 진짜 잘 뛰네.”
맥없이 흘러나온 말에 유중혁은 하마터면 손에 힘이 풀릴 뻔했다. 하지만 또 다시 놓칠 수는 없었다. 절대로, 그럴 수는. 팔을 붙잡은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아플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도저히 놓을 수가 없었다.
“……김독자.”
10년 만의 재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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