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중혁은 손에 쥔 종이를 구길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손이 파르르 떨리자 얇은 종잇장이 팔랑거리는 소리를 냈다. 김독자가 처음으로 보낸 편지였다. 가느다랗고 섬세한 글씨체로 적힌 두 장의 편지. 처음 이것을 받았을 때, 풀로 단단히 봉해진 봉투를 뜯으며 어찌나 긴장되고 떨렸는지 모른다. 누가 봤다면 답지 않다며 비웃는대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유중혁은, 두 번 접힌 편지지를 꺼내 빠르게 읽어 내릴 때까지 그 하얀 얼굴을 떠올리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김독자. 유난히도 무언가를 남겨놓는 일을 싫어하던 그의 연인이었다. 유중혁은 김독자와 관련된 물건은 가진 것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조금, 두려웠다. 이것이 처음이자 곧 마지막이 될까봐. 그리고 이제는…… 바다와 하늘을 건너 어렵게 도착한 두 장의 종잇조각만이 그에게 남은 유일한 흔적이었다.
김독자. 유중혁은 이를 빠득 갈았다. 스스로에게 참을 수 없이 화가 나 견딜 수가 없었다. 더 신경을 썼어야 했다. 그가 연고라곤 하나도 없는 부산에 뚝 떨어졌다고 했을 때 진작 이런 사태를 예상했어야 했다. 김독자는 몹시도 불안정한 녀석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남에게 티내지 않는 법에 도가 튼, 그런 녀석이었다.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는데.
책상을 짚고 눈가를 덮었다. 입속으로 온갖 욕설을 지껄여도 도저히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김독자가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전화번호는 없는 것이 되었고, SNS 계정 또한 모두 사라졌으며, 메신저 아이디도 폭파되었다. 다급히 폴라리스 부원들 모두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그들도 거취를 모른다며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유중혁은 편지봉투를 들여다봤다. 그나마 적혀 있는 주소는 부산이기는 했으나, 자신이 알고 있는 김독자의 주소와는 다른 곳이었다. 어딘가 가짜 주소를 적은 것이 틀림없었다. 이렇게까지 완전히, 모든 것을 흔적도 없이 지워버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예상했어야만 했는데.
편지봉투에 나란히 늘어선 주소를 바라보았다. 가짜일 것이 분명한 주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해 남아있는 단서라곤 이것뿐이었다.
김독자. 너도 알고 있겠지. 나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유중혁은 겉옷을 집어 들고 바로 문을 나섰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찾아내고 말겠다. 아무리 깊은 곳에 숨는다고 해도, 아무리 멀리 도망친다고 해도, 반드시. 제대로 된 작별 인사조차 건넬 수 없는 안녕이라니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문이 쿵 닫히며 옅은 바람이 일었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편지지가 팔랑, 날아올랐다가 다시 떨어졌다. 말미에 발신인조차 남기지 않은 편지였다. 그저 꾹꾹 눌러 쓴 수신인만이 적혀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