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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리스, 데네브, 베가 /完

유중혁이 이상하다.
진짜다. 미친 게 틀림없다. 김독자는 황급히 기둥 뒤로 몸을 숨긴 채 천문부실로 들어가는 유중혁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문이 완전히 닫히고 그 모습이 사라진 뒤에야 휴, 하고 한숨을 내쉬며 돌아서고. 두근두근 뛰는 심장 박동이 거슬렸다. 이렇게 속절없이 유중혁을 피해 다녀야만 하는 자신의 모습도.
그치만……. 김독자는 조금 자란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이마를 짚었다. 저 자식 요즘 진짜 이상하다고. 틈만 나면 천문부실에 불쑥불쑥 찾아오질 않나, 책을 읽고 있으면 맞은편에 앉아서 턱을 괴고 빤히 쳐다보질 않나. 밤 시간에 뜬금없이 메시지를 보내거나, 집으로 곧장 돌아가는 날이면 함께 하교하자고 교실로 찾아오기도 했다. 덕분에 유중혁이랑 김독자랑 친하냐? 라는 이상한 소문까지 돌고 있었고. 팔짱을 낀 채 손가락을 톡톡 움직이던 김독자는 문득 눈살을 찌푸렸다. 음…….
생각해 보니까, 유중혁 그 자식 원래도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아, 시발. 김독자는 창문에 머리를 콩 박으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진짜 미치겠다. 그날 이후로 계속 이런 식이었다. 유중혁이 제 손을 붙잡고 선배라고 불렀던 날부터, 계속. 다시 그 때를 떠올린 김독자가 교복 가디건 끝자락을 말아 쥐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새끼는 대체 왜 그런 짓을 해가지고……. 맨날 야, 너, 김독자 하던 놈이 갑자기 선배라고 부르니까 너무 신경이 쓰이지 않는가. 물론 딱 한 번뿐이었고 지금은 다시 김독자라고 부르고 있지만. 아니 그보다 손은 대체 왜 잡은 건데. 미친 새끼가. 원래 친구끼리 손도 잡고 그러나……. 복잡한 머릿속을 헤집으며 앞머리를 흐트러뜨리고 푹푹 한숨을 쉬고 있자니 뒤에서 바닥을 긁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독자…….”
허억. 김독자는 깜짝 놀라 돌아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굳었다. 보지 않아도 당연히 유중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대로 그냥 뛰어서 도망갈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저 자식이 자신보다 훨씬 빨리 뛸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김독자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뒤를 돌아봤다.
변함없이 잘생긴 얼굴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심기가 몹시 불편한 듯 미간을 좁히고 입을 꾹 다물고 있기는 했지만. 김독자는 저도 모르게 입을 조금 벌렸다. 중혁아, 너 진짜 잘생겼다……. 아니 시발 김독자 미쳤나. 정신 차려. 속으로 제 뺨을 다섯 대쯤 때리고 있는데 유중혁이 갑자기 손을 뻗어왔다. 피할 새도 없이 손목을 붙잡힌 김독자가 어, 하는 사이 유중혁이 그대로 천문부실로 향했다.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지.”
미친놈아, 난 할 얘기 없거든……! 물론 그렇게 말하지는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부실로 끌려 들어온 김독자를 놓아주고 유중혁이 문을 닫았다. 절대 도망칠 생각은 하지도 말라는 듯 문을 등지고 서서는 서늘한 눈매로 쳐다본다. 김독자는 머쓱하게 하하 웃으며 슬 시선을 피했다.
“김독자.”
“어, 응…… 중혁아.”
얼굴을 샅샅이 훑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렇게 쳐다보지 좀 마라……. 일부러 계속 고개를 돌리고 있자니 유중혁이 천천히 말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응?”
뭔 소린가 싶어 바라보니 유중혁의 얼굴에는 답지 않게 걱정 비슷한 것이 어려 있었다. 아주 잠시뿐이었고, 곧 화가 난 듯 서늘한 얼굴로 돌아오긴 했지만. 김독자는 눈을 깜빡거리고는 다시 시선을 돌리며 답했다.
“아니, 없는데…….”
“그럼 도대체 왜 피해 다니는 거지.”
시발, 결국 들켰다. 안 들킬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김독자가 입을 닫은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유중혁이 하아, 하고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싶지만,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있는 거라면 지금 얘기해.”
“…….”
이 자식은 또 뭐가 이렇게 당당해. 설마 싶지만? 어이가 없네. 물론 유중혁의 잘못이라곤 없었지만. 김독자는 기가 찬다는 눈을 하려다가 다시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아니다. 이게 다 유중혁 때문이다. 그러게 왜 그날……. 여전히 대답이 없자 유중혁의 표정도 변했다.
“대답 안 할 건가?”
“…….”
이마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조금 신경질적으로 쓸어 올린 유중혁이 또박또박 씹어 뱉는 어조로 말했다. 김독자. 네가 말 안하면 나는 모른다.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러는 거지. 그 말에 결국 김독자는 조심스럽게 다시 시선을 마주했다. 잠시 눈을 마주하고 있다가 너는 잘못한 거 없어, 그렇게 대답해주려고 했는데…… 그 잘생긴 얼굴을 보니 또 조금 심술궂게 굴고 싶어진다.
“내가 말하면 네가 뭐 고치기라도 할 거냐?”
“…….”
저 표정은 뭐야. 설마하니 내가 정말 뭘 잘못했느냐 하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인데. 빡치네.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답했다.
“들어보고, 내가 정말 잘못한 게 맞으면.”
하여간 이 새끼 한 마디를 안 지지. 하지만…… 그런 점이 바로 유중혁다운 모습이기도 했다. 지기 싫어하는, 승부욕 강한 녀석. 패배를 맛보더라도 어떻게든 다시 기어 올라가 기어이 상대를 꺾어내고 마는…… 그렇게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녀석이었다. 김독자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유중혁의 눈썹이 가볍게 들썩였다.
“넌 잘못한 거 없어, 유중혁.”
“그럼?”
“그냥 내가 신경 쓰여서 그랬다. 새끼야.”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솔직하게 툭 뱉어놓고 나니 유중혁의 표정이 다시 변했다. 반 발짝 다가오기에 멈칫거리며 뒤로 물러났더니 또 가까이 온다. 뭐, 뭐야, 미친 새끼야……! 떨리는 동공을 부여잡으며 올려다보니 유중혁이 허리를 조금 숙였다.
“뭐가 신경 쓰였는데?”
“……어?”
“뭐가 신경 쓰여서 그렇게 날 피해 다녔냐고.”
그것도 2주 동안이나. 잡아먹을 듯한 눈빛에 김독자는 꼼짝 못하고 그 자리에 굳었다. 유중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더 기울였다.
“야, 잠깐, 잠깐만…….”
뒤로 물러나던 김독자가 책상에 턱 부딪히곤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김독자를 사이에 가둬놓고 두 팔로 책상을 짚은 유중혁이 그와 눈높이를 맞췄다. 미친, 시발, 야, 이건 반칙 아니냐……. 온 몸이 긴장으로 굳었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책상 모서리를 붙잡고 간신히 몸을 지탱했더니 유중혁이 거리를 더 좁혀 왔다.
“미친, 야……!”
너무, 가깝다고! 저도 모르게 외친 김독자가 스스로 놀라 입을 턱 막았다. 한 뼘 거리에서 김독자를 빤히 쳐다보던 유중혁이 조금 웃고는 몸을 일으켰다. 녀석이 멀어진 뒤에야 훅, 하고 열기가 가시는 듯해서 김독자는 긴 숨을 뱉었다. 미친 새끼 진짜……. 중얼거리고선 호흡을 고르고 쏘아보자 유중혁은 꽤 기분이 좋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뭐가 그렇게 신났냐?”
개자식아. 그렇게 덧붙이려다가 간신히 참았다. 유중혁이 팔짱을 끼고선 흐음, 하는 소리를 냈다. 글쎄. 짧게 말하더니 시원하게 뻗은 눈매를 휘듯이 웃는다.
“나만 신경 쓰이는 건 아니었군, 싶어서.”
“……뭐?”
순간 머리가 굳어 생각이 빠르게 전개되지 않았다. 내가 방금 뭔 소릴 들은 거지. 김독자는 입을 뻐끔대며 눈을 깜빡였다. 저 웃는 얼굴 때문에 더더욱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아, 시발……. 진짜 미치겠다. 김독자는 앓는 소리를 내며 눈가를 짚었다. 이거 지금, 그러니까…… 내 생각이 맞다면…… 그린 라이트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 설마? 아니, 그치만…….
김독자는 설핏 고개를 들어 유중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시선의 끝에 여전히 저를 두고 있는 올곧은 눈빛. 천천히 가슴이 조여 들었다. 시선을 떨어뜨리자 조금 닳은 실내화의 앞코가 보였다. 어둑한 천문부실의 잿빛 바닥이 어쩐지 흐릿했다.
정신 차려, 김독자. 너도 알잖아. 유중혁이 설령 널 좋아한다고 해도…… 네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걸.
만약 우리가 같은 마음이라고 하더라도. 네가 날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도망치고 싶다. 아주 멀리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주 멀리까지 가서, 무엇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곳에 도달한다면 좋을 텐데. 그런 곳이 있다면 좋을 텐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쳐다보고만 있자 유중혁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알아채기 어려울 작고 미세한 표정 변화들. 김독자는 그것들을 읽어낼 수 있게 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런 걸 읽을 수 있다고 해도, 내게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데.
김독자는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어보였다. 고작 이런 것밖에 할 수 없었기에.



“저 자식 요즘 이상하지 않냐.”
정희원이 김독자를 흘긋 돌아보며 속닥였다. 한수영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숙였다.
“저거 분명히 무슨 일 있어. 완전 무슨, 유체이탈한 사람 같다니까.”
수군대는 목소리와 걱정 어린 시선들이 허공을 날아 김독자에게 닿았다. 하지만 본인은 눈치 채지 못한 듯 여전히 멍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봐, 이상하다니까. 저 자식 얼마나 예민한데, 우리가 이러고 있는 것도 지금 모르잖아. 시선과 속삭임에 민감한 김독자가 이처럼 무디게 구는 것은 그들도 모두 처음 보았기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처음엔 드디어 조금 무던해졌나 싶어 좋은 징조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오래 가다니, 역시나 안 좋은 일임이 틀림없었다.
“좀 나아졌나 싶었더니 아직도 갈 길이 멀구만…….”
언제쯤 얘기해 줄 거냐, 시발. 한수영이 툴툴거리며 애꿎은 책상 다리를 발로 툭 찼다. 한수영의 말에 정희원이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몸을 벌떡 일으켰다.
“생각해보니까 그러네. 야, 그냥 이번엔 우리가 먼저 물어보자. 언제까지 쟤가 얘기해 주길 기다리냐?”
유상아가 깜짝 놀라 그녀를 쳐다봤지만 정희원은 이미 성큼성큼 걸어 김독자의 앞에 도착해 있었다. 그제야 눈치 챈 듯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정희원을 올려다봤다.
“……왜?”
“야. 김독자.”
정희원이 한 손으로 김독자가 앉아 있는 책상을 턱 짚었다. 김독자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녀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너 솔직히 말해. 무슨 일 있지.”
“…….”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깜빡거리더니 아, 하고 입을 벌린다. 그가 입을 꾹 다물 거라고 예상한 정희원은 의외의 반응에 허리를 폈다. 뭐야? 그러자 김독자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말 안 했던가?”
미안. 그러더니 희미하게 웃는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일말의 불안감을 느끼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김독자의 입이 열렸다.



유중혁은 눈을 깜빡이며 손에 든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조금 전 받은 매니저 형의 전화가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었다. 믿기 힘들 정도로 놀라운 이야기였다.
「중혁아, 너 이거 진짜 괜찮은 조건이라니까. 미아 학비까지 전액 지원이라고. 너 어디 가서 이런 기회 다시는 못 잡는다.」
캐나다 팀에서의 스카우트 제의였다. 데뷔한 지 고작 1년밖에 되지 않은 신인에게 제시하는 액수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연봉에, 유중혁의 가정사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지 유미아의 학비를 전액 지원해 주겠다는 조건까지 내걸었다. 유중혁의 학비 또한 그 쪽에서 지원해주겠다고 했으나 유중혁은 대학에 갈 생각이 없었으니 이것은 없는 조건이나 다름없겠지. 하지만 팀에 와주기만 한다면 거처도 제공해 줄 것이며, 종종 한국에 왔다 갔다 하는 비행기 표 값까지 책임지겠다는 파격적인 스카우트 제의에 조금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팀 실적도 제법 괜찮은 편이니까 커리어도 확실히 쌓을 수 있을 것 같고……. 무엇보다도, 그야말로 ‘독립’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 아닌가. 만약 올해 초의 자신이었다면 망설임 없이 받아들이고 당장이라도 캐나다 행 비행기에 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유중혁은 김독자를 떠올렸다. 최근 들어서 그는 상태가 조금 이상해 보였다. 무언가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는 듯 허공을 헤매는 시선. 무슨 일이냐고 두어 번 물었으나 그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유중혁은 그게 죽도록 답답했으나, 말하기 싫어하는 사람을 붙잡고 다그치듯 캐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유중혁은 김독자를 잘 알고 있었다. 말하기 꺼려지는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했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로 얘기를 나눠봐야 할 때인 것 같았다.





김독자는 손가락 끝으로 책상 위에 놓인 빔 프로젝터를 만지작거렸다. 어제 켜놓고선 깜빡하고 끄지 않은 걸 이제야 발견해서 전원을 끈 참이었다. 뜨끈한 온기가 손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밖은 꽤 춥던데……. 벌써부터 겨울이 오려는 것인지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고작 11월인데. 빔 프로젝터 위에 두 손을 올려놓고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유중혁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왔어?”
“…….”
유중혁은 대답하지 않은 채 문을 닫고 걸어왔다. 성큼성큼 걸어와 앞에 서니 새삼스럽지만 키가 크긴 크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하 웃으며 올려다보자 유중혁이 미간을 좁혔다.
“김독자.”
“응?”
“오늘은 얘기를 들어야겠다.”
무슨 얘기? 그렇게 되묻지는 않았다. 뭘 말하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김독자는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걸친 채로 시선을 돌렸다. 유중혁은 기다려 주겠다는 듯 잠자코 입을 다물고 있었다. 희고 긴 손가락이 느릿하게 빔 프로젝터 위를 스쳤다.
“갑자기 왜 또 물어봐?”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응? 진짜? 조금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자 유중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됐네, 축하해…… 그렇게 말하기도 전에 유중혁이 다시 말했다.
“캐나다 팀이다. 2년 계약이라서 일단 나가면 한국에 자주 돌아오진 못할 거야.”
“…….”
그렇구나……. 중얼거리듯 말하며 다시 고개를 돌린 김독자가 눈을 깜빡이더니 뒤늦게 아, 하고 웃었다.
“야, 축하한다, 중혁아. 너 완전 성공했네.”
“……김독자.”
“조건은 어때? 좋아? 오케이 할 거야?”
유중혁은 묵연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웃고 있지만, 제대로 웃고 있지 않다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김독자 또한 유중혁이 그걸 쉽사리 눈치 챌 것임을 알고 있듯이. 의미 없는 시선이 허공에서 만났다. 김독자는 가만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너무나도.
“중혁아.”
별 보러 갈래? 그렇게 말하며, 웃고.
깨진 유리 틈새로 새어나오듯 지친 목소리에 유중혁은 그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분히 충동적인 여행이었다. 여행이라고 불러도 좋을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짧을 테지만. 김독자는 때 이른 목도리를 목에 두른 채 손을 호호 불며 하늘을 바라봤다. 역시나 여기서는 별이 안 보이네. 도시에서는 이제 더 이상 별을 찾아볼 수 없다. 그보다 빛나는 것들이 너무 많아졌으니까.
독자야, 저기 봐. 보이니?
문득 아련한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하늘을 가리키는 손가락, 아주 오랜 기억 속에 존재하는 희미한 대화. 엄마, 어린왕자가 사는 소행성 B612도 지구에서 보일까요? 그런, 철없는 물음. 이제는 부질없어진 이야기들이었다. 조금 빠르게 걸어오는 발소리에 김독자는 고개를 돌렸다.
“기다렸나?”
“아니, 괜찮아.”
나도 방금 왔어. 해가 일찍 져서 벌써 어둑해진 거리를 잠시 바라보다가 먼저 걸음을 옮겼다. 얼른 가자, 늦으면 못 돌아올지도 모르니까. 농담조로 말하자 유중혁이 피식 웃은 듯했다.
나란히 지하철에 올랐다. 꽤 오래 가야 돼. 괜찮아? 유중혁은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시선으로 그를 쳐다봤다. 안 괜찮았으면, 애초에 안 왔을 거다. 그 말에 이번에는 김독자가 조금 웃어버렸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서인지 지하철에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두 사람은 문 앞에 서서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하철은 천호대교를 넘어 넘실대는 한강을 스치듯 달려갔다. 이윽고 5호선 끝자락에 내리자 주변은 온통 아파트 단지였다.
“나 예전에 여기서도 산 적 있어. 전학을 많이 다녔거든.”
그렇게 말하며 씩 웃은 김독자는 유중혁을 데리고 익숙한 듯 길을 나아갔다. 그 뒤를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높은 건물들이 끝나고 야트막한 산이 눈앞에 드러났다. 밤에 산에 올라가는 건 자살 행위라고 했는데. 얼핏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김독자가 뒤를 돌아봤다.
“산길로 올라가진 않을 거야. 저 쪽으로 가자.”
도착한 곳은 산 아래턱에 위치한 공원이었다. 천마근린공원. 산 이름이 천마산인가 보군. 김독자가 천천히 숨을 몰아쉬며 허리를 폈다. 어째 운동도 잘 못하는 녀석이 열심히 걷는다 했지. 유중혁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응? 하고 돌아보기에, 부축하듯 손에 힘을 주고 계단을 올랐다. 야, 유중혁, 나 괜찮거든. 말은 그렇게 하지만 조금 지쳐 보여서 유중혁은 손을 놓지 않았다. 결국 김독자는 제 쪽으로 조금 체중을 실어 왔고, 유중혁은 그게 제법 괜찮은 감각이라고 생각했다.
길을 따라 계속해서 가던 와중 김독자가 방향을 틀어 길이 없는 곳으로 향했다. 괜찮은 건가, 미약한 걱정이 들었지만 유중혁은 묵묵히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은 한적하고 탁 트인 공간에 도착했다. 발밑에서 낙엽이 바스락거렸다. 손을 놓아주자 김독자가 총총 걸어가 공터 가운데에 섰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선. 유중혁은 그를 따라 천천히 하늘을 바라봤다.
여름과는 사뭇 다른 별들이 펼쳐진 밤하늘이었다. 천문대에서 볼 때만큼 쏟아질 듯 많은 별들은 아니었지만, 서늘한 공기 끝에 닿아오는 별빛은 그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어느새 다시 다가온 김독자가 유중혁의 팔을 잡아끌었다. 이쪽으로 와. 그리고 두 사람은 어느 여름날처럼 나란히 흙바닥에 주저앉았다.
“중혁아. 겨울 별자리는 좀 아냐.”
“아니.”
“엄청 당당한 대답인데. 천문부인 척이라도 좀 해보지 그래.”
유중혁은 하늘로부터 시선을 내려 곁에 앉은 김독자를 돌아보았다. 네가 설명해 주면, 듣겠다. 그 말에 김독자가 잠시 눈을 깜빡이더니 웃었다.
희고 긴 손가락 끝이 하늘을 가리켰다. 저게 오리온자리. 너도 이름은 들어본 적 있지? 별이 나란히 세 개가 있어서 찾기 쉽거든. 저게 오리온의 허리띠라더라. 그리고 김독자는 다시 손을 움직였다. 저건 시리우스. 보여? 좀 낮게 떠 있지. 제일 반짝거리는 별. 우리가 볼 수 있는 별 중에 제일 밝은 별이래. 하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쌍성이야. 유중혁은 조곤조곤 이어지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겨울 하늘을 눈에 담았다. 귓가에 감겨오는 목소리가 간지러웠고, 또 좋았다. 생각해 보면 늘 그랬던 것 같다. 처음 천문부실에서 그의 웃음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계속. 그래서…… 그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별들의 이름마저 좋아졌다.
너도 좋아하게 될 거야. 별 보는 거.
그의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문득 목소리가 멎었다.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제 쪽으로 몸을 조금 가까이 기울이고 있는 김독자의 얼굴이 보였다. 산을 올라오는 길에 덥다며 풀어낸 목도리 탓에 흰 목덜미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유중혁은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바람결에 가느다란 머리카락이 사락사락 스치는 귓가. 별빛이 내려앉을 것만 같은 긴 속눈썹. 그 모든 것을 담아두기라도 하려는 듯, 눈조차 깜빡이지 못하고.
시선이 마주쳤다. 김독자가 희게 웃었다.
“중혁아. 나 전학가.”
이번엔 엄청 멀리 갈 거야. 부산으로. 유중혁은 순간 말문이 막혀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뒤늦게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얘기를 안 한 거였군. 유중혁은 당황하고 있는 자신을 깨닫고는 속으로 조금 헛웃음을 흘렸다. 자신은 아예 다른 나라로 떠나버리려는 주제에, 당황스러워 할 자격이라도 있나.
바닥을 짚고 있던 손등에 서늘한 손가락이 닿아왔다. 잠시 움찔한 유중혁은, 그 손가락이 차가운 것이…… 어쩐지 조금 서글프게 느껴졌다. 그래서 손을 뒤집어 그 손을 맞잡았다. 자신은 늘 체온이 높은 편이었기에, 조금이나마 따뜻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김독자가 작게 소리 내서 웃었다.
“그거 알아? 너 손 진짜 따뜻해.”
속삭이듯 말하는 얼굴이 가까웠다. 검은 유리알 같은 눈동자에 별빛이 가득 담겨 있었다. 언제나처럼 반짝이는 시선이었다.
어째서 모르는 걸까. 내게 있어 누구보다도 빛나고 있는 사람은, 바로 너인데.
유중혁은 천천히 그를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이마가 살짝 맞닿았다. 김독자는,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시곗바늘을 멈춰두기라도 한 것처럼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아주 천천히 코끝이 닿고, 서로의 숨결이 섞여들었다. 느릿하게 입술이 겹쳐졌다. 뭐라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저릿한 감각이 몸을 관통했다.
유중혁은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다른 손을 들어 올려 김독자의 서늘한 뺨을 감싸고. 입을 살짝 벌리자 잠시 멈칫하더니 저도 입술을 연다. 조금 서툴고 부끄러워하는 듯한 그 행동 하나하나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천천히 혀가 얽혀들었다. 김독자의 손이 제 옷자락을 꽈악 그러쥐는 것이 느껴졌다. 누구의 것이랄 것도 없이 귓가에 쿵쿵대는 심박이 울렸다.
하아, 밭은 숨을 내쉬며 입술이 떨어졌다. 유중혁은 어둑한 하늘 아래 발갛게 달아올라 있는 김독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제 얼굴도 아마 그다지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눈가를 붉히며 작게 웃는 얼굴에 고개를 비틀어 다시 입을 맞췄다.
밤하늘이 시렸다. 거짓말처럼 눈이 내리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이 타이밍에 어떻게 눈이 오냐. 웃으며 눈을 깜빡이는 김독자를 끌어당긴 유중혁이 그와 눈을 맞췄다. 선배, 하고 부르자 옅게 몸을 떠는 것이 느껴진다. 유중혁은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아합니다.”
김독자는 한참이나 그를 마주 쳐다보았다. 느리게 감겼다가 떠지는 눈꺼풀에서 속눈썹이 팔랑거렸다. 두어 번 입술을 달싹거리며, 무언가 말하려는 듯 몇 번이고 망설이다가 결국 웃는다. 키스부터 하고 고백하는 게 어디 있냐, 유중혁. 그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미소였다. 부드럽게 휘어지는 눈매와, 호선을 그리는 입술.
유중혁은 생각했다. 네가 계속, 그렇게 웃어줬으면 좋겠다고. 그러면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버틸 수 있을 것 같다고. 김독자, 내가 너의 북극성이 되어주겠다. 그러니까 도망치지 마. 사라지지도 마. 내가 여기에 있을 테니까. 나는, 그것만으로도. 그렇게 간절하게 생각했다.
그것은 어쩌면, 어떤 불안한 예감으로부터 나온 바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비행기의 이륙 소리가 시끄럽게 귓가를 때렸다. 김독자는 새파란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금세 크기를 줄여가는 기체의 실루엣이 하늘 너머로 사라지는 짧은 시간 내도록 그러고 있는 걸 바라본 한수영이 옆에서 한숨을 푹 쉬었다.
“저거 또 죽을 상 하고 있지…….”
곁에 서 있던 유상아가 그의 어깨를 짚었다. 김독자는 천천히 하늘로부터 시선을 내려 그녀를 돌아보았다.
“정말 괜찮겠어?”
“……괜찮아요.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요.”
김독자가 옅게 웃었다. 문자도 되고, 전화도 되고, 영상통화도 되는데요. 한국에 자주 온다고도 했고. 그리고 나는 그 녀석 경기하는 거 볼 수 있으니까. 김독자는 문득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속으로 삼켰다. 도저히 꺼낼 수 없는 말이었다. 그저 불안한 예감일 뿐이라고, 허전함 때문에 이상한 생각이 드는 거라고, 그렇게 애써 생각해 봤지만 등 뒤를 덮쳐오는 불안감이 서늘했다. 그 감각에 몸을 떨자 춥지, 얼른 들어가자, 라며 몸을 돌리는 일행들의 뒷모습이 이상하게도 멀게 보였다.
이 사람들과도 곧, 헤어지게 된다.
외삼촌의 사업 때문이었다. 자세한 사정은 묻지 못해 알 수 없었으나,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 김독자는 말했었다. 그럼, 저는 그냥 서울에 있을게요. 혼자 살 수 있어요. 하지만 어른들의 대답은 단호했다. 너한테 따로 방 빼주고 생활비 대줄 여력은 안 돼. 그리고, 네가 너무 멀리 있으면 또……. 큼큼, 헛기침 뒤에 숨겨진 말을 김독자는 바로 읽어냈다. 생활비? 방세? 그런 건 다 핑계였다. 이 사람들은 그저, 내가 혼자 외따로 떨어져서…… 무슨 사고라도 치지 않을까 걱정되는 것뿐이다. 일단은 보호자로 등록되어 있으니까.
하, 웃음이 나왔다. 정작 눈앞에 있을 때는 얼굴도 보기 싫어하면서, 눈밖에 내고 싶지는 않다니. 그 거리감을 도저히 견디기 힘들었다.
내가 어디까지 멀어져야 하는데요? 내가, 어디까지 가까워져도 되는데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감을 재는 일이란…… 너무나도 어려웠다. 야, 김독자. 우리가 종종 놀러갈게. 자주 연락해라, 응? 애써 밝게 말하는 정희원과, 말없이 제 손을 꼭 붙들며 눈물을 글썽이는 이현성, 천문부는 저희가 책임지겠다며 믿음직스러운 목소리로 말하는 이설화. 하여간 김독자 진짜 손 많이 가는 새끼, 하며 끝까지 욕설을 지껄이는 한수영과 조용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봐주는 유상아. 그리고…… 아직도 돌아보면 곁에 있을 것 같은 유중혁까지.
그의 인생에 있어서 다시는 없을 만큼 빛나는 사람들이었다. 김독자는 알 수 있었다. 덕분에 자신의 지난 1년은, 눈부시게 찬란했었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어떻게…… 떠나보낼 수 있을까. 어떻게든 손에 붙잡아 두고 싶었다.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김독자는 눈을 깜빡였다. 눈부신 반짝임이 마치 새로운 별의 탄생처럼 보여서 신성(新星)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사실은 노쇠한 별의 사멸 과정이라는, 초신성의 폭발.
나의 반짝임은 시작일까, 아니면 끝일까.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다고. 나는 이제야, 이제서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조금 알 것만 같다고. 그러니까 제발. 김독자는 울컥 붉어지려는 눈시울을 꾹꾹 누르며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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