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폴라리스, 데네브, 베가 /5

“누가 산이니까 덜 더울 거라고 했어!”
한수영이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으나 그에 맞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누가 말했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유구한 역사상 산과 바다, 계곡으로 피서를 가는 것은 보편화된 상식이었으므로 아마도 그 곳들이 덜 덥겠거니…… 싶었을 터다. 그러나 그런 생각들이 무색하게도 서울에서 한시간 반 가량 떨어진 산에 위치한 모 도시의 천문대는 몹시나 더웠다. 야, 그럼 7월 말인데 덥지 안 덥냐. 그래도 밤 되면 쌀쌀해질 수도 있으니까 겉옷 잘 챙겨. 그런 대화들이 오가고. 각자 가방을 등짝에 짊어진 채 천문대 앞에서 잠시 기다리자 유상아의 아버지가 천문대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썩 못마땅한 표정이었으나 일행들을 둘러보고 유상아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전체 일곱 명, 맞지? 1박 2일로 잡아뒀다. 내가 보호자 자격이고.”
“감사합니다.”
유상아가 빙긋 웃으며 인사하자 다른 부원들도 덩달아 허리를 숙였다. 적당히 인사를 받아준 그는 이런저런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내가 일 때문에 같이 있어주진 못하니까 절대로 사고 치지 마라, 꼭 다 같이 붙어 다녀라, 너무 늦은 시간에 돌아다니지 마라……. 뭐 그런 이야기들. 한참이나 설교를 한 뒤에야 그들을 태우고 온 차를 타고 다시 돌아가는 걸 보며 일행들이 모두 한숨을 내쉬었다.
“아, 태워다 주신 건 좋은데…… 오늘 안에 입장 못할 줄.”
“아저씨! 죄송합니다! 저희 별 보러 온 거라 밤늦게 나가야 되거든요!”
장난스레 소리 높여 말하며 깔깔 웃고. 그 사이에서 하하 웃고 있던 김독자는 흘긋 고개를 돌려 유중혁을 바라보았다. 무엇이 불만인지 미미하게 인상을 쓰고 건물 꼭대기를 올려다보는 눈길. 저 자식 진짜 별 보는 거 싫어하나본데. 김독자는 오늘 그 이유를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건, 그냥 단순한 호기심이다. 별 보는 걸 싫어한다고 말했으면서 굳이 합숙은 왜 왔는가 하는, 그런 모순적인 언행에 대한 본능적인 호기심 말이다.
일행들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 먼저 숙소로 향했다. 천문대와 숙소가 함께 붙어 있는 건물인지라 학생들도 부담 없이 올 수 있는 곳이었고, 폴라리스가 매년 찾는 천문대이기도 했기에 소장은 그들을 어렵지 않게 알아보았다. □□고등학교 맞지? 올해도 왔구나. 짧은 인사를 나누고, 천문대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듣고. 프로그램 시간인 오후 8시까지 할 일이 없어진 일행들은 수학여행이라도 온 듯한 기분을 만끽하며 저마다 원하는 대로 돌아다녔다.
“중혁아.”
김독자는 숙소 벽에 기대앉은 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유중혁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어폰을 꽂고 있던 유중혁이 한 쪽을 빼내며 김독자를 바라보았다. 뭐 하고 있어? 그렇게 묻자, 그냥 점검 차. 라며 다시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돌린다. 김독자는 그의 옆에 앉아 함께 화면을 들여다봤다. 모 프로 팀의 플레이 영상이었다.
“이 영상은 왜?”
“다음에 만날 팀이다. 대진표가 나와서.”
아, 하고 김독자는 조금 입을 벌렸다. 그래, 곧 세계대회 시기지. 잠시 눈을 굴리던 김독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바쁜 거 아냐? 합숙 와도 되는 거야?”
그 말에 유중혁이 다른 쪽 이어폰까지 빼내고 김독자를 돌아보았다. 무심한 얼굴에 저도 함께 빤히 바라보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유중혁이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오고 싶어서 온 거니까 상관없다.”
“…….”
그런 것 치곤 전혀 별 보고 싶은 얼굴이 아닌데……. 김독자는 머릿속에서 부풀어 오르는 의문만 재확인하고 말았다. 어느새 유중혁은 다시 이어폰을 귀에 꽂고 화면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정말이지 집중력이 좋은 놈이다. 이렇게 시끄러운 상황 속에서도-베개를 뒤집어엎고 있는 정희원과 한수영이라거나-집중이 되나. 신기한 나머지 저도 모르게 너무 빤히 바라본 것일까, 힐끔 김독자를 돌아본 유중혁이 물었다.
“게임 좋아하나?”
“어? 아, 나는 보는 것만. 하는 건 피지컬이 안 돼서 좀…….”
“그럼 게임 리그도 보나?”
“응. 네가 지금 보고 있는 그 경기 영상도 봤던 거다.”
그렇게 말하며 웃자 유중혁이 한쪽 눈썹을 꿈틀했다. 뭐야? 순간 그의 얼굴이 미미하게 풀어졌다.
“그럼 지난 스프링 시즌 결승전도 봤겠군?”
그와 동시에 끌어올려지는 입꼬리. 김독자는 순간 얼굴이 화악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휙 돌렸다. 아, 시발, 예고 좀 하고 들어와라……. 미소에 깜짝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슬슬 곁눈질로 돌아보자 유중혁이 애매한 표정으로 마주보고 있었다. 저 자식은 또 왜 저런 얼굴이야. 어쨌든 김독자는 대답을 해야 했으므로 목을 두어 번 가다듬고는 말했다.
“어, 으응, 봤지. 너 그날 진짜 잘하더라…….”
“…….”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문득 김독자는 억울해졌다. 이 자식은 먼저 물어봐 놓고 왜 입을 꾹 다물고 있어? 조금 어이가 없어 멀뚱히 쳐다보자 유중혁이 아래로 길게 늘어져 있던 이어폰 한 쪽을 김독자에게 건넸다.
“이건 왜?”
“볼 생각 있으면 같이 보자고.”
어느새 다시 스마트폰을 향하고 있는 눈동자. 김독자는 속으로 작게 웃고선 천천히 그의 손에 들린 이어폰을 받아들었다. 짧게 맞닿은 손가락에 조금 긴장하고 만 건 나뿐이었을까……. 그런 생각을 털어내려 애쓰며. 물론 부질없는 노력이었지만.



천문대에서 준비한 프로그램은 생각 외로 탄탄했다. 작년에 이미 경험한 적이 있는 2학년과 3학년들도 조금 달라진 프로그램 내용을 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올해는 좀 바뀌었네, 뭐가 더 추가됐어. 하지만 여름인 만큼 여름철 대삼각형에 대한 이야기는 빠지지 않았다. 데네브, 알타이르, 베가. 눈부시게 빛나는 세 별을 망원경으로 직접 찾아보는 건 조금 재밌었는지도 모른다. 덕분에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프로그램이 끝나고, 삼삼오오 흩어지는 사람들을 지나쳐 천문부원 일곱 명은 나란히 걸었다. 밤을 맞아 서늘해진 여름 하늘 아래 이대로 잠들긴 아쉬웠던 탓이었다. 서울에서 올려다봤을 땐 새카맣기만 했던 밤하늘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그야말로 쏟아질 듯한 별들이었다. 물살처럼 반짝이는 은하수, 그 주변을 수놓는 백조자리, 거문고자리, 독수리자리. 여전하게 북쪽에서 빛나는 카시오페이아와 북두칠성, 그리고 북극성까지. 서로의 머리 위에서 반짝거리는 별빛을 보며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달렸으며, 누군가는 풀밭에 주저앉고 드러누웠다. 유중혁은 천문대 프로그램에서 만들었던 야광 별자리 지도를 손에 든 채 잠시 바라보았다. 손안에서 빛나는 별들.
문득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저만치 멀어져 있는 사람들의 실루엣만이 어렴풋이 보였다. 천문대로부터 제법 멀리 온 것일까, 오로지 별하늘의 빛에만 의지한 시야에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언덕 너머 발치로 무수히 많이 펼쳐진 별들이 조금은 두려웠고, 동시에 원망스러웠다. 찡그린 시야에 별빛이 이지러졌다. 그리고, 그 사이에 김독자가 있었다.
가만히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얼굴은 별빛 아래에서도 하얗게 보였다. 살짝 벌어진 입술과 그 아래 가느다란 목, 마른 체구 탓에 조금 도드라져 보이는 목젖. 슬 불어오는 미적지근한 여름 밤바람에 품이 남는 티셔츠가 가볍게 흩날렸다. 유중혁은 천천히 걸어 그의 곁에 가서 섰다. 인기척을 느낀 것인지 김독자가 그를 돌아보고는 미소 지었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휘어지는 눈매와 입꼬리. 잠시 할 말을 잃은 유중혁은 그 자리에 서서 하얀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바로 옆에 있는데, 왜 이렇게 멀게 보이는 걸까. 절대로 닿을 수 없을 것처럼.
풀밭에 털썩 주저앉은 김독자가 유중혁을 올려다보며 손짓했다. 유중혁은 말없이 그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생각보다 프로그램은 열심히 참여하던데, 유중혁.”
제 손에 들린 별자리 지도를 보고 하는 소리였다. 유중혁은 그 지도를 옆에 내려놓으며 대꾸했다.
“어차피 하기로 한 거면 제대로 하는 게 속 편하지.”
“너답네.”
작게 웃은 김독자는 무릎을 끌어 모았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눈빛이 묵연했다. 잠자코 입을 다물고 있자 김독자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손가락으로는 하늘을 가리키며.
“중혁아. 저기 봐봐.”
유중혁은 말없이 그의 손가락을 따라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빛나는 별들 사이에 조금 전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된 별자리들이 서서히 눈에 들어왔다.
“저기, 백조자리 있지. 데네브 있는 데.”
“보인다.”
“아까 천문대 프로그램에서 알려준 신화 말고도 다른 전설이 있거든.”
말해보라는 듯 쳐다보자 김독자가 씩 웃었다. 난 맨날 바람이나 피우는 제우스 얘기보단 이게 더 좋아. 백조자리는 학명이 시그너스거든. 친구를 아주 많이 사랑했던 한 남자애 이름이래.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유중혁이 고개를 조금 갸웃하자 김독자가 말을 이었다.
“태양 마차를 몰던 파에톤이 강에 떨어져 죽었을 때, 끝까지 그 시체를 찾기 위해 강물을 뒤졌다고 하더라고. 그걸 보고 감동한 신들이 백조로 만들어서 하늘에서 살게 해줬다는 얘기가 있어.”
유중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한 쌍의 날개 모양을 한 별자리를 바라보았다. 은하수 위를 날아가는 백조와 같은 모양새. 퍼덕거리는 날갯짓 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곁에서 들려오는 하얀 목소리가 흩어졌다. 그래서 시그너스는 행복했을까……. 그 말을 어렴풋하게 들으며.
조용한 공기가 두 사람 사이를 흘렀다. 밤의 어둠 속에서 편안한 기분을 만끽하던 김독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중혁아. 너 별 보는 거 싫어한다고 했지.”
“그래.”
“나도 그랬거든.”
조용히 말하며 무릎 위에서 톡톡 움직이는 흰 손가락. 그 움직임을 바라보며 유중혁은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반짝거리는 게 너무 싫었어. 내 인생엔 빛나는 게 하나도 없는데, 저 위에는 잔뜩 있잖아. 저렇게 많은데 왜 나한테는 하나도 와주지 않는 걸까.”
중얼거리는 듯한 목소리에 유중혁은 청각을 곤두세웠다. 찌르르, 희미하게 여름 풀벌레가 울었다. 유중혁. 나는 빛나는 게 멀리 있을 때는 너무 싫었어. 영원히 닿을 수 없을 것 같았거든. 근데 막상 그것들이 가까이 있으니까 알겠더라. 때로는 멀리서 빛나는 걸 바라보기만 하는 게 더 행복할 수도 있다는 걸. 유중혁은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그 얼굴을 바라본 김독자가 작게 소리 내서 웃었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나 이제 별 보는 거 좋아하거든. 예쁘잖아.”
혼자 있을 때도 늘 지켜봐 주는 것 같고……. 그렇지 않아? 그 물음에 유중혁은 짧게 침묵하고는, 담담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네 이야기를 들었으니, 내 것도 들려주는 것이 맞겠지……. 그런 생각과. 아무래도 좋으니, 그저 말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동시에 하며.
“나는 그 지켜보는 느낌이 싫었다. 아무 도움도 되지 않으면서 그 자리에 있기만 하니까.”
그렇게 시작된 유중혁의 이야기는 짧고 간결했다. 하지만, 동시에 무거웠다. 어렸을 적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함께 돌아가신 뒤 친척집을 전전했고, 고모네 집에 머물기 시작한 뒤에야 조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고. 하지만 그분들이 아무리 자상하게 돌봐주신다고 해도 결국은 자신이 미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라는 걸 알고 있다고. 미아를 위해서라도, 자신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스스로의 힘으로 성공하고 싶다고. 담담한 목소리에 오히려 서글픈 얼굴을 하는 것은 김독자였다. 무릎에 고개를 묻은 채 저를 올려다보는 눈동자에 유중혁이 조금 웃었다.
“왜 네가 그런 표정을 하지.”
가볍게 말했지만 김독자의 표정은 쉬이 풀리지 않았다. 한참이나 쳐다보더니 힘들었겠다, 한 마디를 하곤 입을 다문다. 유중혁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부모님이 없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순간적으로 변했던 김독자의 표정과, 곧이어 젓가락을 내려놓던 모습까지. 유중혁은 알고 있었다. 그와 자신은 어쩌면 닮은꼴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이 무시할 수 없는 강렬한 끌림은 그러한 동질감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것을 뭐라 불러야 좋을지, 유중혁은 아직 알지 못했다.
한참이나 유중혁을 바라보던 김독자가 눈을 깜빡이더니 손을 들어올렸다. 천천히 제 얼굴로 가까워오는 손가락을 바라보며 유중혁은 숨을 멈췄다. 적막한 공기 속에 손끝이 이마를 스치는 감각이 선연하게 느껴졌다. 느릿하게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던 손가락이 슬슬 이마 위를 쓸어 올리고. 유중혁은 저도 모르게 살짝 눈을 감았다. 그에게서 전해지는 서늘한 체온이 묘하게 기분 좋았다. 귓가에 울려 퍼지는 작은 웃음소리도.
“중혁아.”
“응.”
“저번에 같이 본 북극성 다큐멘터리 있지.”
유중혁은 살짝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미소 짓는 얼굴이 눈부시게 서글펐다.
“북극성은 북쪽을 알려주는 길잡이가 되는 별이잖아.”
너나, 나한테도……. 우리한테도 그런 별이 있었다면. 조금은 덜 힘들었을까.
그렇게 말하며, 김독자는 웃었다.
유중혁은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밤하늘이 가득 들어찬 것처럼 반짝이는 눈동자. 그의 어깨 너머로 여름철 대삼각형이 눈부신 도형을 그렸다. 유중혁은 문득, 김독자 덕분에 읽게 된 책들에서 본 이야기를 하나 떠올렸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북극성 또한 계속해서 변해왔다. 지금의 북극성인 폴라리스는 서기 2100년에 가장 북쪽에 가까워지게 된다. 그리고 그 뒤로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서기 10000년에는 저 하늘의 데네브가 북극성이 된다. 그로부터 4천 년이 더 지나면, 베가가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폴라리스, 데네브, 베가. 북극성의 이름을 가진 별은 계속해서 달라질지라도, 북극성이 의미하는 바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길을 잃은 당신을 홀로 두지 않겠다는 속삭임.
김독자. 나는, 너의 북극성이 되고 싶다.
어느 여름날의 이야기였다.

  

arrow_upw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