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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리스, 데네브, 베가 /4

「유중혁 선수, 안정적인 플레이입니다. 정말이지 기복이 없는 선수예요.」
김독자는 조금 긴장한 채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어두운 방 안에 환하게 쏟아지는 모니터 불빛이 하얀 얼굴을 창백하게 비췄다. 오늘은 유중혁이 속한 게임 리그의 한국 스프링 시즌 결승전 날이다. 솔직히 김독자는 유중혁이 이렇게 빨리 치고 올라올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실력이 워낙 출중하니 바로 1팀으로 들어갔을 때도 납득하긴 했지만, 지금 이건……. 김독자는 넋을 놓은 채 일방적으로 벌어지는 학살의 현장을 바라보았다.
「아, 이걸 다 잡네요! 정말 믿을 수가 없습니다!」
가히 예술의 경지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의 플레이였다. 해설위원도 흥분했는지 목소리가 높아졌다. 유중혁의 얼굴을 비추는 화면 아래쪽의 영상을 들여다봤으나 그는 이 정도의 플레이를 해내고도 표정 변화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진짜 미친 새끼. 김독자는 한 박자 늦게 정신을 가다듬고 감탄했다. 저런 킬각은 대체 어떻게 재는 거야. 미친 거 아냐. 그야말로 천재적인 재능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팀원들 또한 하나같이 내로라하는 선수들이지만, 오늘의 MVP는 유중혁일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기어이 유중혁의 팀은 우승을 거머쥐었다.
「■■■가 승리했습니다! 우승입니다! 우승!」
그제야 고개를 든 유중혁이 입가에 아주 옅은 미소를 걸쳤다. 쏟아지는 환호 속에서 빛나는 눈부시게 잘생긴 얼굴. 모니터 너머로 바라보고 있을 뿐인데 마치 손에 잡힐 것 같은 열기가 느껴졌다. 김독자는 저도 모르게 의자 팔걸이를 꽉 쥐었다. 유중혁. 너는 진짜…….
문득, 어떤 서늘한 한기 같은 것이 목덜미를 스쳤다. 갑자기 찬물을 맞은 듯 현실로 돌아온 김독자는 퍼뜩 고개를 들어올렸다. 어두컴컴한 방, 삐걱거리는 의자, 자그마한 창문. 문을 열면, 아무도 없는 적막한 집. 김독자의 임시 보호자인 외삼촌 부부는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았다. 외삼촌은 출장으로, 외숙모는…… 잘 모르겠는 이유로. 부부 관계가 썩 좋은 편이 아니라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김독자는 입을 꾹 다물고 눈을 깜빡였다. 화면에 비춰지는 유중혁의 모습이 눈부셨다. 마치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방이 너무 어두워서 그런가보다, 불을 켜자. 하지만 희미한 형광등을 켠다고 해서 마법처럼 그의 삶이 밝아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자! 그래서 우리 폴라리스는, 올해 여름에도 합숙을 합니다.”
정희원이 책상을 탁 치며 씨익 웃었다. 7월 초의 후덥지근한 열기가 창밖을 달구고 있었지만 천문부실과는 그다지 상관없는 일이었다. 암막 커튼으로 창문을 한껏 가린 채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두고 있는데 더위가 웬 말인가. 유중혁은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정희원과 다른 사람들을 둘러봤다. 천문부의 여름 합숙은 연례행사라고 했다. 김독자나 다른 부원들이 입부하기 전부터 있어왔던 전통.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재작년까지는 담당 선생님도 함께 하는 공식적인 행사였지만 작년부터는 아니라는 것이다. 우스운 일이다. 책임질 일을 만들고 싶지 않은 거겠지. 유중혁은 그런 학교가 대단히, 몹시도 졸렬하다고 생각했다.
“날짜는 방학식 하고 나서 그 다음주 수요일! 1박 2일 예정인데 혹시 안 되는 사람?”
아, 안 되는 게 어딨어! 안 되면 되게 하는 거지! 누군가의 말에 다들 웃고. 하지만 유중혁은 잠시 고민에 빠져 있었다. 곧 세계대회 출전권을 따기 위한 선발전 시기였다. 이쪽도 합숙이 있을 텐데. 그는 팀 내에서 유일한 고등학생이므로 학교 일정이 있다고 말하면 빠질 수는 있겠으나……. 문득 시선이 느껴져 돌아보니 한 자리 건너 옆에 앉아 있던 김독자와 눈이 딱 마주쳤다. 빙긋 웃은 김독자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게 손으로 입가를 가리더니 입모양으로 물었다.
‘중혁아. 합숙 갈 거야?’
잠시 그를 바라보던 유중혁은 되물었다. 너는. 김독자가 고개를 크게 끄덕여 보임과 동시에 유중혁은 마음을 정했다. 가야겠군. 그의 표정을 귀신같이 눈치 챈 김독자가 눈을 휘어 웃었다. 갈 거지? 재밌을 거야. 그 말에 얼떨결에 고개를 조금 마주 끄덕이고. 유중혁은 이어지는 정희원의 계획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뒤늦게 합숙이라는 게 별을 보러 가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리고 여전히 별을 보는 일은 끔찍이도 싫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흘끗, 돌아본 시선의 끝에 흰 얼굴이 걸쳐졌다. 조금 기대가 된다는 듯 엷은 미소를 걸친 얼굴. 뭐…… 별 말고 다른 걸 보고 오면 될 일 아닌가.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한 유중혁은 황급히 머릿속을 비우며 미간을 좁혔다. 미친 건가.
“대충 정리한 거 카톡으로 보낼 테니까 꼭 확인해! 자, 그럼 오늘 해산!”
정희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야, 유상아. 집에 가냐? 같이 가자. 그렇게 말하며 짐을 챙기는 한수영과, 정희원에게 다가가 일정에 관해 더 자세히 묻는 이현성. 그 사이에서 말없이 어깨에 가방을 걸치는 유중혁을 향해 이설화가 걸어왔다.
“집에 가, 중혁아? 같이 가자.”
그러더니 대답은 듣지도 않고 고개를 돌려 김독자를 찾는다. 선배, 선배도 같은 방향이죠? 같이 가요. 김독자의 시선이 이설화를 향했다가 유중혁에게 머무르고, 다시 떨어졌다. 그래, 가자. 그렇게 세 사람은 함께 늦은 하굣길에 올랐다.
초여름 햇살 아래 한껏 달궈진 보도블록으로부터 더운 열기가 피어올랐다. 아스팔트 위로 일렁거리는 아지랑이와 가로수 그늘 아래서 울리는 매미 소리 같은 것을 배경으로 한 평범한 여름의 하굣길이었다. 무언가를 신나게 얘기하는 이설화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김독자는 설핏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희고 고운 얼굴, 예쁜데다가 공부도 잘 하고 싹싹하기까지 하니…… 1학년들 사이에서 아이돌이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김독자는 언제나 소문에 느린 편이었지만, 최근에 묘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같은 반인 유중혁과 이설화의 사이가 심상치 않다는…… 그런 흔한 이야기였다. 늘상 돌고 도는 뻔한 ‘썸’타는 소문들. 김독자는 그런 소문이 도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본인들의 의사는 전혀 개입되지 않은 입소문들. 그런 것은 정말이지, 질색이다. 끔찍하게 싫었다. 소문은 언제나 모든 것을 망쳐놓았다.
그러나, 제 옆에 나란히 서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자면…… 어쩔 수 없이 떠올라버리고 마는 것이다. 제법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말이다.
김독자, 정신 차려. 너 그거 실례야.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휘휘 젓자 이설화가 고개를 갸웃했다.
“선배? 왜 그러세요?”
“……아냐.”
근데 언제까지 존댓말 할 거야? 그냥 편하게 하라니까. 저는 이게 편해서요. 방긋 웃으며 대답하는 이설화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김독자는 그 눈부심에 눈을 조금 깜빡였다. 손 안에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행복 같은, 그러한 빛은 언제나 그에게 너무 눈이 부셨다. 김독자는 늘 그런 빛에 둘러싸여 있었다. 폴라리스의 사람들 모두가 그러했으니까. 물론 그 빛들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삶도 함께 밝아졌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김독자는 생각했다. 나는, 아마도 스스로 빛을 낼 수는 없을 것이다. 마치 태양의 빛을 반사하기만 할 뿐인 달처럼.
“아, 저는 이쪽이에요. 가볼게요.”
제게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유중혁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 이설화가 골목을 꺾어 사라졌다. 잠시 멈춰선 채 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김독자를 향해 유중혁이 말했다.
“안 갈 건가?”
“어? 응…… 가야지.”
상념에서 빠져나온 김독자는 유중혁과 나란히 서서 길을 걸었다. 평소에는 먼저 이런저런 얘기를 꺼내는 김독자였는데, 오늘따라 조용한 것이 신경 쓰였는지 유중혁이 웬일로 먼저 입을 열었다.
“합숙……”
“응?”
“너도 가는 건가? 확실하게.”
김독자는 빙긋 웃었다. 그럼 진짜지 가짜로 가냐. 그 말에 유중혁은 어쩐지 안도한 얼굴을 하고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김독자의 머릿속은 다른 생각으로 차 있었다. 함께 하교한 탓일까, 자꾸만 유중혁의 얼굴 위에 이설화가 겹쳐 보였다. 나쁜 마음이 꿈틀거리며 피어올랐다. 이걸 뭐라고 불러야 좋을까. 입을 꾹 다물고 있던 김독자가 결국 말을 꺼냈다.
“설화 예쁘지.”
“……?”
유중혁은 갑자기 뭔 헛소리를 하냐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김독자는 어색하게 하하 웃으며 계속 말했다.
“아니, 그렇잖아. 엄청 유명하던데. 인기도 많고…….”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하여간 은근히 눈치 빠른 놈이다. 속으로 쯧, 하고 혀를 찬 김독자는 더 이상 빙빙 돌리지 않고 내뱉었다.
“너는 여자친구 안 사귀냐?”
“여자친구?”
유중혁이 생소한 단어를 들었다는 듯 기묘한 표정을 했다. 뭐야, 저 반응은.
“너 정도 되는 놈이 왜 여친이 없나 신기해서 물어보는 거야. 이상한 뜻은 아니고.”
“…….”
유중혁이 걸음을 멈췄다. 그보다 몇 발짝 더 나간 김독자가 뒤늦게 멈춰 서서 유중혁을 돌아보았다. 유중혁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표정은 김독자가 쉬이 읽어낼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유중혁은…… 무언가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중혁아?”
김독자를 똑바로 쳐다보던 유중혁이 성큼성큼 걸어 순식간에 그의 앞에 섰다. 갑작스레 가까워진 거리에 김독자가 저도 모르게 뒤로 조금 물러서자 다시 그만큼 가까이 온다. 왜 이래? 뭐라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뻐끔거리고 있으니 유중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김독자.”
“…….”
“팬케이크 좋아하나?”
……뭔 소리야?



“안녕하세요…….”
김독자는 조심스레 인사를 하며 신발을 벗고 집으로 들어섰다. 먼저 들어간 유중혁이 흘끗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인사할 필요 없어. 어른 안 계시니까.”
“아. 그래……?”
머쓱하게 뒷목을 만지작거리며 유중혁의 뒤를 따랐다. 상당히 널찍하고 깔끔한 집이었다. 그럼에도 곳곳에 놓여 있는 화초나 테이블 등에서 아기자기한 생활감이 느껴진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조금 따뜻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집에서 사는구나. 유중혁은.
잠시 둘러보고 있자 가방을 벗어두고 나온 유중혁이 손가락으로 제 방을 가리켰다.
“저쪽이 내 방이다. 잠깐 기다리고 있어. 동생 데리고 올 테니까.”
“어? 으응?”
유중혁은 뭐라 대답할 새도 없이 쌩하니 현관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뭐야, 시발. 무슨 상황이지 지금? 김독자는 상황을 정리했다.
첫째, 유중혁이 갑자기 팬케이크를 좋아하냐고 물어봤다.
둘째, 그래서 얼떨결에 좋아한다고 대답했다(실제로도 좋아한다).
셋째, 정신을 차려보니 유중혁네 집이다…….
이게 뭐냐, 정리가 안 되는데!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던 김독자는 일단 무거운 가방부터 내려놓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도 없는데도 괜히 조심스러워져서 살그머니 유중혁이 가리킨 문을 열었다. 가장 먼저 커다란 모니터가 눈에 들어왔다. 아, 역시 프로게이머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리자 이불이 조금 흐트러져 있는 침대가 보였다.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유중혁도 이런 인간적인 면이 있긴 하네. 이불도 완전 각재서 개놓을 줄…….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옷장 옆에 놓인 유중혁의 가방 옆에 자신의 가방을 풀어놓았다. 후우, 하고 숨을 쉬자 코끝에 낯설지 않은 향기가 느껴졌다. 이건, 그러니까, 유중혁의 체취…… 인가.
갑자기 얼굴에 열이 오르는 듯해 김독자는 황급히 두 뺨을 때렸다. 시발, 내가 미쳤지. 내가 왜 얘네 집에 순순히 따라와서는…….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김독자는 눈을 꾹 감으며 마른세수를 했다. 정신 차려, 김독자. 호흡을 고르는 사이 삑삑삑삑, 하고 도어락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김독자는 퍼뜩 고개를 들고 방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아…….”
유중혁을 꼭 닮은 어린 여자애가 그의 손을 붙잡은 채 현관을 넘어오고 있었다. 김독자는 약간 놀라 눈을 깜빡이며 아이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놀란 것인지 아이가 몸을 돌려 유중혁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미아. 인사해야지. 오빠 친구다. 이름은 김독자.”
김독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정신이 어찔했다. 평소와는 사뭇 다른 유중혁의 상냥한 어조도 그렇고, 저를 친구라고 서슴없이 칭하는 것도 그렇고. 잠시 그런 생각을 하느라 인사를 건네지 못하고 있자 미아라고 불린 아이가 눈을 깜빡였다.
“오빠 친구예요? 진짜?”
……저건 무슨 의미로 물어보는 거지? 친구처럼 안 보이나? 김독자는 아연해졌으나 유중혁은 그것이 김독자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에게 향하는 물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머리를 쓰다듬던 손길에 조금 힘을 주어 꾹꾹 누르자 유미아가 입을 뻐끔거리더니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어, 그래 안녕. 반가워…….”
김독자는 뒤늦게 인사를 하며 가까이 다가가 무릎을 굽혔다. 진짜 동생인가보네. 누가 봐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닮았다. 특히나 저 어린아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서늘한 눈매 같은 것이. 아이의 얼굴에서 유중혁과 닮은 점을 찾아낸 김독자가 빙긋 웃자 아이도 조금 긴장을 푼 듯했다.
“오빠, 나 팬케이크.”
“그래. 기다리고 있어. 손 씻고.”
종종 걸어가 자신의 방처럼 보이는 곳 문을 열고 들어가더니 가방을 내려놓고 화장실로 향한다. 말을 잘 듣네. 어느새 주방으로 가서 싱크대에서 손을 씻는 유중혁을 보며 김독자는 입을 열었다.
“너랑 진짜 닮았다.”
“그런 소릴 많이 듣지.”
유중혁은 익숙하게 앞치마를 둘렀다. 옅은 하늘색 하복 셔츠 위에 앞치마를 걸친 모습이 조금 신선하면서도 제법 볼만해 김독자가 웃었다. 왜 웃지? 그 물음에 느물거리며 잘 어울려서, 라고 대답할 여유도 생겼다. 미간을 좁힌 유중혁이 별다른 대꾸 없이 팬케이크를 만들기 시작했다. 도와줄까? 그렇게 물었지만 유중혁은 거슬리니까 식탁에나 앉아 있으라고 답했을 뿐이었다. 툴툴거리며 식탁에 앉자 어느새 나온 유미아가 김독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진짜 우리 오빠 친구예요?”
또 물어보네. 나 그렇게 친구 아닌 것처럼 보이나. 김독자가 머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유미아가 흠, 하고 그를 위아래로 훑었다. 뭐야? 뭔데?
“이상하다. 우리 오빠는 친구 만들기엔 너무 잘났는데…….”
……이건 뭐 어디서부터 태클을 걸어야 할지 짐작도 못하겠다. 할 말을 잃어버린 김독자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몇 살이야?”
“8살.”
“초등학생이겠네. 학교 갔다 온 거야?”
“학교 끝나고 학원 갔다 왔어요. 피아노 학원.”
그렇구나……. 또 무슨 얘기를 하지. 갑작스럽게 침묵하는 김독자를 대신하기라도 하듯 유미아가 바닥에 닿지 않는 다리를 통통 튀기며 김독자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우리 오빠 요리 진짜 잘 해요.”
“어…… 그런 것 같더라.”
김독자는 체육대회 날 봤던 유중혁의 도시락을 떠올렸다. 엄청났지. 그리고 동시에 유중혁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부모님이 안 계시다는 말.
살짝 고개를 들어 유중혁을 바라보자 요리를 하느라 이쪽을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유미아의 해맑은 얼굴을 돌아본 김독자는 부모님에 대해 물으려던 것을 그만두었다. 괜히 물어서 아이를 힘들게 만들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얼떨결에 유미아의 학교생활 푸념을 들어주던 김독자는 곧 식탁 위에 얹어지는 팬케이크를 보고 입을 헤 벌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본격적이고 맛있어 보이는 팬케이크였다.
“와! 잘 먹겠습니다~!”
유미아는 익숙한 듯 팬케이크를 맛있게 냠냠 먹기 시작했다. 유중혁 또한 앞치마를 벗고 유미아의 옆에 앉아 포크를 들었다. 김독자는 따끈따끈한 팬케이크를 보며 잠시 이런저런 상념에 젖었다. 물론 끝내주게 맛있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금방 한 접시를 뚝딱 해치운 유미아는 한 접시를 더 먹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특하게도 식기와 그릇을 싱크대에 담가놓고는 자신의 방으로 종종거리며 걸어간다.
“나 숙제할 거야! 들어오지 마!”
그러더니 문을 꼭 닫는다. 허……. 자기주장이 확실한 녀석이다. 그런 점도 유중혁이랑 닮은 것 같기도 하고. 김독자가 조금 피식거리자 유중혁이 빈 그릇을 모두 집어 싱크대에 담갔다. 야, 설거지는 내가 할게…… 라며 가까이 갔지만, 그러려고 너 불러온 거 아니다. 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럼 왜 불러온 건데? 하마터면 그렇게 물을 뻔했으나 김독자는 얌전히 소파에 앉았다. 잠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이어지고. 금세 설거지를 끝마친 유중혁이 손을 씻고는 김독자의 곁에 와서 앉았다.
“그…… 설마 둘이서만 살아?”
“그럴 리가.”
조심스럽게 물어온 김독자의 질문에 유중혁이 픽 웃었다. 고모랑, 고모부랑 같이 산다. 지금은 여행 가셨고. 여상히 말하며 소파에 등을 기대자 체구가 큰 녀석이라 그런지 소파가 푹 꺼졌다. 김독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저도 몸을 풀며 등을 편히 기댔다. 푹신한 소파의 감촉이 기분 좋았다.
그대로 얼마나 말없이 있었을까. 김독자는 오랜만에 평화로운 기분을 느끼며 느릿하게 눈을 굴렸다. 집이라는 건 바로 이런 걸 부르는 걸지도 모른다. 내가 사는 곳은, 여기에 비하면…… 집이라고 하기도 민망할 수준이지. 그런 생각을 하자 설핏 웃음이 나왔다. 유중혁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왜 웃지? 두 번째 같은 물음에 그와 마주본 김독자가 조금 더 웃었다.
“집 좋다.”
“…….”
그 짧은 말에 담긴 뜻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걸까. 유중혁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그래봤자 내 집은 아니지.”
김독자는 입을 다물었다. 맞는 말이었다. 이 녀석의 사정을 전부 알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부모님이 안 계시고 친척 집에서 살고 있다는 건 자신과 같으니까……. 언젠가는 나가야 할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득 김독자는 자신이 늘 느끼는 기묘한 부유감의 원인을 알아차렸다. 그래, 어쩌면 나는 땅에 발을 붙이고 있게 해주는 중력이 되어줄 것을 찾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유중혁, 너도 그런 기분을 느끼고 있을까. 아주 조금일지라도.
그렇다면, 나는…….
유중혁의 시선이 다시 김독자를 향했다. 그와 눈을 똑바로 마주친 김독자는 잠시 숨이 멎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라앉은 검은색 눈동자가 오롯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절대로 피하지도, 도망치지도 않는 눈동자. 아, 그래. 어쩌면 나는, 이 녀석의 이런 점을…….
유중혁의 손이 천천히 김독자의 뺨으로 향했다. 살갗에 닿기도 전부터 더운 체온이 전해져 와서 목덜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모양 좋은 입술이 느릿하게 벌어졌다. 김독자. 너는……. 숨도 쉬지 못한 채 그 열기에 붙들려 있자 유중혁의 등 뒤로 문이 벌컥 열렸다.
“오빠, 나 모르는 거 있는……”
유미아가 문고리를 붙든 채 그대로 멈췄다. 유중혁이 휙 몸을 돌려 아이를 바라보았다. 오빠 뭐 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렇게 말하더니 몸을 일으켜 유미아의 방으로 향한다. 김독자는 몸을 반대로 돌린 채 소파에 무너지듯 기대어 눈을 질끈 감았다. 진짜 미치겠다. 정말 미치겠다고. 나는, 그러니까, 유중혁을…….
손으로 눈가를 덮었다. 서늘한 자신의 체온이 달아오른 얼굴을 식혔다. 우주로 솟아올랐던 몸이 다시 지상으로 내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잠깐 제정신이 아니었나보다. 그치? 김독자. 네가 어떻게 유중혁을…….
문득, 김독자는 굉장히 서글퍼졌다. 그래서 애써 손가락으로 눈가를 문질러댔다. 조금이라도 정신이 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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