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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리스, 데네브, 베가 /2

김독자는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애써 끌어내리며 창밖을 훔쳐보고 있었다. 턱을 괸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흘끗흘끗 넘겨다보는 운동장에는 오후의 햇살이 가득 내려쬐고 있었다. 자, 거기 86페이지 세 번째 줄 밑줄 치세요. 들려오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건성으로 형광펜을 집어 들어 밑줄을 치고. 고개는 금방 다시 창밖으로 돌아갔다. 인생은 늘 그의 편인 적이 없었으나, 우연히도 제비뽑기로 정해진 자리가 창가인 것이 이렇게나 좋을 수가 없었다. 그 시선의 끝에 있는 것은 형광색 유니폼 조끼를 걸친 채 흘러내리는 땀을 손등으로 닦아내고 있는 잘생긴 신입생이었다.
유중혁. 사실 김독자는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작년 말에 데뷔한 프로게이머. 16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데뷔했음에도 프로들 못지않은 강심장을 장착해 실수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며…… 천재적인 컨트롤이 그야말로 압도적인, 혜성처럼 나타난 신인. 심지어는 게임 외적인 부분-얼굴이나 피지컬-조차 압도적이라서 이 게임 리그에 크게 관심이 없는 이들 중에서도 종종 아는 사람이 나타나곤 한다는 엄청난 녀석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하다는 이야기다. 아직 데뷔한 지 반 년도 되지 않은 녀석이니까. 앞으로 성장세가 기대되는 신인이라고 해야 옳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린 김독자는 운동장을 달리며 무언가 소리치는 유중혁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보면 그냥 평범한 고등학생 같은데 말이야.
평소 게임 리그를 자주 챙겨보던 김독자로서는 유중혁이 고등학교에 진학한 것이 사실 좀 신기하다고 생각했었다. 데뷔 때부터 고등학교는 가지 않을 거라는 말을 몇 번인가 한 적이 있었으니까. 그런 유중혁이 입학식에 떡하니 와 있는 걸 봤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심지어, 천문부에 입부 신청서를 들고 왔을 때는…… 말해서 무엇 할까.
눈을 천천히 깜빡이던 김독자는 문득 시선을 느끼고 교탁을 바라보았다. 누군가에게 교과서를 읽도록 시킨 사이 김독자를 바라보던 윤리 선생님은 그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마치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황급히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하, 김독자는 머리가 차갑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여전하네, 사람들은. 저런 시선들은 이제 지긋지긋하다. 인생은 언제나 그의 편인 적이 없었다. 제비뽑기로 창가 자리에 앉게 된 행운마저 또 다른 커다란 불운으로 덮여 버릴까 걱정될 만큼.
봄의 은은한 햇살이 머리카락에 내려앉았다. 김독자는 그것이 조금 성가시다고 느끼며 손을 뻗어 커튼을 쳤다.



「Polaris」
부실의 문에 자그마하게 붙어 있는 종이는 테두리를 고정한 테이프가 너덜해지고 있었다. 조만간 새로 붙여야겠는데. 문고리를 붙잡은 채 종이를 만지작거리던 김독자는 천천히 문을 열고 부실로 들어섰다. 충실히 제 기능을 하고 있는 암막 커튼 덕분에 부실 내부는 늘 적당히 어두웠다. 영상을 감상하는 경우가 많아 불도 자주 꺼놓는 편이므로 더더욱. 김독자는 그 어둑하고 적막한 공간에서 안락함을 느꼈다. 어쩌면 천문부원들 모두가 같은 마음 아닐까. 별을 보러 가면 밤하늘 아래에 있게 되잖아. 그건, 어둠 속에서 빛을 바라보는 일이다. 제법 낭만적이지. 하지만 그런 감상은 금방 깨졌다. 의자에 앉아 있던 실루엣 때문이었다.
“유중혁? 웬일이야?”
오늘은 부활동 날도 아닌데. 김독자는 반가운 마음 반, 당혹스러운 마음 반으로 그를 부르며 가까이 다가갔다. 의자 옆에 놓인 빔 프로젝터를 살펴보고 있던 유중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독자를 물끄러미 바라본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숙소에 가기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매니저 형이 학교 앞으로 온다고 했는데, 조금 늦어진다고……. 그렇게 말하더니 조금 머쓱한 듯 눈길을 돌리고 긴 손가락으로 빔 프로젝터를 만지작거린다. 김독자는 조금 웃음이 나올 뻔한 것을 참았다. 부활동 첫날부터 활동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고 폭탄선언을 했던 녀석이 이러고 있으니 웃길 수밖에.
“그러냐. 얼마나 걸리신대?”
“……30분 쯤?”
김독자는 그를 스쳐 지나가 빈 의자에 앉았다. 늘 앉는 창가 자리였다. 옆 의자에 가방을 벗어두고, 손에 들고 있던 책은 책상 위에 올려놓고. 유중혁은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걸어와서 그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왜 여기로 왔어? 다른 데 있을 데도 많지 않아? 너 찾는 애들 많던데.”
유중혁에 대한 이야기는 학년이 다른 김독자조차도 알고 있을 정도로 온 학교에 쫙 퍼져 있었다. 아, 그 잘생긴 신입생? 하는 게 일단 첫 번째였고, 그 프로게이머 한다는 애? 라는 게 두 번째. 그리고 놀랍게도 운동 신경까지 발군이라 이번 체육대회에서 우승하는 건 1학년 8반일 거라는 소리까지. 하여간 너무 잘난 것도 피곤한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턱을 괴고 바라보는데 유중혁이 무뚝뚝하게 답했다.
“혼자 있을 만한 데 찾다가.”
김독자는 눈을 깜빡이며 턱을 괸 손을 풀었다. 입을 닫은 유중혁의 얼굴은 서늘했다. 아래를 향한 시선은 무언가를 노려보듯 날카로웠고.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모두 읽어내지 못한 김독자는 조금 더 물어볼까, 하는 마음이 솟구치는 것을 눌렀다. 내가 남의 사정 신경 쓸 여유가 어디 있냐. 그래서 김독자는 왜 혼자 있고 싶었냐는 질문을 던지는 대신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나가줄까?”
“아니.”
즉시 돌아오는 대답에 조금 놀랐으나, 아무래도 놀란 것은 자신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김독자와 눈이 마주친 유중혁은 살짝 당황한 듯한 얼굴을 하더니 시선을 피했다. 김독자는 몰랐지만, 누군가의 시선을 피한다는 일 자체를 별로 해본 적이 없는 유중혁으로서는 스스로의 행동이 낯설어서 죽을 지경이었다. 유중혁의 당황한 얼굴을 잠시 바라본 김독자는 결국 슬그머니 피어오르는 장난기를 참지 못하고 입을 떼었다.
“혼자 있고 싶다며?”
“…….”
쏘아보는 시선에도 김독자는 쫄기는 커녕 하하 웃으며 그를 마주봤다. 그를 노려보던 유중혁은 이내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더니 이마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대충 쓸어 넘겼다. 됐다, 어차피 금방 나갈 거니까. 그렇게 말하더니 뒤늦게 의아한 듯 고개를 슬 기울인다.
“근데 넌 왜 여기 와 있지? 부활동은 없는 날이라며?”
“……선배라고도 안 부르냐, 유중혁?”
어이없다는 얼굴로 되묻는 말에도 유중혁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뻔뻔했다. 정말이지 엄청난 마이웨이다. 김독자는 눈을 가늘게 떴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난 여기 자주 와. 다른 부원들은 부활동 날 아니면 자주 안 오니까 혼자 있기 좋거든.”
“……너도 혼자 있고 싶어서 온 건가?”
그 말에 김독자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래, 인마. 당연히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네가 있어서 깜짝 놀랐다. 됐냐. 일부러 가볍게 말했으나 유중혁의 시선은 어느새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김독자는 속으로 욕설을 조금 지껄였다. 시발, 이 새끼도 뭔가 사연이 있는 모양이다. 별 보는 거 싫어한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챘어야 했는데. 그걸 굳이 ‘싫어한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사연이 있는 법이다.
“혼자 있고 싶은 사람이 둘이네. 어쩌지, 이거.”
결국 포기하고 여상히 말하며 손으로 책 표지를 넘기자 유중혁이 대꾸했다.
“난 상관없다.”
김독자는 책장을 넘기던 손을 멈추고 다시 유중혁을 쳐다봤다. 이 자식이 지금 뭐라는 거야. 그런 표정을 눈치 챘는지 유중혁이 덧붙였다.
“……네가 있어도 상관없다고.”
시끄럽지만 않으면. 그 말에 김독자는 마주 대답했다.
“내가 싫다고 하면?”
유중혁이 미간을 조금 좁혔다. 찡그린 얼굴도 잘생겼네.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유중혁의 입이 열렸다.
“내가 나가주길 바라면 그냥 그렇게 말해라. 난 돌려 말하는 거 질색이라.”
하, 이거 봐라. 김독자는 결국 참지 못하고 조금 웃어버렸다.
“야. 중혁아. 너 원래 그렇게 마이웨이로 사냐.”
“뭐가.”
“……아니다, 됐다.”
새끼, 맹랑하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김독자는 다시 책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딱히 더 할 말도 없고, 난 원래 목적대로 책이나 읽을란다. 하지만 유중혁은 그를 가만히 놔둘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래서?”
“뭐?”
“나가 달라는 거냐고.”
끈질긴 새끼였다. 조금 한숨을 내쉰 김독자는 페이지를 넘기며 답했다. 네가 지금처럼 귀찮게 굴지만 않으면 같이 있어도 돼. 그 말에 입을 다무는 것이 조금 귀엽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잠시 활자들을 훑어 내리다가 흘긋 쳐다보니 어느새 스마트폰을 꺼내 이리저리 만지고 있는 유중혁이 보였다. 긴 다리를 꼬고 앉아 액정을 바라보며 심란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무언가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 것인지. 아니, 아니다. 김독자, 남 신경 쓸 팔자 아니랬지. 억지로 유중혁에게서 시선을 떼어놓은 김독자는 책장을 만지작거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드르륵, 의자가 끌리는 소리에 김독자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가게?”
“어. 매니저 형 왔대서.”
책상 위에 올려놓았던 백팩을 들어 올리며 문으로 걸어간 유중혁은 문고리에 손을 얹고 김독자를 돌아봤다.
“김독자. 너……”
진짜로 선배라고 안 부르네. 결국 포기한 김독자는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매일 오나?”
“매일은 아니고. 거의 매일 오지.”
“그럼…….”
잠시 입술을 열었다 닫았다 하더니 문고리를 돌려 열고 나가버린다. 뭐야, 저 새끼. 진짜 이상한 놈이다. 아니 뭐, 내가 남보고 이상하다고 할 처지는 아니지만. 닫힌 문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김독자는 손으로 붙잡고 있던 책의 페이지를 확인했다. 한 장도 읽지 못하고 펼친 페이지 그대로인 책을.



“야, 김독자.”
어깨를 내려치는 손길에 아, 소리를 내며 돌아보니 한수영이 씩 웃으며 서 있었다. 체구도 작은 게 왜 그렇게 손이 매워. 투덜거리자 한수영은 낄낄 웃으며 김독자의 책상에 턱 걸터앉았다. 치마 속에 체육복 바지를 입은 채 건들거리며 다리를 꼬고. 이미 익숙한 일이었기에 김독자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뭐 빌려가려고 왔는데? 세계사?”
“야, 나라고 맨날 교과서 안 들고 다니는 줄 알아?”
물론 빌리러 온 거 맞긴 하지만. 그 말에 김독자는 어이없어하면서도 서랍에 손을 넣어 뒤적거렸다.
“어?”
왜 그래? 한수영의 물음에 김독자는 다시 한 번 서랍 속에 있는 책들을 꺼내 확인하며 대답했다.
“세계사 책이 없어.”
“뭐야. 너도 안 들고 왔냐.”
“아니거든, 나 세계사는 학교에 두고 다닌다고……”
그렇게 말하는 사이 뒤에서 낄낄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씨발. 김독자는 불길한 예감이 적중하는 것을 느끼며 눈썹을 잔뜩 찌푸렸다.
“김독자. 이거 찾냐?”
뒤를 돌아보니 손가락으로 교과서를 빙빙 돌리고 있는 개새끼의 낯짝이 보였다. 송민우. 김독자는 싸늘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돌려줘.”
“싫은데, 새꺄.”
이 새끼는 정말 최악이다. 김독자는 이를 빠득 갈았다. 이상한 애, 무서운 애라며 슬슬 피하는 시선은 차라리 나았다. 무시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이처럼 직접적으로 가해지는 조롱과 괴롭힘은 무시해서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의자를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가 하얗게 변하는 것을 본 한수영이 책상에서 벌떡 일어서며 날카롭게 외쳤다.
“미친 새끼. 빨리 내놔. 뭐 하는 거야?”
“뭐랬냐? 미친 새끼?”
삽시간에 살벌해지는 분위기에 주변 애들까지 난리가 났다. 선생님을 불러온다며 달려 나가는 녀석도 있었고. 김독자는 자리에서 일어서 한수영 옆에 섰다.
“일 크게 만들기 싫어. 그러니까 지금 돌려줘.”
“싫다면 어쩔래?”
개새끼. 김독자의 입모양을 읽은 것인지 송민우가 책을 바닥에 내던지고 성큼성큼 걸어와서 그의 멱살을 쥐었다. 씨발, 미쳤어?! 황급히 손을 떼어내려는 한수영을 밀쳐내고.
“맞고 싶냐, 씨발 새끼야.”
김독자는 멱살을 잡힌 채로도 개의치 않고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쳐봐, 개새끼야. 하나도 안 무서우니까.”
“이 씨발놈이……!”
송민우의 주먹이 날아오려는 찰나 무언가 길쭉한 것이 빠르게 두 사람 사이를 내려쳤다. 깜짝 놀라 손을 놓고 뒤로 물러선 녀석과 김독자의 사이에 키 큰 여학생이 끼어들었다.
“송민우 또 사고 치냐?”
어깨에 죽도를 걸친 정희원이 잔뜩 찌푸린 얼굴로 두 사람을 쳐다봤다. 송민우가 씨근덕대며 달려들려 하자 정희원이 죽도를 뻗어 끄트머리로 그의 가슴팍을 쿡 찔렀다.
“악, 씨발. 정희원 미친……!”
“아프냐? 존나 살살 찔렀는데. 엄살은.”
정희원이 히죽 웃자 송민우는 완전히 빡친 듯했다. 그 때, 누군가가 불러온 것인지 담임선생님이 뒷문으로 들어섰다. 너희들 뭐 하냐! 그리고 네 사람은 꼼짝 없이 교무실로 불려가게 되었다.



“제가 봤다니까요. 저 새끼가 먼저 김독자 교과서를……”
“한수영. 말 곱게 해. 어디 선생님 앞에서 욕을 해?”
한수영은 씩씩대며 이를 갈았다. 그 옆에서 빡친 얼굴로 뒷짐을 지고 서 있던 정희원이 입을 열었다.
“제가 보기에도 송민우가 먼저 잘못했어요.”
“뭐야, 넌 뒤늦게 온 주제에 무슨……”
“송민우 너도 좀 입 다물어!”
송민우의 말도 일축한 선생님은 하아아, 한숨을 내쉬며 눈가를 문질렀다.
“너네 대체 왜 그렇게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냐? 응? 왜 그렇게 싸우는 건데?”
누구도 대답하지 않은 채 침묵이 계속되었다. 선생님은 이마를 꾹꾹 누르며 혼잣말처럼 훈계를 계속했다. 정말이지 내가 속이 다 터진다. 응? 작년엔 같은 반이라 자주 싸우나 싶었더니만 이젠 다른 반이어도 싸우냐? 애초에 송민우 너는 왜 3반에 왔어? 너 5반이잖아? 그 말에 송민우가 시선을 슬슬 피했다. 그제야 대충 상황 파악이 된 선생님은 잠시 고민하더니 처분을 내렸다.
“한 번만 더 둘 사이에 싸움 났다 싶으면 둘 다 벌점 왕창 매길 거니까 조용히 좀 살아. 어? 피곤해 죽겠다 진짜.”
다들 가봐. 그렇게 말하며 손을 휘휘 내젓기에 네 사람은 모두 등을 돌려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문을 닫기 직전에 뒤를 돌아본 김독자는 대단히 애매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담임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그 시선에 담긴 의미를 아주 잘 아는 김독자는 그저 조용히, 문을 닫았다.
“담임 저 꼰대 진짜. 자기 귀찮은 일 생기는 거 싫어서 맨날 저런 식이지.”
뭘 봐? 꺼져. 정희원이 눈을 부라리며 말하자 송민우가 씨발, 하고 욕설을 지껄이며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저 새끼 언제쯤 김독자 가만 냅두지? 저걸 확 조졌어야 했는데. 이런저런 말을 하는 두 사람 사이에서 김독자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걸었다.
“야. 김독자. 괜찮냐?”
고개를 들어 올린 김독자는 저를 바라보는 한수영과 정희원의 시선에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나 먼저 갈게.”
“어? 야, 어디 가! 수업 시간이잖아!”
김독자는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위층으로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한수영과 정희원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저거 또 부실 가는구만.”
“하여간 혼자 있는 거 좋아해가지고…….”
야! 가서 문 잠가라! 송민우 못 들어가게! 한수영의 외침을 들었는지 말았는지 실루엣은 금방 사라졌다. 너나할 것 없이 자리에 멈춰선 한수영과 정희원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쟤는 언제쯤 우리한테 자기 속내를 털어놓을까.”
“내 말이.”
김독자가 외로운 녀석이라는 것은 둘 모두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외로움을 절대로 나누려 하지 않는 녀석이라는 것도. 그들은 애써 김독자를 이해해보려 노력했다. 그가 혼자서 고통받아온 시간은 아주 길었을 것이고, 자신들과 함께 보낸 1년은 그에 비하면 짧을 테니까. 하지만, 그래.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 든다고 해도…… 이상한 것은 아니겠지.
“……가자.”
두 사람은 천천히 조용한 복도를 걸었다. 아, 수업 듣기 존나 싫어. 그런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김독자는 천문부실의 문을 열었다. 달칵, 등 뒤로 문을 닫아 잠금쇠를 걸고. 조용하고 어두운 부실의 공기 속에서 스르르 주저앉은 김독자는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씨발…….”
좆같아. 내 인생은 왜 늘 이런 식일까.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잊을만 하면 괴롭혀 오는 새끼들 때문에 그의 인생은 늘 엉망이었다. 그러니까 좋은 일이 생기더라도 곧 나쁜 일이 일어날 거라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마는 것이다. 무릎에 고개를 파묻고 있던 김독자는 머릿속을 파고드는 온갖 생각을 몰아내려 애쓰며 한참이나 심호흡을 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자니 천천히 마음이 가라앉는 것 같기도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눈가를 문지른 김독자는 몸을 일으켰다. 어떻게든 기분을 전환할 것이 필요했다. 씨발, 책이라도 들고 올걸.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고개를 들어 올리자 책상 위에 덩그러니 올려져 있는 책이 한 권 보였다. 뭐지? 가까이 다가가 보니 며칠 전 자기가 읽고 있던 그 책이었다. 이게 왜 여기 있어? 내가 빌린 건 가방에 있을 텐데……. 책을 집어 들어 휘리릭 넘기니 가운데에 무언가 꽂혀 있는 것이 보였다. 펼쳐보니 그건…… 유중혁의 학생증이었다.
허. 뭐야, 이건? 김독자는 반질거리는 학생증을 만지작거렸다. 잘생긴 얼굴이 가운데에 박힌 멀끔한 학생증. 학생증 사진은 다들 엉망으로 찍힌다더니 유중혁은 예외인 모양이었다. 이게 왜 여기 있냐. 잠시 그것을 앞뒤로 돌려보던 김독자는 어떠한 생각에 도달해 손을 멈췄다. 이 녀석…… 혹시 이걸 책갈피로 쓴 건가? 그럼 이 책을 빌린 건 유중혁? 아니 근데 이걸 왜 여기다 두고 가? 그런 생각을 하는 데 철컥, 하고 문 쪽에서 소리가 났다.
김독자는 소스라치게 놀라 학생증을 툭 떨어뜨렸다. 황급히 주워 책 사이에 다시 꽂아놓고선 살그머니 문으로 다가갔다. 누구지? 설마 송민우? 조금 긴장한 채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자 다시 철컥, 하고 문고리를 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고민하던 김독자는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누구야?”
살짝 날카로웠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답은 바로 돌아오지 않았고. 문에 손을 얹은 채 가만히 기다리자 이제는 조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김독자?”
유중혁이었다. 김독자는 하아, 한숨을 몰아쉬며 가슴을 내리눌렀다. 안도감에 몸이 따뜻해진다 느껴질 정도였다. 일단 문을 열어줘야……. 문고리에 손을 올리다가 문득 지금 자신의 얼굴이 엉망일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하지만 어두우니까 괜찮지 않을까. 그래서 김독자는 천천히 문을 열어주었다.
“……?”
안으로 들어와 다시 문을 닫은 유중혁은 금방 몸을 돌려 반대편으로 걸어가는 김독자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독자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창가에 섰다.
“여긴 또 왜 왔냐?”
“두고 간 게 있어서.”
파라락,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 그 책은 유중혁이 빌린 게 맞는 모양이었다. 김독자는 한숨을 쉬며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찾았으면 가 봐.”
하지만 유중혁은, 이번에도 그의 말대로 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저를 향해 가까워지는 발소리를 들으며 김독자는 속으로 욕설을 지껄였다. 이 새끼는 도대체 왜……. 바로 뒤에 와서 멈춰서더니 묻는다.
“무슨 일 있었나?”
“……네가 신경 쓸 일 아니야.”
대답하며 눈을 꾹 감고 머리를 쓸어 올렸다. 잠시 말이 없던 유중혁은 반 발짝 더 움직여 그의 옆에 섰다. 김독자는 얼른 몸을 반대편으로 돌렸다. 그러자 답지 않게 부드러운 손길이 어깨에 닿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 커다란 손으로부터 전해지는 온기에 김독자는 흠칫 몸을 떨었다. 그걸 어떻게 해석했는지 유중혁이 손을 뗐다.
“……무슨 일이 있긴 있었나 보군.”
“네가 신경 쓸 일 아니라고 했지.”
날선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유중혁은 물러서지 않았다.
“아까 위층이 시끄럽던데. 너랑 관련된 일이었나?”
“신경 꺼.”
“…….”
유중혁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조금 뒤로 물러섰다. 그제야 김독자는 자신이 숨을 멈추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발, 내가 왜……. 호흡을 고르고 있는데 유중혁이 뒤에서 천천히 손목을 붙잡아 왔다.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자 유중혁은 일부러 그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은 채 손에 무언가를 쥐여 주었다.
“아까 받았는데, 나는 단 건 별로 안 좋아해서. 너 먹어라.”
간다. 그렇게 말하고선 성큼성큼 걸어 부실 문을 닫고 나가버린다. 김독자는 멍하니 손에 쥐여진 바스락거리는 것을 쳐다봤다. 포장지에 싸인 초콜릿이었다. 주머니 속에 들어 있기라도 했던 것인지 그것은 조금 녹아 있었고, 또…… 따뜻했다.
김독자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쪼그려 앉은 채로 그 녹은 초콜릿을 쥐고 한참이나 울었다. 밤하늘이 싫었다. 하늘에서 빛나는 별은 더더욱 싫었다. 인생에서 한 번도 제 편을 들어준 적 없던 새카만 하늘에 별처럼 빛나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 어두운 하늘 속에서도 희미하게 빛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고. 아주 가끔 고개를 내미는 그 어둡고 희미한 별을 보는 것이 좋아져 버렸는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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