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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북극성에게 /2

유중혁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미친 듯이 솟았던 심박이 간신히 안정권으로 내려앉았다. 김독자가 그의 손아귀에 붙잡힌 팔을 빼내려는 듯 비틀었으나 놓아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대로 붙잡은 채 유중혁은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10년, 자그마치 10년 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시간이다. 유중혁은 그의 얼굴이 얼마나 많이 변했을지 수도 없이 상상했었다. 하지만, 그래, 눈앞에 선 사내의 얼굴은…… 그가 상상했던 모습 그대로 같기도, 아니기도 했다.
여전히 허여멀건한 얼굴. 그림자를 드리울 정도로 긴 속눈썹과 가는 머리칼, 애매한 미소. 그런 것들은 어찌 그리 변하지도 않는지 그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모습과 꼭 같았다. 하지만 앳된 기운이 싹 사라진 탓에 전체적인 분위기가 상당히 달랐다. 소년과 남자의 경계에 서 있는 듯한, 건드리면 부서질 것 같은 위태로운 기색도 이제는 보이지 않았다.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이전에는 금방이라도 깨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금이 간 도자기 같은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끝을 알 수 없도록 깊고 검은 상자처럼 보였다. 묵연한 눈빛이 잠시간 유중혁을 마주했다.
“하아…….”
긴 한숨을 내쉰 김독자가 작게 소리 내서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마치 1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일었다. 그는 곤란한 기색이 만연한 얼굴을 하더니 이내 유중혁 쪽으로 몸을 완전히 돌렸다.
“어떻게 알아봤냐, 도대체. 아니 몸은 또 왜 그렇게 빨라서……”
“내가 널 못 알아볼 거라고 생각했나?”
조금 쏘아붙이듯 내뱉어진 목소리에 할 말을 잃은 듯 잠시 입이 꾹 다물어졌다. 유중혁은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중혁아. 일단 이것 좀 놓고 얘기하자.”
“안 된다.”
“도망 안 갈게.”
“믿을 수 있을 만한 소리를 해라, 김독자.”
유중혁은 고개를 들어 주변을 훑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을 지켜보며 수군대는 사람들이 몇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지, 그렇게 말하고 김독자의 팔을 붙잡은 채 가게 안으로 들어선 유중혁은 문을 잠그고 그를 가게 안쪽으로 몰아넣었다. 야, 중혁아, 왜 이래……. 미약한 항의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카운터 쪽으로 밀어붙인 뒤 공간을 가르는 차단막을 내렸다. 주방을 기웃대는 시선이 귀찮아서 만들어 둔 것이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순식간에 어두컴컴한 공간에 갇힌 김독자가 머뭇거리며 벽으로 몸을 붙였다.
“유중혁. 너 이럴 것까진……”
“이럴 것까진 없다고?”
성큼성큼 코앞에 서서 씹어뱉듯 말하니 김독자가 슬 시선을 피했다. 그 얼굴을 보며 유중혁은 하, 숨을 뱉곤 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렸다.
“그러니까 지금.”
“…….”
“몰래 찾아와서, 내 얼굴만 보고 다시 도망가려고 했다가.”
실패해서 붙잡혀 놓고선, 도망 안 가겠다고? 이럴 것까진 없다고? 도대체가 말이 되는 소리를…….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을 꾹 눌러 참았다. 유중혁이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김독자가 슬금슬금 다시 시선을 돌려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조금 망설이는 듯 입술을 달싹이다가 목소리를 냈다.
“중혁아.”
“…….”
“화 많이 났냐.”
화가, 났느냐고.
유중혁은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당연히 화가 났다. 미친 듯이 화가 났었다. 분노로 돌아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하지만 그 분노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 향한 것이었다. 김독자가 사라지기로 결심할 때까지 알아채지 못한 자신이, 그가 그런 생각을 하도록 내버려 둔 스스로가 견딜 수 없이 한심해서. 내가 조금만 더 잘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내가 더 노력했더라면.
그래서 유중혁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한없이 눈앞에 있는 흰 얼굴을 바라봤다. 기쁜 건지, 화가 나는 건지, 그도 아니면…… 어떤 다른 감정인지, 제대로 갈무리하지도 못한 채로.
“중혁아.”
다시 한 번 김독자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대로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더니 그의 뺨에 가져다댄다. 서늘한 감각에 유중혁은 숨을 들이켰다. 예나 지금이나, 네 손은 도대체 왜 이렇게 차가운 건지.
김독자, 나는 그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네가 어디에 있더라도 내가 함께 있겠노라고, 그걸 위해 가장 높은 곳에서 누구보다도 빛나주겠다고. 길을 잃고 헤맬 때면 다시 북쪽을 가늠할 수 있도록 북극성이 되어주겠다고. 그렇게 결심했었기에 나는.
그런데 그것들이 사실은, 네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던 것일까.
그래서 너는, 나를 떠나려 했던 것일까.
밀려오는 후회와 지난한 시간들로 시야가 흐려졌다.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옅게 웃은 김독자가 손바닥으로 그의 뺨을 부드럽게 쓸었다. 유중혁은 말없이 그 위에 제 손을 겹쳤다. 중혁아, 그리운 울림으로 저를 부르며 김독자가 웃었다.
“나 오랜만에 네가 만든 팬케이크 먹고 싶다.”
만들어 줄래? 물끄러미 그 시선을 마주하던 유중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독자는 제법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포크를 만지작거리며 입을 움직이는 모양새가 퍽 보기 좋았다. 너 요리 실력이 더 늘은 것 같아. 그 말에 유중혁은, 10년이나 지났으니 당연하지 않나, 하고 대답했다. 김독자가 눈을 접으며 실실 웃었다. 그만 좀 찔러라. 양심 아파 죽겠거든. 유중혁은 대답하지 않은 채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아 앉았다. 가게 전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는 탓에 밖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차단할 방법이 없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최소한의 조명만 밝혀둔 어둑한 상태였다. 그래도 이 정도 불빛이면 밖에서 얼굴까지 알아보지는 못할 것이다.
오랜만에 조도가 낮은 공간에 김독자와 마주보고 앉아있으니 새삼스럽게……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오로지 그를 만나기 위해 뻔질나게 드나들던 천문부실. 처음에는 자신이 왜 그렇게 부실을 자주 찾아가는지도 인지하지 못했다. 그렇게 깨달음은 늘 습관보다 한 발짝 늦게 찾아왔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언제나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래된 기억이군. 유중혁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김독자는 금방 접시를 비웠다.
“……맛있네.”
“감상이 아주 늦게 나오는군.”
조금은 날선 대답에도 김독자는 제 페이스를 되찾은 듯 빙긋 웃었다. 그만 화내라, 중혁아. 뜨끔한 유중혁은 느릿하게 대꾸했다. 화낸 거 아니다. 뭐가 재밌는지 소리 내서 웃은 김독자가 천천히 말했다.
“종종 생각나더라고. 네가 해줬던 음식들이.”
그렇게 말하며 아득히 먼 것을 바라보듯 빈 접시를 바라본다. 그 눈빛이 유중혁은 대단히 무겁게 느껴졌다. 낯선 얼굴이었다. 썩 마음에 드는 시선이 아니었기에 유중혁은 한숨을 쉬고 몸을 조금 일으켰다. 부족하면 더 만들어 오지. 김독자는 손을 내저었다.
“먹을 거 말고, 술이나 한 잔 하러 갈래?”
술? 유중혁은 한쪽 눈썹을 슬쩍 들어올렸다. 생각해 보면…… 김독자와는 미성년자일 때 헤어졌으니 함께 술을 마셔본 적이 없었다. 물론 그 시절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본 적 없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아니오였으나. 10년 만에 만나니 이런 일도 생기는군. 유중혁은 고개를 끄덕이고선 가볍게 뒷정리를 하고 코트를 걸쳤다. 이제 보니 김독자는 정장 비슷한 차림이었다. 회사에 다니는 건가? 짧게 생각했으나 천천히 물어보기로 하고 자연스럽게 차키를 꺼내들던 유중혁이 고개를 돌렸다.
“차를 가지고 왔나?”
“아니. 난 대중교통 파라서.”
웃는 얼굴에 유중혁은 어깨를 으쓱하고 밖으로 나서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의 뒤를 따라 나와 잘 빠진 늘씬한 차체를 잠시 감탄한 눈으로 바라보던 김독자가 옆자리에 올라탔다. 안전벨트 매라.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벨트를 붙잡으려는데 김독자가 작게 웃었다. 왜 웃지? 눈을 돌려 바라보니 김독자가 눈매를 슬 휘어 접었다.
“네가 매줄래?”
유중혁은 잠시 말문이 막혀 그를 쳐다봤다. 무슨 소릴 하는 거지.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김독자가 말을 덧붙였다. 아니, 보니까 막 안전벨트도 서로 매주고 그러던데……. 시선은 조금 피하고 있었으나 그다지 당황한 어조는 아니었다. 이 녀석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종잡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유중혁은 순순히 그가 원하는 대로 해주기로 했다. 한 손으로 시트 등받이를 붙잡고 몸을 기울여 안전벨트를 당겼다. 그와 동시에 자연스럽게 거리가 가까워졌다. 저도 모르게 눈을 들어 김독자를 바라본 유중혁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시선과 정확히 마주쳤다.
“…….”
숨 막히는 침묵이 둘 사이에 머물렀다. 고작 한 뼘 정도 될까 말까한 거리였다. 둘 모두 긴장해 호흡을 참고 있기라도 한 것인지 숨소리 하나 오가지 않았다. 유중혁은 억지로 시선을 끌어내리며 짧은 충동을 억눌렀다. 찰칵, 안전벨트가 고정되는 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키자 김독자가 작게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득 조금 웃음이 나올 것 같아 손으로 입가를 문질렀다. 웃을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그렇게나 긴장할 거면서, 도대체 왜 그런 요구를 해온 것인지. 곧이어 자신의 안전벨트까지 착용한 유중혁이 휴대폰 화면을 켜며 물었다.
“자주 가는 데라도 있나?”
“아니. 너는?”
유중혁은 술을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이 종종 심란할 때 찾는 바가 없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가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정희원이 일하고 있는 바였으나…… 유중혁은 다른 곳으로 가기로 했다. 일단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두 사람은 유중혁이 종종 찾곤 하는 제법 한적한 바에 도착했다. 유중혁은 애초에 카운터석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고, 김독자는 별 의견이 없었기에 조금 구석진 테이블석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술은 잘 하는 편인가?”
“글쎄.”
애매한 대답이군. 유중혁은 다시 한 번 그의 의견을 물었다. 어떤 종류가 좋지? 칵테일? 와인? 하지만 여전히 모호한 대답만 돌아왔다. 네가 좋아하는 걸로 해. 그래서 유중혁은 도수가 제법 있는 위스키를 주문했다. 약간의 심술이었다. 그다지 취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위스키 정도로 참았지만. 이윽고 둥근 잔에 따라진 금빛 액체를 입에 조금 머금은 김독자는 가지런한 눈썹을 휘었다. 그 모습을 본 유중혁이 속으로 작게 웃고.
“도수 높아…….”
“내가 좋아하는 걸로 하라며?”
“유중혁 너 진짜.”
조금은 원망이 담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계속 모른 척 하려다가, 유중혁은 생각을 바꿨다. 잔을 내려놓고 눈을 마주쳤다.
“네가 말을 해주지 않으니까.”
“…….”
“뭘 좋아하는지,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술을 잘 마시는지. 술을 마실 때 안주를 곁들이는지 아닌지. 안주를 곁들인다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프레첼인지, 샌드인지, 그도 아니면 뜨끈한 오뎅탕 국물에 소주를 좋아하는지. 정말로 나와 술을 마시고 싶었던 것이 맞는지. 진심으로 내 얼굴만 보고 돌아갈 생각이었는지.
지난 10년간, 어떻게 지냈는지.
아직도 나를 좋아하는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유중혁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을 꾹 다물어 넣고 다시 술잔을 입에 가져다댔다. 김독자도 말없이 술잔의 테두리를 만지작거렸다.
제법 오랫동안 침묵이 흘렀다. 대화 한 점 오가지 않은 채 잔이 조금씩 비워지고, 유중혁은 슬슬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더 마시고 싶진 않군. 고개를 들어 김독자를 바라봤다. 그는 눈가가 조금 붉어진 채로 턱을 괴어 잔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얼굴. 예전에도 그다지 알기 쉬운 편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더더욱 읽어내기가 어려워졌다. 역시 세월은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인지.
“김독자.”
부름에 그가 고개를 들어 올려 시선을 마주해왔다. 눈꺼풀이 천천히 팔랑거렸다. 그 눈을 본 순간 유중혁은 바로 알아차렸다. 취했군. 속으로 혀를 차고선 몸을 일으켰다. 이만 돌아가지, 데려다주겠다. 그는 별 대꾸도 없이 순순히 유중혁에게 팔을 붙잡혀 가게 밖으로 나왔다.
“하아…….”
초가을의 조금은 서늘한 밤공기가 얼굴에 닿자 정신이 드는지 한숨을 내쉰다. 유중혁은 제 쪽으로 실려 오는 체중을 느끼며 문득 감상에 젖었다. 예전에도 분명, 이런 일이 있었지. 지금처럼 술을 마신 남자 둘은 아니었겠다만. 김독자의 옆얼굴을 잠시 바라본 유중혁은 짧은 고민에 빠졌다. 택시를 태워서 보내야 하나. 아니면 대리운전을…… 그 때 김독자가 유중혁을 향해 몸을 돌렸다.
“중혁아.”
취한 사람치곤 제법 멀쩡한 발음이었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이 아니었다면 맨 정신이라고 오해할 뻔했다. 김독자, 집이 어디…… 말하려는 순간 그가 제 어깨에 고개를 폭 파묻었다. 유중혁은 당황해 몸을 굳혔다. 고스란히 실려 오는 무게에 얼떨결에 두 팔을 붙잡아 그를 지탱했다. 뜨끈한 이마를 어깨에 기댄 채 김독자가 웅얼거리듯 말했다.
“중혁아. 나 집에 못 가.”
“……뭐?”
“나 집 서울 아니거든.”
그러더니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치고, 살풋 웃는다. 그 미소에 유중혁은 어찌할 바 없이 눈을 흐렸다. 밑바닥으로부터 끓어오르는 충동 비슷한 것을 간신히 억눌렀다. 김독자,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어느새 유중혁의 어깨에 두 손을 올린 김독자가 속삭이듯 말했다. 중혁아. 나 너희 집에서 재워줄 수 있냐.
유중혁은 어쩔 수 없이 휴대폰을 들어 대리운전을 불렀다.



“으응…….”
침대에 내려진 김독자가 웅얼거리는 소리를 냈다. 유중혁의 오피스텔까지 그다지 먼 거리도 아니었건만 그새 잠깐 잠이 들었길래 그를 들쳐 메고 집에 들어온 참이었다. 내려앉는 감각에 조금 정신이 들었는지 김독자가 눈가를 문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붉었던 얼굴에선 취기가 살짝 가셔 있었다. 금방 깨는 편인가. 유중혁은 수납장을 열어 칫솔을 꺼내 그의 손에 쥐여 주었다. 욕실은 저쪽이다. 수건은 안에 있어. 일단 씻고 나와라. 김독자는 순순히 욕실로 향했다. 그래도 그다지 비틀거리지는 않는군. 유중혁 또한 몸을 일으켜 침실에 딸린 작은 욕실로 향했다. 자신도 정신을 좀 차릴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차가운 물이 머리카락을 적시자 시야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금방 몸을 씻고 나온 유중혁은 뒤늦게 김독자에게 갈아입을 옷을 주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수했군. 옷장을 뒤적여 그나마 사이즈가 맞을 듯한 티셔츠와 바지를 꺼내 욕실로 향했다. 문을 두어 번 두드리고, 갈아입을 옷은 밖에 뒀다, 말한 뒤 소파에 앉아 적당히 마른 머리를 더 털어냈다. 취한 것은 아니었지만 제정신이 아니긴 한 모양이었다. 어쩌다가 그를 제 집으로 데려오게 되었단 말인가.
하지만 이내 유중혁은 생각했다. 술을 마시지 않았어도, 이렇게 했을 것이다. 김독자가 오고 싶지 않다 말했어도 데려왔을 지도 모른다. 여기서 다시 놓쳤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그런 의미에서 김독자가 제 입으로 재워달라고 말한 것은 그에게 있어 상당히 괜찮은 일이었다. 유중혁은 고개를 돌려 침실 쪽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역시…… 잠은 따로 자야겠지.
그 순간 달칵, 하고 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의식적으로 돌아보려던 유중혁은 고개를 붙잡아 두었다. 옷을 입지 않았겠군. 역시나 그대로 문이 닫혔다가, 조금 뒤 다시 열렸다. 그제야 유중혁은 고개를 돌려 김독자를 바라보았다. 하얀 티셔츠와 잿빛 바지를 입은 그가 머리 위에 수건을 얹은 채로 걸어왔다. 작은 옷으로 준다고 줬는데도 어깨가 남는군, 어쩔 수 없나…….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김독자가 그의 옆에 가볍게 주저앉았다.
“옷이 좀 크군. 괜찮나?”
“할 수 없지.”
그래도 예전보단 키가 좀 컸는데…… 너도 커서 그런가? 아직도 차이가 좀 나는 것 같네. 그렇게 말하며 웃는 김독자는 제법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옅은 습기와 함께 뜨끈한 온도가 전해져 왔다. 따뜻한 물로 씻은 탓인 듯했다. 머리를 조금 털어내는 김독자를 향해 유중혁은 말했다.
“침대에서 자라.”
“너는?”
“나는 소파에서 자면 된다.”
김독자가 수건을 무릎으로 내리고선 그를 쳐다봤다. 유중혁은 피하지 않고 시선을 마주했다. 김독자의 손이 느릿하게 들어 올려졌다. 손가락 끝이 가볍게 그의 이마를 스쳤다. 이번엔, 서늘하지 않았다. 유중혁은 김독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술기운이 아닌,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 여파에 불그스레 달아오른 두 볼. 이마를 스치던 손가락이 천천히 뺨으로 내려왔다. 그대로 귓가를 간질이고, 턱선을 덧그리듯 움직이더니, 입술 위를 닿을 듯 말듯하게 오간다. 유중혁은 얕은 한숨을 뱉으며 눈을 꾹 감았다.
“김독자. 무슨 생각을 하는진 모르겠지만……”
적당히 해라, 그렇게 말할 셈이었는데.
부드러운 감촉이 입술에 닿았다. 유중혁은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고개를 떼어낸 김독자가 작게 웃었다. 중혁아. 이름을 불러오는 목소리가 못내 간지러웠다. 유중혁은 당혹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어떤 작은 기대감 같은 것이 고개를 들었다. 어떠한 말도 없이 사라져 버렸기에 유중혁은 그가 무슨 마음으로 자신을 떠났는지 알지 못했다. 이제는 내가 싫어진 건지, 혹은 아직도 나를 좋아하는지. 그 대답을 들어야만 정말로 김독자를 놓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찌 보면 지독한 이기심이었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중혁은 그를 찾아다녔다.
유중혁의 손에 김독자의 손가락이 얽혀들었다. 다른 손이 다시 한 번 뺨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유중혁은 생각했다. 이걸 네 대답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건가. 김독자, 너는 아직 나를 좋아하나. 그렇게 받아들여도 되는 건가.
유중혁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그의 손 위에 겹쳤다. 고개를 돌려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제가 먼저 손을 댈 땐 언제고, 움찔 몸을 떠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유중혁은 멈추지 않고 입술을 조금 더 움직였다. 손목 안쪽에 입을 맞추고선 그대로 끌어당겨 허리를 감싸 안았다. 저항 없이 끌려온 마른 몸이 품에 쏙 들어왔다.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나 감각이 흐릿해지기는 했으나, 체감상으로는 예전 그때보다 더 마른 것 같았다. 눈꺼풀 위에 가볍게 입술을 내리눌렀다. 허리를 끌어안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입술이 겹쳐졌다.
김독자는 망설임 없이 그에게 응해왔다. 살짝 벌어진 입술 틈새로 혀를 밀어 넣자 순순히 입을 더 벌린다. 유중혁은 고개를 꺾으며 다른 손으로 그의 목 뒤를 받쳤다. 혀가 얽혀들며 아릿한 감각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얼핏 옷자락이 잡아당겨지는 느낌에 흘긋 보니 김독자의 손이 제 옷을 쥐고 있었다. 이건 어쩌면, 버릇인가. 생각해 보면 키스할 때 늘 옷자락을 붙잡곤 했던 것 같다. 픽 웃은 유중혁은 그의 손을 붙잡아 제 목에 둘렀다. 잠깐 멈칫한 김독자는 이내 그의 목을 끌어안고 다시 눈을 감았다. 멈추지 않고 키스를 이어가는데 문득 김독자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잠깐, 잠깐만…….”
뭐지? 입술을 떼어낸 유중혁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김독자가 밭은 숨을 내쉬며 눈을 깜빡였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잠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듯 눈을 굴렸다. 이제 와서 망설여지는 것일까. 유중혁은 그가 싫다고 하면 멈출 용의가 충분했다. 물론 쉽지는 않겠으나. 무슨 문제라도 있나? 그렇게 묻자, 머뭇거리던 김독자가 말했다. 그러니까, 중혁아.
“나, 처음인데…….”
순간 유중혁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얼얼한 감각을 느꼈다. 생각해보니…… 그렇군. 본능에 따라 입을 맞추긴 했으나 유중혁 또한 남자와 관계하긴 처음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키스 뒤로 이어질 일들이 뒤늦게 떠올랐으나 유중혁은 다시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중혁아? 불러오는 목소리에 그의 무릎 아래로 손을 넣어 가볍게 안아 올렸다. 야, 잠깐만……! 다급히 떨어지지 않으려 목덜미를 껴안아 오는 김독자를 안아 든 채 유중혁은 침실로 향했다. 그 행동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얼굴을 붉히며 우물거리는 김독자를 침대 위에 내려놓았으나 그는 여전히 유중혁의 목을 끌어안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김독자.”
“중혁아. 그러니까, 그……”
살짝 고개를 든 김독자가 유중혁을 쳐다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끝까지 할 거야……? 그 물음에 유중혁은 기어이 조금 웃고 말았다. 삽시간에 화르륵 불타오른 얼굴로 김독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왜, 왜 웃냐……! 넌 처음 아니야?”
“글쎄.”
일부러 대충 대답하고는 그의 팔을 풀어내고 침대에 눕혔다. 약간의 심술이었다. 푹신한 베개에 고개를 묻은 채로 우물쭈물 거리고 있는 김독자의 위로 올라탔다. 중혁아, 잠시만, 나 마음의 준비가……. 유중혁은 코웃음을 치며 그의 양 손목을 붙잡았다.
“김독자.”
“으, 응?”
“끝까지 할 용기도 없으면서 날 유혹했나?”
본디 새하얬을 얼굴이 또 다시 새빨갛게 물들었다. 미치겠군. 고개를 숙여 귓가를 가볍게 깨물고 목덜미를 지분거리자 김독자가 몸을 움찔거렸다.
“유, 유혹한 건…… 아니……”
“아니라고?”
어디 더 말해봐. 그렇게 말하며 눈을 똑바로 마주하자 김독자가 슬 시선을 피했다. 다시 작게 웃은 유중혁이 손으로 김독자의 조금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반듯하게 드러난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자 간지러운 듯 몸을 움찔거린다.
“김독자.”
“……응?”
“싫으면 지금 얘기해.”
시선이 허공에서 만났다. 김독자는 한참이나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유중혁은 인내심 있게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결국 눈을 감고 앓는 소리를 낸 김독자가 갑작스럽게 고개를 들어 유중혁의 입술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유중혁이 눈을 깜빡이자 김독자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안 싫어.”
“대답이 미적지근하군.”
부러 몸을 일으켜 멀어지려 하자 김독자가 다급히 그의 옷을 붙잡았다. 붙잡아놓고도 조금 부끄러웠는지 금방 놓아주긴 했지만. 입을 꾹 다물고 원망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가만 받아주고 있자니 김독자가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좋아.”
“뭐라고?”
“조, 좋으니까, 계속 하자고……!”
유중혁 개새끼야, 하고 중얼거린 것 같았으나 너그러이 봐주기로 했다. 어찌 됐든 제 발로 날 찾아와줬으니 이 정도는 봐주기로 할까……. 유중혁은 몸을 숙여 입을 맞추고는 그의 아랫입술을 가볍게 깨물었다. 티셔츠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어 허리와 배를 쓸자 헉, 하며 가볍게 몸을 뒤튼다. 아랑곳하지 않고 느릿한 손길로 등을 뭉근하게 쓰다듬자 김독자가 하아, 하고 숨을 뱉어냈다. 뺨에 다시 입을 맞춘 유중혁은 손을 움직여 그의 티셔츠를 벗겨냈다.
거의 투명하게 느껴질 정도로 흰 피부였다. 김독자의 얼굴은 늘 하얬기에 어쩌면 몸도 그만큼 희지 않을까 상상하기는 했었다. 확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가 머뭇거리며 몸을 움츠렸다. 긴장하지 마라, 김독자. 그렇게 말하며 부드럽게 머리카락을 쓰다듬자 김독자가 조금 억울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긴장을 안 하냐…….”
“그냥 날 믿어라.”
“……그래서 넌, 처음이 아니라고?”
유중혁은 그의 말에 대답해주지 않은 채 픽 웃었다. 두 번이나 대답을 듣지 못하자 김독자가 대단히 억울한 얼굴로 그의 어깨를 밀어냈다. 대답해, 얼른. 안 그러면……. 안 그러면? 되물었더니 명백히 갈등하는 눈빛이 되돌아왔다. 그 얼굴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떠오르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굴러가는 눈동자도, 발그레한 뺨도, 망설이는 입술마저도 모두 다 좋았다. 마치 10년 전 그 때, 손끝이 닿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견딜 수가 없던 그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김독자.”
“……왜?”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두 번이나 물어볼 정도로? 유중혁은 생각했다. 그것은 어쩌면…… 정말로, 기대해도 좋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그 질문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린 김독자는 대답하지 못한 채 시선을 떨어뜨렸다. 그래서 유중혁은, 그의 뺨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네가 처음이다.”
“……뭐?”
“그러니까 이제 집중해.”
집어삼킬 듯한 입맞춤이 김독자의 입을 틀어막았다.



유중혁은 김독자의 흰 몸에 점점이 남은 붉은 자욱들을 잠시 바라보았다. 김독자는 이제 와서 부끄러운지 조금 시선을 돌렸지만 유중혁은 손을 멈추지 않았다. 제가 남긴 흔적들을 손가락 끝으로 살짝 매만지다가 팔을 뻗어 마른 등을 꼭 끌어안았다. 아직 남아 있는 여운과 열기로 살짝 젖은 몸이 노곤하게 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한참이나 서로의 숨소리를 듣고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눈이 마주치자 김독자가 먼저 소리 내서 웃었다. 그 말간 웃음소리가 어찌나 듣기 좋던지 유중혁은 저도 모르게 함께 웃고는 고개를 숙여 코끝에 입을 맞췄다. 간지럽다는 듯 몸을 들썩이며 웃던 김독자가 손을 뻗어 그의 목덜미를 껴안고 입술을 겹쳐왔다. 더없이 소중한 순간을 품에 끌어안듯 한없이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손길. 그 순간, 유중혁은 목 끝까지 타고 올라온 말을 하마터면 꺼낼 뻔했다.
김독자, 사랑한다.
그 언젠가에는 꺼내기를 서슴지 않았던 말이었다. 자주는 아닐지라도,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올릴 때 망설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먼저 사랑한다고 말하면 부끄러운 듯 얼굴을 빨갛게 붉히다가도 결국은 다시 같은 말을 되돌려주는 그가 못내 사랑스럽고 소중했었다. 김독자,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 때도 지금도 내 마음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 그 말이 도저히 나오지를 않는 것일까. 제게 매달려 오면서도 꼭 울 것 같은 얼굴을 한 것을 봐버렸기 때문일까.
맞닿은 입술 틈새로 엷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애써 억눌러 참고 있는 듯한 흐느낌이었다. 품에 안은 어깨가 떨려오며 뺨이 조금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유중혁은 눈을 감은 채로도 알 수 있었다. 김독자가 울고 있었다.



“그래서 집이 어디라고?”
“그게 그렇게 궁금하냐.”
유중혁은 팔짱을 끼고 김독자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어제 입었던 흰 셔츠를 다시 꿰어 입고 재킷을 집어든 김독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커튼이 걷힌 창 너머로 아침 햇살이 비쳐 들어왔다.
“좀 멀어.”
“그러니까 어디냐고 물었다.”
유중혁이 전혀 물러설 기세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챈 김독자가 한숨을 내쉬고는 그를 돌아보았다.
“이제 내 전화번호도 알잖아. 사는 곳까지 알아서 뭐하게?”
“전화번호 바꾸는 건 일도 아니다.”
하지만 주거지를 바꾸는 건 쉽게 못하는 일이지. 그 말에 김독자가 입을 꾹 다물었다.
“또 도망칠 생각 하지 마라, 김독자.”
유중혁은 지난밤을 떠올렸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다시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될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침에 눈을 뜬 김독자는 여전히 자신에게 아무것도 내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전화번호도 알려주기 전에는 절대 못 내보낸다며 협박 아닌 협박을 해 간신히 얻어낸 것이었다. 하, 기가 차는군. 유중혁은 입을 닫고 재킷을 손에 든 채 제 어깨 너머로 현관문을 바라보는 김독자를 빤히 쳐다봤다.
“유중혁.”
일견 서늘한 목소리에 유중혁은 눈썹을 모았다. 유중혁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한 김독자가 후우, 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그 때 도망쳤다고 생각해?”
“……무슨 소리지?”
유중혁은 끼고 있던 팔짱을 스르르 풀었다. 김독자의 얼굴에 낯선 기운이 어렸다. 차가운 얼음을 한 겹 씌운 듯한 표정.
“유중혁. 난 너한테서 도망친 게 아니야.”
“그럼?”
“나는 그날, 널 떠난 거야.”
무슨 차이인지 알겠어? 뒷말이 머리를 아득하게 울렸다. 유중혁은 미간을 잔뜩 좁힌 채 그를 쳐다봤다. 김독자, 방금 뭐라고……. 믿을 수가 없어 되묻자 물끄러미 유중혁의 얼굴을 바라보던 그가 말했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 날 놔줘. 중혁아.”
유중혁은 그 자리에 그대로 굳었다. 이제 그만, 날 놔줘.
대답을 듣기 전엔 놓아줄 수 없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것이 이기심임을 알면서도 그렇게 생각해 왔다. 그리고 김독자는 지금, 그에 대한 대답을 내놓은 것이다.
이제 그만, 날 놔줘.
김독자가 몸을 움직여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등 뒤로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유중혁은 돌아볼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그가 서 있던 자리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돌아봐야 한다. 지금 붙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하지만……. 유중혁은 돌아보기가 두려웠다. 낯선 감정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움직일 수가 없었다.
“중혁아.”
김독자의 목소리가 아득히 먼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여전히 돌아보지 못하고 있자 바람 빠진 듯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안녕. 잘 지내. 건조한 말을 끝으로 문이 닫혔다. 등을 서늘하게 적셔오던 바깥 공기가 막히는 느낌. 도어락이 자동으로 문을 잠그는 소리. 금세 문 너머로 사라지는 구둣발. 그제야 유중혁은 자신이 숨을 멈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억눌려 있던 호흡이 터져 나왔다. 허억, 허억. 벽을 짚고 선 유중혁은 엉망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믿기지가 않았다. 어째서? 도대체 왜?
나의 폴라리스, 나의 데네브, 나의 베가.
유중혁에게.
너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마지막 그 날에도 분명히 나를 너의 북극성이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그런데 도대체 왜, 어째서. 어째서…… 나를 떠났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것인지.
서늘한 벽에 이마를 가져다댔다. 어찌할 바 없이 치미는 열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대로 유중혁은 한참이나 서 있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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