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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리스, 데네브, 베가 /1

누가 입학식 날은 따뜻할 거라고 했던가.
유중혁은 속으로 엉망진창인 일기예보를 욕하며 다리를 꼬고 앉았다. 낡은 의자가 그의 체중을 싣고 삐걱댔으나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봄이 올 거라고 잔뜩 떠들어 대던 뉴스와는 달리 고등학교 입학식 날인 오늘은 말도 못하게 추웠다. 아침에 유미아가 목도리를 챙겨 가라고 말했을 때 들을 걸 그랬지. 허전한 목덜미를 만지작거리다가 한숨을 쉰 유중혁은 그대로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뚱한 얼굴로 단상을 쏘아봤다. 시작 시간을 넘긴 지 오래이건만 뭐 그리 준비할 것이 많은지 아직도 부산스럽다. 약속에 늦는 법이 거의 없는 유중혁으로서는 학교 행사 때마다 늘 반복되는 이런 상황이 그저 불만스러울 뿐이었다. 아니, 정정해야겠군. 정확히는 이 고등학교에 오게 된 것이 몹시도 불만스러웠다.
그놈의 최종학력.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유중혁은 팔짱을 낀 채 가만히 고모와 고모부의 얼굴을 떠올렸다.
‘중혁아, 왜 고등학교를 안 가겠다는 거야. 혹시 학비가 걱정돼서 그러니?’
‘학비는 신경 쓰지 말거라. 너는 물론이고 미아도 얼마든지 지원해 줄 테니까.’
글쎄, 학교를 가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니까요. 그렇게 답하고 싶었으나 차마 은인이나 다름없는 그들 앞에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릴 때 부모님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뒤 덩그러니 남아버린 자신과 유미아를 친자식처럼 키워준 분들이 아니던가. 게다가 학교를 안 보내준다는 것도 아니고, 제발 가 달라고 사정하는데 도저히 강하게 반발할 수가 없었다. 설령 그게 ‘아무리 그래도 고등학교는 가야지’ 같은 구시대적인-유중혁이 보기에-사고방식에 의한 것이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고등학교 생활이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찰나 무언가 이상한 짓을 하고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들 자리에 얌전히 착석하고 있는 사이에서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니는, 교복을 입은 남학생. 웬 얼빵한 신입생인가 싶었지만 넥타이가 붉은색이었다. 붉은색? 유중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붉은색은 분명 2학년이라고 했는데.
허여멀건한 얼굴을 한 학생은 열심히 자신의 자리를 찾는 듯한 눈치였다. 얼씨구. 기가 막힌다. 어딜 둘러봐도 노란 넥타이를 맨 신입생들  뿐인 게 뻔히 보일 텐데. 어지간히 흐리멍덩한 녀석인가 보군. 혀를 차고 있는데 문득, 학생의 고개가 돌아가며 그를 바라보고 있던 유중혁과 정확히 시선이 마주쳤다.
단정하게 자른 머리카락만큼이나 단정하게 갖춰 입은 잿빛 교복. 하얀 피부와 조금 마른 듯한 체구 탓에 얼핏 보기에는 유약해 보이는 인상이었으나, 그의 눈을 똑바로 본 순간 유중혁은 바로 평가를 수정했다. 기묘할 정도로 반짝이는 눈동자는 어딘가, 그래. 딱 잘라 표현하기 어려운…….
뭐였지?
생각을 마칠 새도 없이 허여멀건한 녀석 뒤에서 나타난 여학생이 그의 어깨를 턱 짚었다. 가슴팍에 달린 배지 덕분에 그녀가 선도부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김독자, 여기서 뭐해. 여기 신입생 자리거든. 그렇게 말하는 소리가 얼핏 들려왔고. 여학생과 잠시 대화를 나누더니 빠른 걸음으로 사라진다. 부끄러웠던 모양이지.
선도부원마저 사라지자 드디어 입학식이 시작될 모양이었다. 하지만 유중혁은 단상에 시선을 주고선 다른 생각에 잠겼다. 김독자? 그게 이름인가? 이상한 이름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이상하게 그 이름이, 하얀 얼굴이, 빛나던 눈동자가…… 뇌리에 박혀 떨어지지 않았다.
더럽게 추운 3월의 어느 날이었다.



“아, 귀찮아 죽겠네. 무슨 동아리야, 동아리는.”
뒤에서 들려오는 불평 소리에 유중혁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고 싶어서 온 고등학교도 아닌데 심지어 동아리 활동이 필수란다. 담임인 남궁민영이 나눠주는 동아리 안내문을 받아 뒤로 넘기며 혹시 E-Sports부(‘게임부’는 멋이 안사니까) 같은 건 없을까 잠시 생각했지만 있을 리가 없었다. 역시나 목록에는 게임의 기역 자도 보이지 않았고. 그나마 관심이 가는 건 IT공학부인지 뭔지 하는 곳이었지만 유중혁은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가능하면 적당히 출석하고 적당히 빠질 수 있는 곳을 원했다. 어차피 대회 일정이 있으면 학교도 자주 빠지게 될 터였으니.
“야, 유중혁. 무슨 동아리 갈지 정했냐?”
이 녀석은 그러니까…… 이름이 뭐더라. 유중혁은 금방 잊어버린 옆자리 녀석의 이름을 떠올리길 포기하고 어깨만 으쓱했다.
“잘 모르겠는데. 어디 좀 널널한 데 없나.”
“널널한 데 찾아?”
나 알아. 누나한테 들은 게 있거든. 그렇게 말하면서 가슴을 팡팡 치더니 동아리 안내문을 든 채 의자를 끌고 와서 앉는다. 유중혁은 제 의자를 조금 끌어당겨 자리를 내주고는 물었다.
“누나한테 들었다고?”
“어, 우리 누나 이 학교 나왔거든. 올해 졸업했어.”
그렇다면 제법 확실한 정보라고 봐도 되겠군. 유중혁은 말해보라는 듯 눈썹을 까딱였다. 그러자 녀석은 헤헤 웃으며 동아리 목록을 책상에 내려놓은 뒤 손가락으로 하나씩 읊기 시작했다. 여긴 사람이 미어터져서 한 명쯤 안 와도 모른다더라. 여긴 담당 선생님이 완전 방치하는 데고. 여긴 진짜 할 거 없는 애들이 온다는데 선배들 군기가 좀 빡세다는 얘기도 있고……. 그렇게 몇몇 동아리를 더 짚은 녀석은 가나다순으로 늘어선 목록의 거의 끝에 도달해서 잠시 멈칫거렸다.
“왜?”
“어, 그냥. 여기, 천문부도 널널한 걸로 알아.”
천문부라. 유중혁은 옅게 눈살을 찌푸렸다. 별이라도 보러 다닌다는 건가? 이 학교엔 천체망원경도 없을 텐데. 하긴 그러니까 널널한 거겠군. 하지만 그보다도 일단 유중혁은 신나게 말하다가 멈춘 녀석의 태도가 신경 쓰였다.
“근데 왜 그런 반응이지?”
“아. 그 있잖냐, 뭐냐……”
말하기 꺼려지는 듯 여러 번 주저한다. 유중혁은 됐으니까 얼른 말해보라며 그를 재촉했다. 그러자 녀석은 내키지 않는 듯, 나는 네가 말하래서 말한 거다? 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 기어이 유중혁의 싸늘한 시선을 받은 뒤에야 입을 열었다.
“그 사람 있잖아. 김독자…… 그 선배가 이 동아리 소속이던데.”
유중혁은 의외의 말에 눈썹을 치켜떴다. 김독자? 그 이름을 여기서 다시 들을 줄은 몰랐다. 그런데 그게 뭐가 문제라는 거지. 그런 표정을 알아챘는지 녀석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너 김독자 몰라? 진짜?”
“그게 누군데.”
아니, 얼굴은 안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잠깐 본 게 다였으니 안다고는 말할 수 없을 터였다. 유중혁의 시큰둥한 반응에 녀석은 기가 막힌다는 듯 난리를 쳤다.
“야 씨발, 어떻게 모를 수가 있냐? 그 사람 존나 유명하잖아, 살인자 아들이라서……”
“뭐?”
그 말에는 아무리 유중혁이라도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살인자의…… 아들이라고? 그제야 뒤늦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십 년도 더 되었지만 요즘도 종종 회자되는 살인사건. 아내가 남편을 칼로 찔러 살해하고 수감된 뒤에 교도소에서 수기를 써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했던가……. 유중혁이 알고 있는 것은 그 정도가 다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사건이 제법 가까운 동네에서 일어났던 것 같기도 했다. 덕분에 어른들 사이에서는 집값 떨어진다 어쩐다 말이 많았던 것 같고. 유중혁의 표정을 본 녀석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 선배가 천문부 들어가고 나서 다른 선배들도 다 나가서 지금은 부원도 몇 명 없댔어. 간신히 유지만 되는 정도? 거기 소문 안 좋댔으니까 가지 마라.”
그런 거였군. 유중혁은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동아리 목록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선명히 눈에 들어오는 천문부라는 세 글자가 마치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면 착각일까.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사람이 떡하니 있는 동아리에 들어가서 썩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하기에는 그랬다. 하지만.
“그럼 천문부는 선생님들도 간섭 잘 안 하겠군.”
“어? 어어, 그렇겠지, 그 선배는 선생님들도 좀 꺼린다던데……”
“여기로 가야겠다.”
결정. 그렇게 말하고 바로 입부 신청서에 천문부를 적어 넣는 유중혁을 보며 녀석이 기겁했다. 유중혁 씨발 미쳤냐? 너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을 어디로 들어 처먹었어? 하지만 유중혁은 굴하지 않고 이름을 써내려갔다.
“잘 들었다. 그러니까 천문부 간다고.”
“이거 완전 미친놈 아냐.”
녀석이 기가 찬다는 듯한 표정을 하든 말든 유중혁의 결심은 바뀌지 않았다. 여기라면 정말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지 않은가. 활동을 좀 빠져도 선생님들은 신경도 안 쓸 것이다. 하물며 동아리 사람들과 친해질 생각도 없었으니 일석이조다. 그런 빈약한 장점들을 김독자라는 커다란 단점에 가져다 대며 유중혁은, 수지타산을 두드리려는 머릿속의 계산기를 애써 무시했다. 아니, 애초에 김독자가 있는 게 왜 단점인가? 이쯤 되면 장점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들어갑니다.”
성의 없는 노크를 한 유중혁은 벌컥 문을 열고 부실에 들어섰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암막 커튼이 쳐진 어둑한 공간이었다. 창문 하나는 커튼을 걷어놓은 덕분에 그렇게까지 어둡지는 않았지만. 뒤이어 보이는 것은 빙 둘려 놓인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었다. 들은 바와 같이 많지는 않았다. 유중혁은 그들을 빠르게 훑어봤다. 모두 붉은색 넥타이였다. 아니, 아니군. 저 사람은 파란색이다. 3학년인가? 선배들은 다 나갔다더니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신입생?”
익숙한 얼굴의 여학생이 얼떨떨한 표정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지, 이 반응은. 유중혁은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고선 입부 신청서를 건네고 명찰을 살폈다. 정희원. 그렇군, 이 사람이 오전에 본 그 선도부원이다. 정희원은 입부 신청서를 받아든 채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미친, 신입생이라고? 우리 부에?”
“생각도 못 했는데…….”
“아무도 안 올 줄 알았어.”
신입생이 올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 너도나도 어리둥절한 얼굴들이다. 그래서 반응이 이랬군. 유중혁은 별다른 말을 얹지 않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잠자코 기다렸다.
“일단 어서 와. 어, 그럼 일단……”
“이쪽으로 앉아.”
정희원이 조금 당황한 사이 파란 넥타이의 여학생이 빙긋 웃으며 의자 하나를 가리켰다. 상당히 예쁜 얼굴이었으나 유중혁에게 그건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흘긋 명찰을 보니 유상아, 라고 적혀 있었고. 유상아가 가리킨 자리에 앉은 유중혁은 다시 찬찬히 부원들을 둘러보았다. 단발머리를 찰랑대는 여학생은 무언가 불만인 듯 팔짱을 낀 채 머리를 꼬아대고 있었고, 스포츠머리를 한 체격 좋은 남학생은 뭐가 신기한지 고개를 끄덕이며 유중혁을 보고 있었다. 이름은 이현성이군. 저 불만 가득한 여학생은 명찰을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이름을 알 길이 없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문제의 김독자가 앉아 있었다.
명찰부터 확인하고 시선을 올려가던 유중혁은 이번에도 김독자와 눈이 딱 마주쳤다. 짧은 침묵이 흐르는 사이 김독자는 그를 빤히 쳐다봤다. 쉬이 읽기 어려운 눈빛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그 순간 김독자의 입꼬리가 슬 올라갔다. 유중혁이 저도 모르게 입을 조금 벌린 찰나 뒤에서 정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일단은 입부 테스트 비슷한 걸 해야 할 것 같은데.”
성큼성큼 걸어온 그녀는 유중혁의 정확히 맞은편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입부 신청서를 조금 더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들고.
“이름은 유중혁. 맞지?”
“그래.”
“뭐야. 반말하냐?”
“존댓말 해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나?”
허, 하고 웃은 정희원이 잠시 눈을 부라렸으나 이내 한숨을 푹 쉬었다. 다른 사람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 듯 가만히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고.
“하긴 우리도 상아 언니한테 반말하지. 그래, 뭐 좋아. 나는 정희원이야. 올해 천문부 부장이고.”
유중혁은 알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가늘게 뜬 정희원은 유중혁의 입부 신청서를 옆에 앉아 있던 유상아와 단발머리 여학생에게 넘겼다. 그 곁에 앉아 있던 이현성도 같이 고개를 들이밀고 신청서를 살폈다. 뭐야? 이름밖에 안 적혀 있잖아? 어이없다는 시선이 돌아왔지만 유중혁은 신경 쓰지 않았다.
“가입 신청 사유란에 아무것도 안 적었던데. 왜 천문부에 오고 싶다고 생각했어?”
유중혁은 잠시 어떻게 답해야 할지 고민했다. 솔직하게, 꿀 빨러 왔습니다, 뭐 그렇게 답해도 되나. 하지만 그런 식으로 말해서 여기서 입부 신청을 거절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유중혁의 침묵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유상아가 부드럽게 말했다.
“천문부는 원래도 사람이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었어. 그래서 다들 신기해하는 거니까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
“그래. 그냥 솔직하게 답하면 되거든, 별 보러 왔습니다, 뭐 그런 것도 괜찮고.”
“별 보는 거 싫어하는데.”
유중혁의 대답에 부실이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이윽고 침묵은 소란으로 바뀌었다. 뭐야? 뭐 하는 놈이야? 그렇게 말하는 단발머리 여학생과(아직도 이름을 모르겠다), 그럼 왜 천문부에……? 라며 순진한 얼굴을 하는 이현성, 고개를 갸웃거리는 유상아. 그리고…… 그 사이에서, 대단히 반짝거리는 눈으로 유중혁을 지켜보는 김독자가 있었다.
“별 보는 거 싫어한다고?”
유중혁은 그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가만히 마주보다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김독자가 재밌다는 듯 소리 내서 웃었다. 뭐가 그렇게 웃긴가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천문부에 입부하고 싶다면서 별 보는 걸 싫어한다는 따위의 소리를 지껄였으니 웃길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정말로 별 같은 건 끔찍이도 싫어하는데. 한참이나 웃은 김독자가 눈물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
“아, 진짜 웃기네. 얘 합격시키면 안 돼?”
“김독자 미쳤어?”
“아니, 재밌지 않아? 너희도 알잖아. 나도 별 보는 거 싫어했던 거.”
그 말에 침묵이 다시 내려앉았다. 모두의 시선이 김독자에게 집중되었다가 떨어졌고, 덕분에 유중혁은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군, 이 사람들 사이에서도 김독자는…… 특별한 존재다. 좋은 의미인지 나쁜 의미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난 입부 찬성인데. 어때? 다른 사람들은?”
싱글싱글 웃으며 말하는 김독자를 보고 사람들은 너도나도 한숨을 내쉬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김독자 저 미친 새끼, 하며 끝까지 눈살을 찌푸리던 단발머리 여학생도 마지못해 동의한다는 듯 건성으로 끄덕거렸다.
부원들과 모두 인사를 나누고 나자(단발머리 여학생은 한수영이라고 했다) 그들은 청소를 해야 한다며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함께 자리에서 일어선 유중혁은 어느새 제 앞에 다가와 선 김독자를 내려다봤다. 저보다 한 뼘 정도 작은 키였다.
“유중혁?”
고개를 끄덕이자 김독자가 눈을 휘어 웃었다. 잘 부탁해, 그 말에 얼떨결에 악수를 한 유중혁은 그 손이 조금 서늘하다고 생각했다. 하얀 얼굴에 걸쳐져 있던 미소가 흩어졌다.
“별 보는 게 왜 싫어?”
그렇게 말하며 창가로 걸어가기에 유중혁은 그의 뒤를 따랐다. 머릿속으로는 질문을 곱씹으면서. 별 보는 게, 왜 싫으냐고. 수십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교복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자 김독자가 창가에 팔을 걸쳤다. 말하기 싫으면 말고. 그렇게 여상히 말하더니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유중혁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그의 뒤에 서서 함께 창밖을 바라보았다. 가볍게 노을이 지는 주홍빛 교정에는 학생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하교하고 있었다.
유중혁은 문득, 이 공간이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종종 느꼈던 감각이었다. 아무리 사람이 많은 곳에 있어도, 혼자 외따로 떨어져 있는 느낌. 허공에 붕 뜬 것처럼 유리된 감각에 손끝을 두어 번 까딱거리고 있자니 김독자가 몸을 일으켜 그를 돌아보았다.
“중혁아.”
그렇게 부르는 소리에 붉은 햇살이 닿아 부서졌다. 눈앞이 흐릴 정도로 하얀 뺨이 기울어졌다. 저를 똑바로 바라보며 미소 짓는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유중혁은 천천히 열리는 김독자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너도 좋아하게 될 거야. 별 보는 거.”
그 말을 들은 유중혁은 문득, 머리가 띵하도록 강렬한 예감에 저도 모르게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는 언제나 이성과 합리를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운명, 점술, 운세, 그런 것들은 모두 허상이라고. 하지만…… 이처럼 강한 예감은 짧은 삶을 살아오면서도 처음 느끼는 것이었다. 낯설었지만 어쩐지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유중혁은 생각했다. 어쩌면, 삶의 전환점이라는 게 정말 존재한다면…… 바로 지금일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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