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독자는 잠든 유중혁의 얼굴을 바라봤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활자로도 그다지 묘사된 적이 없는 유중혁의 잠든 모습. 숨소리조차 내지 않으며 눈을 감은 채 미동도 없는 것이,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가슴이 아니었다면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일 듯했다. 정적과 고요 속에서 김독자는 한참이나 가만히 멈춰 있었다. 저도 모르는 사이 유중혁과 호흡의 주기가 일치됐다.
천천히 흰 손을 들어 올렸다. 마르고 건조한 손길이 유중혁의 곧게 뻗은 콧날과 입술 근처를 훑듯이 스쳤다. 고르게 뱉어지는 숨결에 김독자는 비로소 주먹을 말아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독자 씨.”
문을 닫고 나오니 모두가 앞에 모여 있었다. 이현성, 이지혜, 정희원, 신유승, 그리고 이설화까지. 김독자는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곤 걸음을 옮겼다. 마룻바닥을 밟아나가며 김독자는 말했다.
“괜찮을 겁니다. 몸이 아니라 정신의 문제일 테니까요.”
“……다행이네요.”
안도의 한숨 소리와 가슴을 쓸어내리는 기척. 김독자는 더 이상의 부연 설명 없이 그저 복도를 걸었다.
“독자 씨.”
부르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다섯 쌍의 시선이 꽂혀 들었다.
“아까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겁니까?”
“그, 그래, 맞아……. 사부가 갑자기 왜 그런 소리를 한 거야? 나한테…….”
목이 메는 듯 이지혜가 말끝을 흐렸다. 그럴 만도 했다. ‘어째서 살아 있냐’니. 어떻게 해석하든 좋을 수가 없는 물음이다. 김독자는 말없이 이지혜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어 주고는 다시 몸을 돌렸다.
“독자 씨!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예요? 당신은 알고 있는 거죠!”
“예.”
“그럼 설명을……”
“설명하기엔 복잡합니다. ……여러분이 납득할 수 있을 만한 답을 드릴 자신도 없고요.”
“그게 무슨…….”
어렴풋이 분노가 섞여 드는 정희원의 목소리를 흘리고 김독자는 문밖으로 나섰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다녀오겠습니다.”
이번에는 누구도 함께 가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자박자박, 얕게 쌓인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김독자는 궁 주변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싸늘한 겨울 공기에 귓가가 차가워졌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발자국이 시작된 위치에 도달하고, 두 번째 발자국이 그 위로 새겨졌다.
그렇게 네 번째, 다섯 번째 발자국까지 새겨져 발아래가 온통 눈이 녹은 흙밭이 되었을 무렵.
김독자의 시야에 눈과 흙이 잔뜩 묻은 자신의 것과 대비되는 깨끗한 신발이 들어왔다. 마침내 그는 맴돌이를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안나.”
“오랜만이군요. 김독자.”
여전히 아름다운 금발이 겨울바람에 한 가닥씩 흩날렸다. 5년 만의 대면임에도 반가운 재회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김독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와 마주 보았다. 그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알 것 같았기에.
“때가 온 것 같군요.”
“……무슨 때 말입니까?”
“왕을 죽여야 할 때.”
김독자는 서슬 퍼런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하지만 안나의 눈빛 또한 결의가 어려 있었다.
“안 됩니다.”
“안 된다고요? 그럼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미래는 나의 착각이라고 말할 셈인가요? ‘독자’.”
불길한 빛이 팽글 맴도는 안나의 눈동자를 보며 김독자는 이를 악물었다. 그가 무엇을 보고 있을지 눈에 선했다. 혼란에 빠져 피아(彼我)를 구분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베어 넘기는 유중혁. 하늘을 찌를 높이로 솟은 시체 더미 위에 서서, 손에 닿을 듯 가까운 먹빛 하늘을 올려다보며 스스로의 목에 칼을 겨눌 최후.
미래를 바꿨다고 생각했다. 설령 ‘이계의 것들’이 찾아왔더라도 어떻게든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들의 정체를 알게 된 지금은 이야기가 달라졌다.
원작 ‘멸살법’. 조금 전의 접촉으로 유중혁은 그 모든 것을 ‘알았다’. 유중혁이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이야기는 유중혁의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아니다. 그저 어떠한, 다른 가능성. 상처 입고 자포자기한 한 어린 작가의 손에서 써내려졌을, 자기 자신의 이야기.
살아온 방식이 다르다. 걸어온 궤적이 다르다. 하지만 그것 또한 분명히 ‘유중혁’이다. 그 혼란 속에서 그가 자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솔직히 김독자로서도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제가 바꿀 겁니다. ……5년 전에도 그랬듯이.”
“어떻게 말이죠?”
안나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그가 손가락을 번쩍 치켜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나는 지금껏 북경(北境)에서 ‘이름 없는 것들’이 수도에 가까워지는 것을 막아 왔어요. 유중혁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건 당신이 더 잘 알고 있겠죠.”
“…….”
“사람들은 ‘그것’에 막연한 공포를 느끼지만, 사실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적은 없어요. 당연하죠. 그것들이 노리는 건 유중혁이니까요. 그래요. 이미 알고 있어요. 늘 봐왔던 미래니까.”
안나의 목소리가 격앙될수록 김독자의 표정은 오히려 더욱 차가워졌다. 그 변화에 안나는 더욱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그것들은 유중혁에게 이끌려요. 정확히는 그가 가진 어떤…… 불가해한 힘에. 그리고 두 힘은 서로 공명해서 파멸을 가져올 거예요. 이것이 제가 아주 오래전부터 봐왔던 미래. 이 예견된 종말은 예나 지금이나 전혀 달라지지 않았군요. 당신은 실패했어요, 독자.”
“아니. 당신은 아무것도 몰라. 안나.”
얼음장 같은 목소리에 안나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눈발이 나리듯 서늘하고 고요한 목소리로 김독자는 말했다.
“유중혁이 죽는다고 세계의 멸망이 멈추지는 않아. 이 세계가 멸망하는 건 유중혁 때문이 아니니까.”
“그게 무슨……”
“당신은 모르잖아. 유중혁이 왜 그래야 했는지.”
어째서 그 모든 것을 찢어발기고 도륙 냈는지.
김독자는 알 것 같았다.
한수영이 쓰려고 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유중혁은…… 미친 게 아니었다. 혼란에 빠진 것도 아니었다. 녀석은 알았던 거다. 이 세계가 거짓이라는 걸. ‘이름 없는 것들’이 말 그대로 ‘이계’에서 왔다는 걸 깨달아 버렸기 때문에. ‘등장인물’인 자신의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작가’의 외압이라는 것도. 그래서 유중혁은 이 가짜 세계를 부수려고 했다. 새가 태어나기 위해 알껍데기를 쪼아 부수는 투쟁을 벌이듯.
그리고 그 결과…… 세계는 멸망했다.
‘멸살법’의 세계가.
속이 문드러지는 것 같은 기분에 김독자는 눈을 꾹 감았다. 실제로 ‘원작’의 유중혁이 어땠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한수영이 새로이 쓰려 한 이야기의 결은 명확했다. 한수영은…… 유중혁에게 숨을 불어넣으려 했던 것이다. <천지창조>처럼 작가인 제 손끝과 등장인물인 유중혁의 손끝을 맞대어,
새 삶을 주기 위해서,
자신의 손으로 비극을 맞이하게 했던 주인공에게, 속죄하듯이.
하지만 지금, 그것은 어긋나 버렸다. 한수영은 유중혁에게 닿지 못했고, 이야기는 작가의 손을 벗어나 내달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손끝은 맞닿지 못했다. 한수영도 분명 그것을 가리켜 ‘무언가 빠졌다’고 표현한 것이리라.
문득 김독자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저 먼 하늘 너머에서, 느리고 거대한 것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도 유중혁 또한 이끌리듯 눈을 떴을 것이다. 마지막 신(Scene)이 다가오고 있었다.
김독자는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그걸 위한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다. 그것은 또한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를 믿고 기다려 주십시오. 안나.”
“김독자. 저는……!”
“부탁합니다.”
그리 말하고, 김독자는 아직은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한수영.”
──한수영.
한수영은 흠칫 놀라 고개를 치켜들었다. 주변을 휘휘 둘러봤지만 당연하게도 목소리의 주인은 없었다. 방금 뭐였지? 마치 백일몽이라도 꾼 듯한 기분에 멍하니 시선을 돌리고 있자 부드러운 손길이 어깨를 짚었다.
“수영아? 왜 그래?”
“……방금 무슨 소리 못 들었어?”
“응? 무슨 소리? 아무것도 못 들었는데.”
이젠 환청이 다 들리나……. 중얼거리며 다시금 책상 앞에 앉은 자세를 고치자니 유상아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옆에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는 머그잔을 내려놓았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좀 쉬는 건 어때.”
“그럴 틈 없어.”
딱 잘라 말하며 한수영은 모니터 위에 펼쳐진 빈 문서를 바라봤다. 순간 할 말이 없어졌다. 유상아 또한 그것을 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수영아. 그렇게 노려본다고 안 써지는 글이 써지지는 않아. 쉴 땐 쉬어야 해.”
“지금까지 충분히 쉬었어.”
“쉬긴 뭘 쉬었다는 거야. 계속 고민하고 있었잖아, 몇 주 동안이나.”
“…….”
한수영은 말없이 책상 위를 노려봤다. 새벽 1시 40분을 가리키는 시계, 어지러이 흩어진 아이디어 노트, ‘멸살법’의 원작이 고스란히 적힌 낡은 노트, 손때 묻은 샤프펜슬, 볼펜.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껴안고 있어도 여전히 모니터 속은 백지였다. 글이라는 게 그랬다. 술술 써질 때는 잠을 자는 것조차 잊고 수십 페이지를 쏟아낼 수 있지만, 써지지 않을 때는 한 글자조차 적지 못하고 잠을 잊게 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후자는 한수영에게 있어 매우 낯선 것이었다. 대체로 한수영은 글을 쓰는 데 어려움을 겪어본 적이 없었고, 잘 써지지 않을 때는 억지로라도 몇 글자씩 뽑아내다 보면 또 그럭저럭 써지곤 하는 것이 글이기에.
그러니까, 십수 년 만에 처음 맞닥뜨린 벽이 더욱 높게 느껴지는 것이다. 철옹성을 눈앞에 둔 장수의 심정으로 한수영은 피곤한 눈가를 문질렀다.
“무언가 빠졌다는 건 알겠어. 근데…… 그게 뭔지를 모르겠어.”
희미한 목소리가 입가에서 새어 나왔다. 유상아는 이해할까? 이런 자신을? 아니, 이해받길 바라는 건 사치다. 애초에 그딴 걸 바란 적도 없다. 한수영은 다시금 오만하게 고개를 치켜들며 모니터를 바라봤다.
그런데.
“……어?”
“수영아, 이거……!”
한수영은 책상에 두 손을 짚으며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뒤로 홱 밀려난 의자의 바퀴가 구르며 책장에 닿아 쿵 소리를 냈지만 유상아도, 한수영도 그것에 신경을 쓸 겨를은 없었다.
“이, 이게 무슨…….”
하염없이 같은 자리에서 깜빡거리기만 하던 커서가,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뒤로 활자라는 잔상을 남기며.
순식간에 빈 페이지를 빼곡히 채워 나가는 그 내달림에 두 사람 모두 턱 하고 말문이 막혔다. 한수영은 혹시나, 정말 혹시나 싶어 키보드를 내려다봤지만 물론 제 손은 그 위에 얹어져 있지 않았다. 그의 키보드는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모니터 위로는 분명 새로운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었다. 마치 그 너머에서 누군가가 타자를 두드리고 있기라도 한 듯이.
한수영은 홀린 듯이 그 글자들을 바라보았다.
「사위가 캄캄했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특별히 빛이 들지 않아 어둑한 환경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5층 높이의 오피스텔에 살며 창문을 가리기 위해 커튼을 쳐놓고 잠들어본 적이 별로 없는 탓이다. 뭐지? 밖에 비라도 쏟아지는 새벽에 깬 걸까. 하지만 몸을 일으키기 위해 바닥에 손을 짚은 순간, 김독자는 곧장 원인을 알아차렸다.」
“……김독자?”
한수영은 화면 위로 떠오른 세 글자를 멍하니 입 밖으로 중얼거렸다. 김독자의 이름이, 어째서 나온다는 말인가? 물론 ‘멸살법’ 리부트는 김독자가 그 세계에 다녀온 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앞 내용에 필연적으로 김독자가 개입되어 있다는 소리다. 하지만 그를 이 이야기에 다시 등장시킬 계획은 없었다. 아니,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다. 그야 김독자는 현실의 인물이고, 자신의 독자이고, ‘멸살법’은 소설이니까……
아니.
그 법칙은 깨졌다. 자신이 만든 세계는 실존했고, 김독자는 그 세계의 실존을 증명하는 산증인이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벼락같은 깨달음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래, 그랬다. 이야기가 써지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등장인물’이, 그것도 아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등장인물이 하나 빠져 있었으니까…….
잃어버린 퍼즐 조각이 빈자리에 꼭 맞아 들어갔다.
김독자라는 이름을 한 그 마지막 퍼즐 조각으로서 완성된, ‘멸살법’ 리부트가. 모니터 위에 펼쳐지고 있었다.
한수영과 유상아는 한동안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이야기에 빨려 들어갔다. 정희원을 만난 김독자는 궁으로 향했고, 독백으로 자신이 생각한 이런저런 추측을 늘어놓았다. 제법인데, 김독자. 저도 모르게 씩 웃으며 읽어나가다가 “한수영…… 듣고 있으면 대답 좀 해 봐.”라는 문장에서 잠시 숨을 들이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커서는 멈출 줄 모르고 숨 가쁘게 달려갔다. 김독자는 곧 유중혁과 재회했으며, 성류국의 상황을 파악해나가기 시작했고, ‘이름 없는 것’에게 목숨을 위협당했다가 유중혁의 손에 구해졌다. 그리고…… 이 세계의 이치에 도달했다. ‘이름 없는 것들’의 정체와, 유중혁의 혼란. 그리고 작가인 한수영 자신조차 정확하게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어떤 바람.
그랬다. 한수영은, 사과하고 싶었다. 자신이 멋대로 끝을 내 버린 이야기의 주인공에게. 제대로 된 결말을 안겨 주지 못한 등장인물들에게. 그것은 작가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마침내, 정말로, 마지막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작가의 본능으로 알 수 있었다.
한수영은 멀리 굴러간 의자를 끌어와 자리에 앉았다. 후, 심호흡을 하고 키보드 위에 손을 얹었다. 숨 쉴 틈도 없이 쓰이던 이야기는 힘을 조금 잃은 듯 속도가 느려졌다. 점점 멈춰가던 커서는 이내 띄엄띄엄 움직이더니 기어이 멈춰 섰다. 한수영은 마지막으로 적힌 두 줄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 말하고, 김독자는 아직은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한수영.”」
“그래, 알았어. 김독자……. 네 부름에 응해 주마.”
자신만만한 미소 위로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어느 때보다도 충만한 창작욕에 휩싸여 한수영은 손가락을 움직였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의 뜻대로 되지는 않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