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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2/ 오해와 이해
베트로버스 반전 if

2018.11.
* 베트로버스 AU
* 종이책 <멸망하지 않은 세계에서 사랑하는 세 가지 방법>에 수록했던 버전입니다.











    유중혁은 그 날을 기억했다. 얼음처럼 서늘한 손길이 뺨에 닿던 날을.
    그 손가락은 이상할 정도로 차가웠다. 어느 여름날이라는 것을 잠시 잊어버릴 정도로 기분이 좋았기에, 무의식적으로 그 손에 이마를 부볐던가. 열로 달아오른 피부가 시원한 손길을 덥혔다. 녀석은 조금 웃었고, 그대로 유중혁의 눈가를 덮어주며 속삭였다. 유중혁. 많이 아파? 차가운 기운에 조금씩 정신이 돌아왔다. 유중혁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
    “아닌 것 같은데. 양호실이라도 가볼래? 데려다 줄까?”
    익숙한 목소리인데. 유중혁은 고개를 들었다. 옅은 미소를 걸친 하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푸르스름한 반팔 셔츠와 나부끼는 커튼이 시야를 어지럽히고. 그가 누구인지 알아본 유중혁은 인상을 찌푸리며 여전히 제 이마에 닿아 있는 손길을 뿌리쳤다.
    “괜찮다고 했다.”
    이 녀석이었던가. 젠장, 미쳤군. 아무리 아파서 정신이 없었다지만 이놈이 가까이 오게 내버려두다니.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화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노려보자 엠비, 김독자가 웃었다.
    “유중혁.”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그를 김독자가 불러 세웠다. 유중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뒷문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열 때문에 시야가 몽롱했다. 똑바로 걸으려고 애쓰며 문고리에 손을 얹자 등 뒤로 목소리가 이어졌다.
    “너 나 진짜 싫어하네.”
    당연한 소릴 하는군. 날카롭게 쏘아붙이려다 기운만 빠질 것 같아 말없이 문고리를 돌렸더니 드르륵, 의자가 끌리는 다급한 소리가 교실에 퍼졌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 찰나 김독자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중혁아. 잠깐만.”
    “이거 놔.”
    세게 탁 쳐내자 김독자가 움찔하며 제 손을 감싸 쥐었다. 유중혁은 그새 붉게 달아오른 김독자의 손을 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젠장. 그러려던 건 아니었는데. 하여간, 이놈이랑 얽히면 좋을 일이 없다……. 유중혁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술을 뗐다.
    “미안하다.”
    “……중혁아.”
    “그거 말고 너랑 할 얘기는 없어. 간다.”
    등 뒤로 김독자의 목소리가 이어졌으나 유중혁은 그를 완전히 무시한 채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열 때문인지 귓가에 물방울이 찰랑대는 환청이 울렸다. 젠장. 제기랄. 이를 바득바득 갈며 유중혁은 생각했다. 오늘은 정말, 최악의 생일이다.



    유중혁은, 그날 또한 기억했다. 엠비 김독자가 희게 웃으며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던 날을.
    “야, 김독자. 엠비로 사는 건 무슨 기분이냐.”
    그의 주변에 와글와글 몰려들어 있던 녀석들이 왁자하게 물었다. 그 사이에서 김독자는 그 하얀 얼굴을 빛내며 말없이 웃었다. 그가 쉬이 대답을 해 주지 않자 녀석들은 재차 떠들어댔다.
    “좋겠지. 영원히 사는 거 아니냐?”
    “거기다 젊을 때 나이 멈추면 더 쩌는 거 아니냐.”
    “존나 부럽다, 씨발. 나도 엠비 되고 싶다.”
    그 말에 석고상처럼 웃고만 있던 김독자의 표정에 뚝, 금이 갔다. 천천히 입술이 벌어졌다.
    “엠비로 사는 게 무슨 기분이냐고.”
    김독자의 서늘한 말에 놈들은 눈을 깜빡였다. 조용해진 교실, 그의 맑고 지친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너희는 몰라. 나는, 죽고 싶어.”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에텐, 유중혁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교실을 나갔다. 뭐야? 왜 저래? 그런 소리들이 들려왔으나 그의 머릿속에는 조금 전 김독자의 말만이 울렸다. 죽고 싶어. 죽고 싶다고? 하, 유중혁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웃기는 소리다. 죽음의 공포 따위는 모르는 엠비가 논하는 죽음이란.
    ……그런 일들이 있었지. 유중혁은 미간을 좁힌 채 손에 쥐고 있던 소주잔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많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벌써 8년, 정말 간만에 열린 동창회였고. 딱히 고등학교 때의 추억이 많지 않은 유중혁이었지만 갑작스러운 약간의 향수 탓에 참석해버린 것이 실수였을지도 모른다. 그래, 이 허여멀건한 사내를 만날 거라곤 생각도 못 하고 말이다. 유중혁은 눈앞에서 싱글거리며 웃고 있는 김독자를 쳐다보다가 쯧, 혀를 차고 눈길을 돌렸다. 엠비답게 앳된 얼굴은 여전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성장이 멈췄다고 했던가. 말없이 술을 들이켜고 있자니 김독자가 입을 열었다.
    “유중혁. 몇 년 만이냐 이게.”
    유중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독자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계속해서 혼자 지껄였다.
    “8년 만인가? 졸업하고 처음 보는 거니까 그쯤 됐겠네. 하하, 근데 사실 난 너 되게 익숙하다. 꼭 어제 본 것 같고 그래.”
    “……무슨 헛소리지.”
    빤히 쳐다보자 김독자는 눈을 휘어 웃었다. 그 웃음에 유중혁은 기분이 조금 이상해졌다. 정말로, 그 시절과 변함이 없는 얼굴이었다. 마치 십여 년 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로. 김독자는 슬 턱을 괴고선 유중혁을 바라봤다.
    “그냥. 네 경기 잘 보고 있다고.”
    팬이야. 프로게이머 유중혁. 그 말에 유중혁은 시선을 내렸다. 그냥 예의상 한 말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팬이라고 자처하는 사람 앞에서 덮어놓고 적의를 드러내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시간이 많이 지나기도 했고, 나이를 먹은 덕분에 분노가 많이 희석되기도 했고. 그래서 유중혁은 옅은 한숨을 쉬고 김독자를 바라봤다.
    “너는 요즘 뭐 하고 지내지.”
    엠비들이란 유명해지는 숙명을 타고난 족속이나 다름없다. 전 세계를 털어도 몇 나오지 않는 희귀한 존재들이니 당연하지만. 영원불멸한 생명을 가진 엠비들의 행보는 언제나 필멸자들의 관심사였다. 그런 의미에서 김독자는 특이한 편이었다. 대외적으로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으니까. 그가 무엇을 하고 사는지에 대해서는 유중혁도 들은 바가 없었다. 김독자는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나, 방송해. 인터넷 방송.”
    인터넷 방송이라. 하긴, 일반인들에게 그다지 친숙한 직종은 아니군. 하지만 프로게이머인 유중혁에게 있어서는 대단히 익숙한 직업이었다.
    “주제는?”
    “게임.”
    유중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게임 방송을 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유중혁의 표정을 눈치 챈 것인지 김독자가 손을 내저으며 웃었다.
    “게이머처럼 빡세게 하는 건 아니야. 거의 대화하는 방송이나 다름없다고 보면 돼. 가끔 게임 리그 리뷰 방송도 하긴 하지만.”
    “……그런가.”
    유중혁은 손 안에서 천천히 소주잔을 굴렸다. 김독자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과연, 대화하는 방송이라더니 말주변이 제법 좋았다. 예전에도 이랬던가. 아닌 것 같은데. 고등학교 때는, 좀 더…… 그래, 고등학교 시절의 김독자는. 어딘가 서늘하고, 처연했으며, 웃는 얼굴 뒤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늠할 수가 없는……
    “유중혁?”
    갑작스레 저를 부르는 소리에 유중혁은 고개를 들었다. 김독자가 제 눈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런.
    “미안하다. 잠깐 다른 생각을.”
    김독자는 답하지 않고 빙긋 웃었다. 그 웃는 얼굴로 가만히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연다.
    “유중혁. 너 고등학교 때 기억 나냐?”
    “……뭘 말하는 거지?”
    “나 엄청 싫어했던 거 기억하냐고.”
    유중혁은 옅게 눈살을 찌푸렸다. 이렇게 대놓고 묻는 건 도대체 무슨 의도인가. 하지만 유중혁은 딱히, 곤란한 상황 앞에서 말을 돌리는 인간은 아니었다.
    “기억한다.”
    “그럼 지금은?”
    점점 더 종잡을 수가 없다. 유중혁은 잠시 김독자의 웃는 낯을 지켜보다가 말했다.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거지?”
    “그냥. 얘기 좀 하자고.”
    “무슨 얘기.”
    하하, 김독자가 소리 내서 웃었다. 그래도 다행이네. 이제 나랑 얘기할 마음은 들어? 예전에는 나랑 할 얘기 같은 건 없다고, 그랬었잖아. 유중혁은 까득 소리가 나게 소주잔을 문질렀다.
    “유중혁, 네가 날 왜 싫어하는지는 알아.”
    “……그래서?”
    유중혁의 차가운 대꾸에도 김독자는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잠시 코트 안주머니를 뒤지더니 손가락만한 병을 꺼낸다. 안에서 찰랑거리는 우윳빛 액체.
    “넌 이해 못 하겠지. 엠비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
    새파랗게 쏘아보는 시선을 눈치 채고도 시큰둥하게 병을 굴린다.
    “딱히 네가 에텐이라서 이러는 게 아냐. 엠비가 아닌 이상, 누구도 이해 못 해. 죽지 못하고 산다는 게 무슨 기분인지 네가 알까.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다는 게 뭔지 알까.”
    “……김독자.”
    “손목을 그어도 안 죽는대. 옥상에서 떨어져도 안 죽는다고 하고. 머리랑 몸통이 분리되어도 살아남는다더라고. 웃기지 않냐. 그게 진짜 인간 맞아?”
    유중혁은 잠시 말문이 막힌 채 그의 하얀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주절주절 말하는 입술은 계속해서 움직였다.
    “있잖아, 유중혁. 나는 참 죽고 싶은 적이 많았다? 너도 아마 알겠지만, 나 좀 힘들게 살았거든.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었는데, 내 맘대로 죽지도 못 한대. 그게 얼마나 억울했는지.”
    데구르르, 김독자가 손가락으로 쭉 밀어낸 병이 굴러가다가 테이블 끝에서 떨어졌다. 유중혁은 반사적으로 그걸 붙잡았고, 김독자는 웃었다.
    “떨어져도 안 깨져. 걱정 마.”
    중혁아, 엠비는 그런 거야. 깨지고 싶어도 깨질 수가 없는 거라고. 그 말에 유중혁은 손에 들린 병을 꽉 그러쥐었다.
    “……그걸 에텐인 내게 굳이 말하는 이유가 뭐야, 김독자.”
    그러는 너는, 에텐을 이해하고 있나? 네가 뭘 알지? 그 말에 김독자는 그저 눈을 깜빡이며 웃었다.
    “난 오해를 풀고 싶었을 뿐이야. 유중혁.”
    “…….”
    “네게 이해를 기대하진 않아. 하지만 날 오해한 채로 덮어놓고 싫어하진 않았으면 했어. 그래서, 그래서 얘기하는 거야.”
    유중혁, 나는…… 널 좋아하거든……. 붉어진 눈가로 그렇게 말하며 웃는다. 유중혁은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왜일까, 그건…… 젠장. 모르겠군. 폭탄선언을 한 김독자는 테이블 위에 고개를 박았다. 숙인 탓에 드러난 귓가와 목덜미가 붉었다. 뭐라 웅얼대는 걸 보니…… 취했군. 유중혁은 혀를 찼다.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서며, 김독자의 팔을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축 늘어진 그가 뭐라뭐라 중얼거렸다.
    “김독자. 집 주소 불러라.”
    “으응…… 응?”
    먼저 간다. 다음에 보지. 간단히 인사를 마친 유중혁은 김독자를 부축한 채 가게 문을 나섰다. 가벼운 체중이 맥없이 끌려왔다. 김독자, 이렇게 어정쩡하게 끝낼 생각 마라. 나는…… 아직 네게 들어야 할 이야기들이 남았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유중혁은,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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