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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유리병 속에 담긴 편지
프로게이머 유중혁 × 스트리머 김독자 / 베트로버스 기반

2018.11.
* 베트로버스 AU
* 종이책 <멸망하지 않은 세계에서 사랑하는 세 가지 방법>에 수록했던 버전입니다.











    유중혁은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화면을 통해 볼 때도, 실제로 만났을 때도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는 인상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얼굴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제대로 바라보니…… 유중혁은 자신의 생각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단정하게 자른 검은 머리카락 아래로 그림자를 드리울 정도로 긴 속눈썹. 하얀 뺨과 가느다란 목. 하지만 무엇보다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저 눈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쉬이 짐작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반짝이고 있는 눈동자. 10년 전에도 이런 얼굴이었던가. 기억이 흐릿하다.
    그렇다면 잊어버렸을 리가 없는데.
    “대답해, 김독자.”
    “……뭐, 뭘?”
    당황한 듯 흔들리는 눈…… 아니, 이건 긴장한 건가. 어쨌든 동요하고 있군. 김독자의 손에 들린 물컵이 떨리는 것을 발견한 유중혁은 그의 손에서 천천히 컵을 빼앗아 들어 책꽂이에 올려두었다. 김독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물컵을 따라갔다가, 그 옆에 꽂힌 커다란 앨범을 발견하고선 금방 제자리로 돌아간다. 일부러 앨범 바로 옆에 올려뒀으니 더 이상 발뺌하진 못하겠지.
    “나랑 고등학교 동창인가?”
    “…….”
    “왜 말 안 했지?”
    침묵은 긍정으로 받아들인 유중혁은 여상한 어조로 물었다. 그다지 화낼 일도 아니었고, 그저 왜 동창이라는 사실을 숨겼는지가 궁금했을 뿐이었다. 그것도 심지어 같은 반이었던 적이 있는데. 자신이 유명해진 뒤로, 그와 조금이라도 연이 닿았던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의 이름을 팔아먹으려 들었다. 초, 중, 고등학교 동창은 말할 것도 없고 기억조차 나지 않는 어린 시절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다는 사람까지. 지긋지긋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는데 이 녀석은 어째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꾹 다물려 있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네가 기억 못 하는 것 같아서.”
    “…….”
    “그래서 말 안 했지. 뭐 자랑할 일도 아니고.”
    언제 당황했냐는 듯, 방송할 때와 비슷한 미소를 띠고 있다. 갑작스럽게 그의 감정을 읽을 수 없게 된 유중혁은 하, 짧게 헛웃음을 흘렸다가 팔짱을 꼈다. 기억을 못 한다고 해도 어떻게든 엮어보려는 사람이 천지에 널렸는데. 재밌군. 유중혁은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재밌는 녀석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 이상이다. 조금 궁금해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겠지.
    “이름은 기억하고 있었다.”
    “어? ……정말?”
    “쉽게 잊어버릴 만한 이름은 아니지.”
    “욕이야 뭐야.”
    투덜거리며 웃는 얼굴을 바라본 유중혁은 잠시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렸다. 그다지 특별한 것은 없었다. 2학년 때 프로게이머가 되기 전에도, 후에도. 본격적으로 데뷔한 뒤로는 밤새 연습을 하느라 학교에서는 늘 책상에 엎어져 있기 일쑤였다. 그 해에 우승을 하고 나서는 기숙사 생활이 시작되어 학교를 자주 빠지게 됐고. 결국 3학년 때는 출석일수만 간신히 채워서 졸업했었다. 그나마도 담임이었던 교사가 편의를 많이 봐 준 덕에 삼분지 일 이상을 빠졌는데도 졸업이 가능했지. 덕분에 그가 기억하는 고등학교는 그저 어렴풋한 잔상들만 남아있는, 그래, 마치 희뿌연 성에가 낀 유리창 너머의 풍경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 자신이 김독자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순전히 우연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녀석들은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나지 않으니.
    “어쨌든 기억하고 있다니 신기하네. ……혹시 이름 말곤 생각나는 거 없어?”
    “글쎄. 고등학교 때 기억은 거의 남아있는 게 없어서.”
    “정 없네, 유중혁. 아무리 10년이나 지났어도 그렇지.”
    김독자가 말갛게 웃더니 물컵을 집어 들어 몇 모금 마셨다. 나 주려고 들고 온 거 아니었나. 별로 상관은 없지만. 그가 입가에 묻은 물을 혀로 핥아내고는 다시 저를 올려다봤다.
    “아무튼 뭐, 동창이라고 해서 별로 달라질 것도 없잖냐. 그냥 똑같이 대해.”
    “그렇긴 하지.”
    “아, 그리고 난 앞으로도 어디 가서 너랑 동창이라고 밝힐 생각 없으니까 안심해. 귀찮게 안 할게.”
    대수롭지 않게 하는 말에 유중혁이 굵은 눈썹을 조금 꿈틀거렸지만 김독자는 어깨만 으쓱했다. 결국 유중혁도 그러든가, 하고 대답해버렸고.
    “계속 서서 얘기할 거야? 좀 앉을까?”
    김독자의 말을 따라 둘은 부엌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얀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자 김독자는 자기 마실 것을 가져오겠다며 종종거리고 싱크대 쪽으로 향했다. 곧 달착지근한 냄새가 퍼졌고, 중혁아 정말 뭐 안 먹을래? 들려오는 물음에 유중혁은 필요 없다고 다시 답했다. 김독자가 입을 댔던 잔을 만지작거리다가 입술이 닿지 않은 쪽으로 남은 물을 한 모금 마셨을 뿐.
    “아, 따뜻하다.”
    옅은 김이 올라오는 잔을 가져온 김독자가 맞은편에 앉았다. 핫초코인가, 달착지근한 걸 좋아하는 28세 남성이라.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얼굴이기는 하다. 유중혁은 가볍게 턱을 괴고 김독자를 느릿하게 훑었다.
    “왜 그렇게 쳐다봐? 뭐 묻었어?”
    “아니.”
    “뭐야, 싱겁게.”
    눈을 접어 웃더니 두 손으로 잔을 들어 천천히 마신다. 민무늬의 하얀 컵이 다시 식탁에 내려지고, 윗입술에 조금 묻어난 핫초코를 핥고. 저건 버릇인가. 날름거렸다가 사라지는 붉은 혀를 바라보던 유중혁이 턱을 괸 손을 풀었다.
    “고등학교 때 얘기 좀 해보지.”
    “응? 무슨 얘기?”
    “뭐라도 좋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기억나는 게 별로 없어서. 네 얘기를 듣고 싶군.”
    “와, 유중혁 진짜. 말하는 건 아주 나한테 다 맡긴다 이거지?”
    투덜거리는 척을 하면서도 웃어 보이는 것이 그다지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원래 말하는 걸 좋아하는 타입인가. 하긴, 직업이 직업이니 그럴 수 있겠군. 별 대꾸 없이 턱짓만 하자 김독자가 씩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들은 꽤 새로웠다. 담임 욕, 학교 시설 욕, 여름에 에어컨이 고장 나서 반 아이들 모두가 부채를 들고 다녀야 했다는 얘기. 체육이라도 하고 오면 너도나도 선풍기에 매달리는 바람에 선풍기 목이 부러질 뻔했단 얘기. 그랬던가? 그랬지. 그것도 기억 못 해? 너무한 거 아니냐? 김독자는 핀잔주듯 말했으나, 그 웃는 얼굴을 보니 신기하게도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하긴 너는 선풍기에 매달리는 게 아니라 수돗가로 갔었지. 머리를 흠뻑 물에 적시고 와서는, 체육복이며 교복이며 다 젖고. 그건 기억나는군. 김독자의 말을 따라 10년 전 기억들이 하나씩 되살아났다. 채 말리지 못한 머리카락에서 마룻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던 물방울들, 뜨거운 햇살이 창을 넘어 책상을 달구고, 미지근한 바람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던 여름의 기억. 그 해 여름은 꽤나 더웠던 것 같기도 하다.
    “너 생일도 여름이잖아. 방학 때인데 보충학습 기간이어서 학교에 나왔던 날이었는데.”
    “내 생일도 알고 있나?”
    유중혁의 물음에 멈칫한 김독자가 이내 배시시 웃었다.
    “야, 당연히 알지. 내가 너 팬 경력만 10년이다. 그리고 네가 좀 유명인이었냐? 옆 학교에서 여자애들 찾아오고 난리도 아니었던 거 기억 안 나냐.”
    유중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듣고 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와, 유중혁 이거 표정 봐. 이제 기억났다는 얼굴인데. 진짜 너무하다.”
    “……기억났으니 된 거 아닌가.”
    짧게 답하고 묵묵히 생각을 되감고 있자니, 김독자가 어쩐지 머뭇거리는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고 있었다.
    “왜 그러지?”
    “어? 아니, 음…… 그러니까…….”
    지금까지 실컷 잘 얘기하더니 이제 와서 뭘 망설이는 거지.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빤히 쳐다보자 그가 망설이다가, 마치 비밀 이야기를 하듯 얼굴을 가까이 해 왔다.
    “중혁아. 그날 진짜 뭐 기억나는 거 없냐?”
    “그날?”
    “너 생일날 말야.”
    글쎄…… 잘 모르겠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도통 의중을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니 김독자가 손을 내저으며 몸을 의자 뒤로 기댔다.
    “아, 생각 안 나면 말아라.”
    “뭐길래 그러지?”
    “별거 아냐. 앗, 벌써 시간이 이렇게.”
    김독자는 갑자기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며 놀란 얼굴을 했다. 뻔히 눈에 보이는 수작을 부리는군. 그래도 실제로 시간은 새벽 한 시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확실히, 오늘 처음 만나는 사람 집에 머무르는 시간 치곤 너무 늦었지. 유중혁은 그의 연기에 적당히 어울려주기로 하고선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가게, 중혁아?”
    “……그래. 가야지. 늦었으니.”
    “다음에 또 볼 수 있어?”
    현관 쪽으로 걸어가다 멈춰 서서 몸을 돌렸다. 저보다 한 뼘 정도 작은 키, 올려다보는 눈빛에 유중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회가 되면.”
    “정말이지? 고맙다, 중혁아.”
    “다음엔 술이라도 한 잔 할까. 식사도 좋고.”
    무심코 튀어나온 말에 유중혁은 스스로도 조금 놀라 입을 다물었다. 김독자 또한 놀란 듯, 의외라는 얼굴을 했지만…… 이내 방긋 웃는다. 그냥 하는 말 아니지? 약속 지켜. 말하더니 먼저 나서서 현관문을 열어준다. 차가운 11월의 바람이 문 틈새로 새어 들어왔다.
    “춥다. 얼른 문 닫아라.”
    “알았어. 조심해서 가라, 중혁아.”
    손을 흔드는 그를 뒤로 하고 유중혁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열린 채 빛을 쏟아내는 현관문을 바라보면서, 아니, 그 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남자의 마른 몸과 뺨, 그리고 귓불을 바라보면서. 유중혁은 옅게 저릿해져 오는 손가락을 꾹 말아 쥐었다.









    “아! 또 떨어졌어, 미친…… 씨이…… 아 죄송합니다. 욕해서 미안해요, 여러분. 아 근데 진짜 빡쳐…….”
    김독자는 길게 심호흡을 하고, 천장을 바라봤다가, 다시 마음을 다잡고 마우스를 움직였다. 이 미친 항아리 게임 도대체 누가 만든 건지 절대 용서 안 한다. 제작자 용서 못 해. 이거 추천한 시청자도 용서 못 해. 이를 악물고 눈에 불을 켜자 채팅창이 들썩였다.

    [ㅋㅋㅋㅋㅋㅋㅋ항아리겜 추천하신분 복받으세요]
    [태초마을 안간게어디임 ㅌㅌㅌㅋㅋㅋㅋ]
    [오늘방송개존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방송 다시보기 올라오죠???? 움짤뜰거개많아 ㅋㅋㅋㅋ]
    [ㅋㅋㅋ마왕님 잘좀해봐요 ㅋㅋㅋㅋ]


    “아 미치겠네. 나도 잘 하고 싶거든요? 근데 미친 이게요. 여러분 진짜 해보시면 아는데, 아, 설명을 못 하겠네.”

    [구마님 한결같이 겜 못하셔서 좋음 ㅋㅋㅋㅋㅋ]
    [ㅇㅈ 잘하면 재미없음 ㅋㅋㅋㅋㅋㅋ]
    [패왕은 잘해서 재밋지않나;]
    [타방송 얘기하지맙시다]
    [패왕 방송안하잔아요...]
    [패왕은 타방송이 아니라 이제 거의 구마방송 붙박이 아님????ㅋㅋㅋ]
    [ㅇㅈ]
    [개 ㅇㅈ]
    [패왕은 항아리겜도 잘할듯ㅋㅋㅋㅋㅋㅋ]


    “아, 그럴 리가 없습니다. 여러분 걔가 항아리 게임까지 잘 할 리가 없잖아요. 그건 너무 밸붕 아냐? 제가 아무리 중혁이 팬이라지만 그것까진……”

    [구마님 또 까빠인척함ㅋㅋㅋㅋㅋ]
    [그냥 빠인거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대., ...]
    [유중혁 전략시뮬말고 다른겜도잘함???]
    [지금 리그 오기전엔 AOS겜 하지않았음?]
    [ㅁㅈ 그때도 계속 우승했었어요]
    [데뷔 리그는 FPS엿던걸로 알음]
    [개쩌네;]
    [겜이면 다 잘함? 오졌다]


    “걔가 웬만한 거 다 잘하기는 하는데요. 이런 게임까지 잘하면 내가 너무 억울하잖아, 어? 안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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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게임이면 다 잘한다 김독자 《


    “아 미친 유중혁 또 시작이야! 짱나게 하지 마!”

    [ㅋㅋㅋㅋㅋㅋㅋㅋ패왕떴다ㅋㅋㅋㅋ]
    [유중혁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ㅈㄴ웃곀ㅋㅋㅋㅋ]
    [사실상 고정시청자 유중혁]
    [형님 오늘도 뵙네요 ㅋㅋㅋㅋㅋ]


    유중혁 진짜 짜증나. 김독자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후원 메시지를 바라봤다. 처음 합동방송을 한 뒤로 한 달이 지났고, 그 사이 세 번의 저녁 식사와 한 번의 술자리를 가진 두 사람은 제법 친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오프라인으로 만난 게 그 정도고, 온라인으로는 더 많았지. 김독자와 유중혁은 동년배이기도 했고, 관심사도 비슷했으며, 그리고…… 어쩌면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덕이었을까. 어쨌든 유중혁과는 이제 전화나 카■오톡을 통해 아무 때나 연락을 할 정도로 친해졌다. 다른 막역한 사이처럼 시도 때도 없이 불러서 나와라, 하기엔 둘 모두 유명인이었기에 불가능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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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못 믿겠으면 항아리 게임 대결 합방 하든가 《


    [와 패왕이 먼저 대결신청함ㅋㅋㅋㅋㅋㅋㅋ]
    [헐 합방 또해요????? 대박완전찬성 합방해주세요]
    [미친 개좋아 구마님이랑 패왕 합방 ㅠㅠㅠㅠㅠㅠㅠㅠ]
    [합방 개추]
    [또 레전드 각 섰다ㅋㅋㅋㅋ]


    “유중혁 진짜. 야 잠깐 기다려봐.”
    김독자는 마우스에서 손을 떼고 옆에 놓인 휴대폰을 들어 유중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스피커폰으로 전환하고 가만 기다리자니 곧 그가 전화를 받았다.
    “바쁘다, 김독자. 끊어.”

    [ㅅㅂ 패왕 바쁘대 개웃김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둘이 개친해졌네 전화 막함ㅋㅋㅋㅋㅋ]
    [ㅋㅋ이름으로 부르네 ㅋㅋㅋㅋ]
    [부럽다 패왕 전화번호]
    [와중에 패왕 목소리 개좋음...]


    “웃기시네. 됐고, 대결 해. 하자. 벌칙 대결 콜?”
    “진짜 자신 있나, 김독자?”
    옅은 웃음기가 묻어나는 목소리에 김독자가 움찔했다.

    [패왕 목소리 왜케 다정함? 미쳣는데?]
    [뭐임?????? 둘이뭐임??????????]
    [둘이 왜케친해졌어요??? 뭐예요???]


    “자신…… 자신은 없는데…… 야 너는 현직 프로게이머라는 놈이 어? 일반인한테 이겨먹으려고 그래?”
    “이런 게임까진 잘 못할 거라며?”
    “아 진짜……. 야 그래도 하던 짬밥이 있지. 핸디캡 넣고 하자.”
    “핸디캡…… 애매하군. 시간제한은 어때.”

    [오 좋다]
    [시간제한 걸면 얼마나 걸어야함??? 구마님 지금 4시간째 플레이중인데 ㅋㅋㅋㅋㅋ]
    [아직 반도 못왔음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팩폭 자제하시죠]


    “얼마나 걸 건데?”
    “흠…….”
    잠시 생각하는 듯 뜸을 들이던 유중혁이 말했다.
    “나는 30분, 너는 3시간. 어때.”

    [와 패왕 조건 개 너그러움]
    [캬 역시 패왕임]
    [그래도 3시간 안에 못깰듯ㅋㅋㅋㅋㅋㅋㅋ]
    [구마님의 선택은??!!]
    [마왕님 자존심이냐 벌칙이냐]


    김독자는 눈썹을 잔뜩 모으고 고민에 빠졌다. 너무 자신만만한데. 진짜 잘 하는 거 아냐?
    “콜. 대신 연습 하지 말기.”
    “너도?”
    “아니? 나는 연습하고.”
    “무슨 불공정한 조건이냐, 김독자.”
    “아, 찜찜하단 말야. 안 그럼 안 해.”

    [구마님 개 치사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지기싫은가봐;]
    [유중혁 항아리겜도 잘하나본데 ㅋㅋㅋㅋㅋ]
    [근데 패왕이면... 가능성있음]
    [ㅁㅈ 구마님 일반인 이하 수준이라 이정도는 걸어야함]
    [ㅋㅋㅋ오늘 청자들 팩폭 수위 무엇 ㅋㅋㅋㅋㅋ]


    “까다롭군. 일단 그렇게 하지.”
    “너 나 몰래 연습하기 없기다.”
    “내가 약속을 안 지킨 적이 있던가?”

    [패왕 개멋있네...]
    [ㅇㅈ]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일단 알았어. 일정은 나중에 따로 얘기해.”
    “알았다. 그럼 끊는다.”
    김독자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구마님... 좀 에반듯... 3시간안에 절대못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개넘해 근데 맞말]
    [ㅁㅈ... 지금 반도못왓어요...]
    [지금이라도 포기하시는게.....ㅋㅋㅋ]
    [그래도 패왕30분도 좀 에바같아서 ㄱㅊ을듯]
    [유중혁 완전 자신만만하던데]


    “제가 그때까지 열심히 연습해 오겠습니다. 3시간 안에 깨고 만다.”

    [에반데... 유중혁이 30분 넘게 걸리길 바라는게 빠를듯]
    [ㄹㅇ임]
    [그럼 저희는 유중혁 오래걸리게 기도할게요 구마님은 뭐 알아서하시고]
    [ㅋㅋㅋㅋㅋㅋ개넘함ㅋㅋㅋ]


    “제가! 어? 연습의 힘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지금 저 무시한 분들 다 각오하세요. 그날 랜덤 뽑기 해서 시청자도 벌칙 시켜버릴 거예요.”

    [시청자한테 벌칙시키는 구마 인성ㅋㅋㅋㅋㅋ]
    [진짜 마왕이다 개사악함ㅋㅋㅋㅋㅋㅋㅌㅌ]


    김독자는 픽 웃으며 다시 마우스를 붙잡았다. 유중혁 진짜 얄밉다. 정말 항아리 게임도 잘 하는 거 아냐? 불안감이 등 뒤를 엄습했으나…… 뭐, 벌칙도 콘텐츠니까. 어느 쪽이 하든 반응은 좋을 것이다. 유중혁이 진짜 이상한 것만 안 시키면 된다. ……이상한 거 안 시키겠지? 김독자는 상념을 접어두며 다시 방송에 집중했다.



    “네, 안녕하세요. 제가 먼저 방송 켰습니다. 중혁이는 조금 있으면 올 거예요.”
    오후 9시. 김독자는 평소 방송 시간보다 한 시간 이른 시각에 방송을 켰다. 유중혁과 자신의 게임 제한시간을 모두 합치면 3시간 30분이었으니, 10시에 시작하면 너무 늦을 터였다. 미리 공지도 해 뒀던 덕에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시청자 수가 모였다. 유중혁이 그의 방송에 종종 출몰하면서 기본 시청자 수가 조금 늘어나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구마님 식사 하셨어요??]

    “저녁이요, 아직 안 먹었어요. 배고파 죽겠네요. 중혁이가 뭐 먹을 거 사온다고 했는데. 아, 왔나보다.”
    딩동,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김독자가 일어나서 방을 나가고. 채팅창은 계속해서 움직였다.

    [진짜 졸라친해보인다 쩐다]
    [한달만에 무슨일 일어난거임 구마 친화력 ㄷㄷ;]
    [마왕님 입 잘터시더니 유중혁한테도...]
    [인맥 갓]


    열려 있는 문 너머로 어렴풋한 대화 소리와 부스럭거리는 소리들이 마이크를 타고 전해졌다. 이내 하얀 봉투를 들고 들어온 김독자가 자리에 앉고, 잠시 뒤 유중혁이 들어와 겉옷을 벗어 의자에 걸어두고 앉았다.
    “안녕하세요.”

    [패왕!!!!!!!!!!!]
    [크 어서오세요 오늘도 존잘이시다]
    [개잘생겻다진짜 적응안됨;]
    [유중혁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화면 눈부셔서 못보겠음 감마좀 낮추셔야할듯]
    [피지컬 실화??? ㅋㅋㅋ구마님 옆에 있으니까 어째 더 ㅋㅋㅋ]


    “아, 배고파. 나 지금 먹어도 돼 중혁아?”
    “그래. 따뜻할 때 먹어라.”
    “여러분 저 좀만 먹고 시작할게요? 괜찮죠?”

    [먹방 예고좀;;]
    [아 배고파....]
    [만두 맛있겠다 ㅠㅠㅠㅠㅠㅠㅠ]


    유중혁이 사온 것은 금방 찐 듯 따끈따끈한 왕만두였다. 비닐봉투에서 스티로폼 용기를 꺼낸 김독자가 뚜껑을 열고선 입맛을 다셨다.
    “맛있겠다…….”
    “당연하지. 나는 맛없는 건 안 먹어.”
    “하여간 까다로워가지고.”
    눈을 흘기는 김독자를 본체만체한 유중혁은 만두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김독자의 입가에 가까이 가져다댔다.
    “자.”
    “어? 어어?”

    [미친 뭐임;]
    [????????????????]
    [????머임??????]


    “안 먹을 건가?”
    “아, 아니 중혁아 나도 손 있는……”
    뭐라 말하려던 김독자는 저를 똑바로 바라보는 유중혁의 시선에 결국 얌전히 입을 벌렸다. 두 손으로 유중혁의 손을 붙잡고 커다란 만두를 한 입 깨물어 입에 넣으니…… 정말이지 맛있긴 맛있었다.
    “와. 진짜 맛있어…….”
    “내가 말했지.”
    유중혁은 피식 웃고선 만두를 김독자의 손에 쥐여 주고 자신도 하나를 집어 들었다.

    [머임?????????????????????]
    [눈 비볐는데도 그대로길래 개놀람 뭔일일어난거임]
    [ㅁㅊ.......패왕 겁나 스윗하네...]
    [둘이 뭐예요???? 미쳣다]
    [와 진짜 대박 이거 쩐다]


〔 불꽃천사우롈님이 2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 두분 행복하세요 ^♡^ 《


    후원을 본 김독자가 입을 가린 채 우물거리며 말했다.
    “그른 그 으느으으……”
    “삼키고 말해, 김독자.”
    “……으. 그런 거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여러분.”

    [아니긴 뭐가 아님;]
    [쫌... 심상치않은데....... 촉이온다...]
    [저희 아무 말도 안했는데]
    [???그래 모른척하는걸로 갑시다]
    [아 두분 넘 보기 좋네요 ^^ 정말 친.구.같.다.]
    [ㅋㅋㅋㅋㅋㅋ구청자들 대친절]


    뭔 소리야. 이게 다 유중혁 이 자식 때문이다. 김독자는 유중혁을 원망스러운 눈으로 잠시 노려봤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얼굴로 만두를 먹고 있을 뿐이었다. 어휴, 진짜 잘생겼네. 하마터면 화 풀릴 뻔……. 사실 이미 풀리고도 남을 정도로 잘생긴 얼굴이었으나 김독자는 열심히 미간을 좁혔다.

    [구마님 표정 푸세요 솔직히 유중혁정도 얼굴이면....ㅇㅈ해드림....]
    [ㅁㅈ 나도 게이될것같다고]
    [유중혁이면 나도 좀 생각해봄]
    [뭐래 유중혁은 님들한테 관심없음 꿈깨셈]
    [구마님한텐 관심있다잖음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 거 아니에요. 아, 억울하네. 야 중혁아. 너도 뭐라고 말 좀 해봐.”
    “귀찮아.”
    간단히 대꾸한 유중혁은 만두를 두 개째 집어 들었다. 편하게 다리까지 꼬고 앉는 모습에 김독자는 어이가 없었으나, 채팅 분위기에 일일이 대답하면 상황이 더 커진다는 것을 알기에 얌전히 만두 먹방을 시작했다. 그다지, 이런 일에 휘말리고 싶지는 않았고.
    “야 근데 이거 진짜 맛있다. 어디 거야? 아, 잠시만, 이름은 말하지 마.”
    “물어봐 놓고 어쩌라는 거지?”
    “니가 지금 대답하면 완전 광고처럼 되거든? 나중에 따로 알려줘.”

    [아 개궁금한데... 우리도 알려줘요]
    [알려주세요 PPL 아니라고 할게]
    [배고파 안되겠다 치킨시키러감]


    “아쉽지만 이 맛집은 저랑 중혁이만 알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아 둘이서만 비밀임??? 구마님 치사하다]
    [뭐야...그런거면...어쩔수업자나... 두분행복하세요]
    [내가 구마방송보다가 이런종류의 빡침을 느낄줄은]
    [구마 형 평생 솔로일줄알았는데 배신자...]


    “방금 발언 뭐죠? 저 모쏠 아닙니다. 많이 얘기했잖아요.”

    [아 모쏠 아니라고만 하고 옛날 애인얘기 한번도 안했잖아요]
    [ㅁㅈ 진심 1도 언급없음ㅋㅋㅋㅋㅋㅋㅋ]
    [구애인 매너지키는건 좋은데 아예 말이 없어서... 존재가 의심가는...]
    [존재의심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
    [구마님 모쏠이어도 안놀릴게요... 사실대로 말해요...]


    김독자가 채팅창을 읽으며 시청자들과 투닥거리는 사이 유중혁이 손을 풀기 시작했다. 한 손에 만두를 들고 우물거리던 김독자가 그를 보고 물었다.
    “뭐야? 벌써 손 풀어?”
    “더 먹고 있어라. 내가 먼저 하고 있을 테니까.”

    [패왕 배려봐 오졋다]
    [개스윗가이네... 졸라쩐다...]
    [둘이 언제 사겨요???]


    “안 사귑니다.”
    김독자가 딱 잘라 말하자 유중혁이 잠시 그를 돌아봤지만 이내 시선을 거뒀다. 김독자는 빈손으로 마우스를 붙잡고 항아리 게임을 실행한 뒤 타이머를 켰다. 게임 화면과 타이머, 그리고 캠의 크기를 조절하고. 게임의 메인 화면을 보자니 벌써부터 빡침이 몰려온다. 하도 연습했더니 이제 화면만 봐도 짜증나는 수준이다. 아니 애초에 이게 연습한다고 잘 되는 게임인가? 사실은 깨지 말라고 만든 게임이 아닐까? 연습한 결과 방송에서 엔딩을 보기는 했지만. 유중혁이 의자를 끌어당겨 모니터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와 패왕 가까이서 잡으니까 더 쩐다...]
    [개잘생겻어............]
    [형 진짜 쩔어요]


    “감사합니다.”
    유중혁이 픽 웃으며 말하자 채팅창이 주루루룩 올라갔다. 김독자는 만두를 마저 먹으며 그의 옆 가까이로 의자를 옮겼다.
    “중혁아, 아무리 너라도 30분은 무리다.”
    “해 봐야 아는 거지.”
    “처음 해보는 거 맞지?”
    “연습 안 했으니까 걱정 마라.”
    “비슷한 게임도 안 해봤어?”

    [항아리 유사겜도 많은데]
    [다른 비슷한겜도 하나도 안해봣어요???]


    “안 해봤다.”

    [뭐지 패왕이 말하니까 갑자기 신빙성 생김]
    [ㅇㅈ]


    “흠…….”
    김독자가 고개를 기울이며 미심쩍은 눈으로 흘겨보자 유중혁이 픽 웃으며 손으로 뺨을 가볍게 밀어냈다. 흠칫 놀라 몸을 뒤로 빼니 별 거 아니라는 듯 마우스를 달칵거리기 시작한다.
    “해볼까. 타이머는 이건가?”
    “어, 어어. 그거.”
    타이머의 시작 버튼을 누르고 유중혁은 게임을 시작했다. 1분도 안 되어 금방 게임 방식을 파악하더니 타이머를 멈추지도 않은 채 제어판을 켜서 마우스 속도를 조절한다. 속도를 바꾸고 게임창에서 움직여봤다가, 다시 속도를 조절하고. 두세 번 반복하더니 본격적으로 항아리 인간이 산을 타기 시작했다.

    [와 ㅋㅋㅋㅋ 패왕ㅋㅋㅋ]
    [첨엔 좀 헤맬줄알앗는데 얼마 헤매지도않음ㅋㅋㅋ]
    [뭐임진짜 개사기캐임;]
    [패왕 쩐다 사랑해..]


    말도 안 돼. 아무리 그래도 30분 컷은 안 될 것이다. 김독자는 주섬주섬 다 먹은 만두의 뒷정리를 하고는 팔짱을 끼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중간 중간 추임새를 넣고, 종종 떨어질 때면 놀리는 것도 잊지 않았으나…… 항아리 인간이 설산에 도달한 뒤부터는 급격히 표정이 어두워졌다.

    [마왕님ㅋㅋㅋㅋㅋㅋㅋㅋㅋ]
    [표정 어떡함ㅋㅋㅋㅋㅋ]
    [아 ㅅㅂ 개웃겨진짜]
    [유중혁 오졋다 ㅋㅋㅋ]
    [마왕님 벌칙 생각하죠 우리]


    “유중혁 진짜…….”
    패왕은 코웃음만 치고 열심히 산을 올랐다. 송신탑에 도착하고 결국 우주에 도달해…… 엔딩을 보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15분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와]
    [처음에 마우스랑 화면 조정한거 빼면 거의 10분컷인듯ㅋㅋㅋㅋ]
    [말이안나옴ㅋㅋㅋㅋㅋㅋ 패왕 무엇ㅋㅋㅋㅋ]
    [첨하는거 맞는거같은데 진짜 쩐다 ㅋㅋㅋ]
    [마왕님 벌칙 가자]
    [구마님 벌칙!!!!!!!!!!]


    “아직 저 안 했거든요?!”
    “연습은 많이 했나, 김독자.”
    유중혁이 여유롭게 웃으며 의자를 뒤로 조금 물렀다. 김독자가 인상을 쓰고 웃자 재밌다는 듯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꼰다. 와중에 다리는 또 왜 저렇게 길어. 김독자는 투덜거리며 제대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사이 김독자가 마시던 물컵을 집어든 유중혁은 거리낌 없이 입을 대고 마셨다. 뭐야 이 자식, 자기 물컵 저기 있잖아. 시비 거나.

    [마왕님 걍 포기하셈.. 최단기록 4시간이엇잔아요]
    [ㅁㅈ 시간낭비임]
    [시간낭비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두고 봐요. 내가 어? 하고 만다.”
    하지만 그 말이 무색하게도 김독자는…… 그 뒤로 3시간동안 열심히 올라간 길에서 그대로 떨어져 태초마을에 도달하고 말았다. 세상 잃은 얼굴이 된 김독자를 본 유중혁이 고개를 돌리고 웃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예상적중]
    [마왕님 벌칙! 마왕님 벌칙!!!]
    [개웃겨진짴ㅋㅋㅋㅋㅋㅋ]
    [방송천재 ㅋㅋㅋㅋㅋㅋ]
    [구마님 벌칙 뭐해요??!!]


〔 커져라여의봉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 잘보고갑니다^^ 《
〔 왼손의흑염룡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 구마 패배 ㅅㅅ 《


    “하아아…….”
    “약속 지켜라.”
    들려오는 웃음기 어린 목소리에 고개를 휙 돌려 쏘아봤지만 유중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입가에 웃음을 걸친 채 팔짱을 낀 검지를 두드려대고. 그를 잠시간 더 노려보다가 짧은 패배의 충격에서 빠져나온 김독자는 해탈한 마음으로 한숨을 폭 쉬었다. 벌칙도 콘텐츠라고 미리 마음을 먹고 왔으니 멘탈을 다잡는 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예, 여러분. 제가 졌네요. 왠지 이럴 것 같긴 하더라. 내가 미쳤다고 유중혁이랑 게임 내기를. 다신 안 해.”

    [거봐요 우리가 말렸죠]
    [ㅁㅈ 우리는 하지말라고햇다]
    [삼진에바였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솔직히 조건 개 관대했는데 ㅋㅋㅋㅋㅋㅋ]
    [패왕이 사기라 어쩔수없엇다;]
    [ㄴㄴ..구마님이 일반인 이하 ㅋㅋㅋ]
    [벌칙 뭐함?? 어떻게정해요???]


    “벌칙은…… 음.”
    “내가 정해도 되나?”
    “으응?”
    이 자식 왜 이렇게 적극적이야? 김독자는 어이없다는 눈으로 잠시 그를 바라봤으나 어디 말해보라는 듯 턱짓을 했다. 그리고 유중혁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 불꽃천사우롈님이 3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
》 꺄아아아아아아아악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ㅊㅊㅊㅌㅋㅋㅋㅋㅋㅋㅋ]
    [아 미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생각도못함]
    [차이나드레스 ㅋㅋㅋㅋㅋㅋㅋㅋ]
    [심지어 가발이랑 메이크업금지임 지금얼굴에 그대로입어야함]
    [근데 좀 어울릴거같기도하고...ㅋㅋㅋㅋ]
    [ㅋㅋㅋㅋ구마형 기대합니다]
    [구마님 좀 청순한 인상이라 글쎄 ㅋㅋㅋ]


    “옆까지 시원하게 트인 걸로. 가터벨트까지 있으면 더 좋겠군.”
    “미쳤어 유중혁?!”
    “제정신이다.”

    [패왕의 취향... 알고갑니다...]
    [배우신분 감사합니다]
    [그날 방송 연령제한 걸어야하는거아님??ㅋㅋㅋ]


    “아니, 내 취향은 아니다. 이건 김독자의 취향인……”
    “야!”
    김독자가 황급히 입을 틀어막자 유중혁은 순순히 입이 막힌 채 그를 향해 눈으로 웃어 보였다. 그 얼굴이 어찌나 잘생겼던지…… 김독자도, 채팅창도 잠시 얼어붙었다.

    [미친...................]
    [와..............ㅆㅂ...]
    [방금 무슨말했음 존1나 까먹었다..]
    [ㅁㄹ 얼굴밖에 기억안남]
    [오늘 잠못잔다... 패왕님 책임져요 ㅠㅠㅠㅠ]


    “유중혁 진짜 얼굴 그렇게 써먹지 마라…….”
    “내가 뭘?”
    태연자약한 대답에 짜증이 울컥 솟았으나 유중혁의 10년 팬인 김독자는…… 그의 얼굴을 앞에 두고 더 이상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시바, 짜증나. 왜 잘생기고 난리야? 하지만 잘생겨서 더욱 좋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김독자는 그를 매섭게 쳐다보았으나, 그 시선의 끝에는 숨길 수 없는 오래된 애정이 담겨 있었고. 그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 챈 유중혁은 그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그래서, 벌칙 방송 때도 온다고?”
    “내가 시킨 벌칙인데 내가 못 보면 아깝지 않나?”
    “야, 그냥 모니터 너머로 봐 주면 안 되냐…….”
    “굳이?”
    낮게 웃는 소리에 김독자가 시선을 조금 돌렸다. 저런 식으로 굴 때면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내가 10년 본 유중혁은 이런 놈이 아니었는데. 저렇게 잘 웃지도, 농담을 잘 하지도 않는 놈이었는데. 3천 일간 쌓아온 이미지가 30일 만에 깨져 나가는구만. 역시 사람은 직접 봐야 알 수 있는 거다. 아, 김독자는 문득 눈앞이 흐려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오래 된 기억이라 저도 잠깐 잊어버렸다 생각했지만…… 그래, 10년 전의 유중혁은, 꼭 이런 모습이었던가.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몰라, 맘대로 해. 그럼 날짜는 언제?”
    “날짜…….”
    긴 손가락으로 입가를 매만지던 유중혁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주 작게 웃었다.
    “12월 24일, 어때.”
    “엥? 크리스마스 이브날?”
    “데이트 한다고 생각하고.”
    “미, 미친……”
    야! 미쳤어? 김독자는 저도 모르게 그의 단단한 어깨를 찰싹 내려치며 외쳤다. 유중혁 이 새끼 뭔 생각하는 거야? 데이트? 데이트으으? 미친, 누가 그런 소리를 막……. 아니, 내가 너무 과민반응 하는 건가? 친구 사이에…… 데이트라는 말을…… 시발, 하는 것 같기도 하고. 흔한 일은 아니겠지만. 김독자가 눈을 떨며 바라보자 유중혁이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말했다.
    “왜? 너 애인 없지 않나.”
    “아, 씨, 그건 맞긴 한데……. 아니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글쎄. 아무리 봐도 애인이 있는 사람으로는 안 보이던데.”
    “유중혁 진짜 짜증나.”
    조금은 신경질적으로 뱉은 말에도 피식 웃으며 현관으로 가더니 신발을 찾아 신는다. 김독자는 슬리퍼에 발을 넣으며 그 옆에 섰다.
    “알겠어. 그 때로 해, 그럼.”
    “차이나드레스 디자인은? 같이 골라줄까?”
    “뭐래, 미친 새끼야!”
    등짝 더 맞고 싶냐?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자 유중혁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문을 열었다. 한 달 전보다 한층 더 차가워진 공기가 김독자의 스웨터 사이로 스며들었다. 아, 정말 겨울이네.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자 유중혁이 문 틈새를 제 커다란 몸으로 막고 김독자를 돌아봤다.
    “간다. 나오지 마.”
    “나와 달래도 안 나간다.”
    째려보며 대꾸하자 소리 내서 웃더니 인사 대신이라는 듯, 손으로 김독자의 뺨을 슬 쓸고 어깨를 가볍게 내리눌렀다. 그대로 몸을 돌려 나가고 문이 닫혔다. 삐리릭. 도어락이 저절로 닫히는 소리가 아득히 멀리 들려왔다.
    김독자는 닫힌 현관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시간이 갑작스레 느리게 흐르는 것 같다. 유중혁의 손은 뜨거웠다.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뜨겁게 느껴졌던 거겠지. 왜? 김독자는 천천히 손을 들어 뺨에 손등을 가져다댔다. 그의 손이 내려앉았던 어깨가 마치 데인 듯 뜨거웠고, 이내 온 몸이 달아오르는 듯한 기분에, 아. 김독자는 이를 악물었다. 안 돼. 정신 차려, 김독자. 이건 아니야.
    그래, 이건 아니야.



    크리스마스 이브의 벌칙 방송은 대성황을 이뤘다. 평소의 배는 될 정도의 시청자가 몰렸으며(여러분 크리스마스인데요! 연애 좀 하세요! 김독자가 외쳤다), 평소의 세 배는 될 법한 후원이 쏟아졌다(김독자, 인기 많군. 미친 유중혁 조용히 좀 해! 유중혁의 입이 틀어 막혔다). 네 시간 가량 이어진 방송이 끝나자 새벽이 깊어가는 시간이었다. 두 시가 넘었군. 유중혁은 검은색 차이나드레스를 입은 채 기지개를 쭉 펴는 김독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가느다란 몸이 길게 늘어나고, 정말로 시원하게 쭉 트인 치마 틈으로 새하얀 허벅지가 움직였다. 유중혁은 시선을 조금 돌렸다.
    “아, 오래도 했네…….”
    “수고했다.”
    핼쑥해진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 놀리는 어조가 되어버렸다. 금방 날카로운 대답이 돌아올 거라 생각했는데, 네 시간 동안 차이나드레스를 입고 온갖 놀림을 받은 덕에 면역력이 증강된 김독자는 당당하게 대꾸했다.
    “아, 네. 누구누구 씨 덕분에 좋은 경험 했습니다.”
    “좋은 경험이라.”
    “야, 중혁아. 이리 좀 와봐.”
    뭐지? 유중혁은 고개를 갸웃했으나 순순히 그의 곁에 가서 섰다. 여전히 유중혁을 돌아보지 않은 채 뒷모습을 보이고 있던 김독자가 손가락으로 제 등을 가리켰다.
    “단추 좀 풀어줘.”
    “……입을 땐 어떻게 입었지?”
    “단추 채워놓고 입었는데, 어떻게 들어가긴 하더라.”
    “벗을 때도 똑같이 하면 되지 않나?”
    “그게 됐으면 너 안 불렀지, 인마.”
    유중혁은 차이나드레스의 디자인을 느리게 눈으로 훑었다. 목덜미부터 골반 즈음까지 주욱 벌어져 있는 천을 단추로 닫아 연결하고 있는 디자인이었다. 과감하군. 이런 걸 고를 생각을 했나. 방송을 할 때는 거의 상체만 보여줬고, 그나마도 뒷모습은 별로 나오지 않았지만.
    “한시라도 빨리 갈아입고 싶으니까 얼른.”
    “귀찮게 구는군.”
    “나도 너한테 이러고 싶지 않거든?”
    유중혁은 천천히 손을 들어 목덜미에 꿰여진 첫 번째 단추로 향했다. 툭, 툭, 단추 두 개를 풀어내자 새하얀 뒷목이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이 녀석은 왜 이렇게 온 몸이 하얀 건지,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손을 조금 더 움직여 하나씩, 하나씩 단추를 풀어갈수록 오목하게 패인 척추의 선과 도드라진 견갑골,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왔고…… 젠장. 저도 모르게 그 하얀 피부에 고개를 묻고 이를 박아 넣는 상상을 한 유중혁은 소스라치게 놀라 손을 떨어뜨렸다.
    “뭐야? 다 됐어?”
    “……아니,”
    “뭘 그렇게 느긋하게 풀어.”
    중얼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유중혁은 고개를 들어 다시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새하얗던 목덜미가 조금 붉었다. 귓불은, 그보다 더 달아올라 있었고.
    손가락 끝이, 발끝이 저릿하게 울린다. 유중혁은 주먹을 꽉 쥐었다. 느리게 숨을 몰아쉬고, 서너 개 남아 있는 단추를 한 손으로 풀어내고…… 다른 손은 김독자의 허리께에 얹으며. 가는 몸이 흠칫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대로 귓가에 고개를 가까이 해, 속삭이듯 이름을 불렀다.
    “김독자.”
    “…….”
    움찔 떨고선 제게서 조금 멀어지려 하는 얼굴. 유중혁은 부드럽게 그 턱을 붙잡고 자신 쪽으로 돌렸다. 한껏 붉게 달아오른 두 뺨이, 당황한 듯 조금 벌어진 입술이…… 못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간지러운 무언가가 심장께로부터 시작되어 온 몸으로 퍼져나간다. 전기라도 통하는 듯 접촉한 손끝으로부터 찌릿한 감각이 스며들었다. 아, 그래, 그런 거였군. 유중혁은 저도 모르게 조금 웃었다. 그는 지금껏 사랑 같은 건 해본 적도 없었고, 할 수 있을 거라 믿지도 않는 인간이었으나…… 이 기분을, 이 감정을 다른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답은 아니오였다. 유중혁은 수긍이 빠른 인간이었고, 그러므로 다시 한 번 눈앞에 서 있는 남자의 이름을 부르며.
    천천히 입술을 겹쳤다.
    중혁, 아, 작은 목소리는 금방 막혔다. 다른 손을 그의 뒷목에 얹으며 조금 더 자신 쪽으로 가까이 끌어당기고, 입술을 벌려 혀를 얽었다. 낯선 감각에 당황한 듯 멈칫거리는 것이 느껴졌으나 유중혁은 그를 진정시키려 천천히 뺨을 쓰다듬었다. 엄지로 질끈 감은 눈꺼풀과 긴 속눈썹 언저리를 만지작거리고. 단추가 모두 풀려 훤히 드러난 등허리에 손을 받치자, 김독자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하아, 아…….”
    붉은 입술 틈새로부터 억눌렸던 숨이 터져 나왔다. 유중혁은 순순히 고개를 조금 뒤로 물렸다. 그대로 잠시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입맞춤을 이어가려 했으나. 김독자의 표정을 보는 순간 유중혁은 바닥에 못 박힌 듯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중혁아. 중혁아…….”
    김독자는…… 울고 있었다. 흐느끼는 소리도 없이 조용히 떨어져 내리는 눈물이었으나, 그것은 분명히 어떠한 감정의 표출이었고. 유중혁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멍하니 입을 조금 벌렸다.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그것만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중혁아.”
    “…….”
    “미안해, 중혁아. 나는……”
    눈물을 닦아내지도 못한 채 김독자가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
    “난 이제 너 안 좋아해. 중혁아.”
    그건, 도대체 무슨 의미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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