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
* 오메가버스 AU
* 종이책 <멸망하지 않은 세계에서 사랑하는 세 가지 방법>에 수록했던 버전입니다.
유중혁은 잠시 망설였다.
김독자가 어떤 집에 살고 있을지 짧게 상상은 해 본 적이 있었다. 일단은 제법 규모가 있는 제약회사의 대표이사이니 재력은 충분하겠군. 게다가 오메가다. 그것도 기묘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유중혁도 김독자의 집안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한참이나 시끄럽게 신문과 뉴스를 달궜던 화제 아니던가.
알파 여성이, 남편이었던 오메가 남성을 찔러 살해한 사건.
피해자가 준 대기업의 총수였던 탓에 파장은 일파만파 퍼져나갔고, 한동안 알파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부정적인 여론이 주를 이뤘으나…… 그로부터 1년 뒤, 수감된 알파 여성이 감옥에서 수기를 쓴 것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바람에 여론이 백팔십도 뒤집어졌다. 오메가 측에서 행한 폭행과 학대가 고스란히 담긴 책. 사실 누구나 알지만 쉬쉬해왔던 일일 것이다. 알파를 함부로 대하는 오메가는 지천에 널렸으니까.
생각하기도 싫군. 유중혁은 짧게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그 일 덕분에, 알파에 대한 처우는 꽤나 나아졌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래야 할 것이다. 유중혁은 모자를 고쳐 쓰며 손을 들어 초인종을 눌렀다. 달칵. 곧 화면에 희멀건 낯짝이 나타났다.
“누구세요?”
능청스레 묻는 목소리. 어이가 없다. 이 시간에 오라고 한 건 본인이면서. 유중혁은 미간을 좁히며 답했다.
“나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싱글싱글 웃는 얼굴. 화면이 꺼지고 곧 문에서 찰칵, 하고 쇠 잠금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유중혁은 안에서 문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잠시 고민했으나 금방 생각을 털어내고 직접 문고리를 돌렸다. 묵직한 현관문을 열어내고 안으로 걸음을 옮겨놓자 뒤편에서 자동으로 문이 닫혔다. 그리고…… 유중혁은 숨을 멈췄다.
코끝으로 스며드는 짙은 페로몬. 마스크를 쓰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순간적으로 머리가 어찔하다 느낄 정도였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오메가의 거주공간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건…… 그래, 이런 의미겠지. 젠장. 알파가 된 지 고작 3개월 남짓밖에 되지 않았으니 낯설 수밖에 없었다. 유중혁은 자신이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손으로 벽을 짚고 천천히 숨을 고르며 향에 익숙해질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
새삼스럽지만…… 이 녀석의 페로몬은, 상당히 좋은 향이 난다. 편백나무와 닮은 청량하면서도 눅진한 향기. 코끝에 오래 머물지는 않으나 어쩐지 계속해서 기억에 남는, 그런 희한한 향이었다.
이제 좀 괜찮은 것 같군. 유중혁은 마스크를 내리고 고개를 들었다. 널찍한 현관의 왼쪽 벽은 전면거울로 되어 있었고, 정면은 큼지막한 그림이 걸린 벽으로 막혀 있었는데 그 좌우로 길이 나 있었다. 현관에서부터 이렇게 벽으로 막아두면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나. 하지만 그런 면이 어쩐지 김독자답다고 생각했다. 신발을 벗어두고 슬리퍼를 신은 뒤 안쪽으로 들어가자 멀리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유중혁. 오른쪽.”
나와 보지도 않는 건가. 유중혁은 잠자코 오른쪽으로 몸을 틀었다. 높다란 천장과 탁 트인 거실. 베이지색을 테마로 한 듯한 인테리어였고, 널찍한 소파에 앉아 손을 흔드는 김독자가 보였다. 성큼성큼 걸어가자 일어서더니 마주 가까이 다가온다. 김독자가 걸어올수록 짙어지는 페로몬이 여실히 느껴졌고. 숨을 삼키며 바라보자 저를 올려다보던 김독자가 웃으며 손을 뻗어 선글라스를 벗겨냈다.
“잘 가리고 왔네. 모자에 마스크까지. 하여간 스타는 힘들다니까. 그치?”
“……오라고 한 주제에 말이 많군.”
서늘하게 대답하자 뭐가 재밌는지 소리 내서 웃고선 그대로 거침없이 손을 움직여 마스크까지 벗겨낸다. 정말이지, 거리감이 이상한 놈이군. 귓가에 닿았다가 떨어지는 손가락을 바라보며 유중혁은 모자를 벗어내고 머리를 털어냈다. 김독자의 손에 들려 있는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뺏어들고 테이블로 걸어가 위에 올려두었다. 몇 걸음 멀어졌을 뿐인데 숨쉬기가 한결 편해진다. 젠장, 가까이에 서 있으면 페로몬이 너무 강하게 느껴진다.
“뭐가 그렇게 불만이실까. 화났어?”
웃음기 섞인 목소리에 유중혁이 뒤를 돌아 노려봤으나 김독자는 아랑곳하지 않는 얼굴로 씩 웃었다.
“아, 미안. 깜빡했네.”
머리를 어지럽히던 페로몬이 거짓말처럼 줄어들었다. 유중혁은 저도 모르게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훨씬 낫군. 이곳저곳에 배어있는 것까지 사라지지는 않았으나, 김독자 본인에게서 나오는 페로몬은 확실히 사라진 것 같다. 곁에 다가와 선 김독자가 말했다.
“이제 좀 낫지?”
“……일부러 그랬나?”
“글쎄.”
눈을 접어 알랑거리며 웃더니 휙 몸을 옮겨 주방으로 향한다. 유중혁은 김독자에게 말려드는 듯한 기분을 떨쳐내기가 어려웠다. 잘못 고른 걸까.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었고, 김독자가 최선의 선택지였다는 건 확실했다. 14년이나 자신을 만나고 싶어 했다는, 자신에게 호감을 가진 상대. 무조건 이용해야만 한다. 유중혁은 뒷목을 쓸어내리며 주방으로 걸어갔다.
“저녁 먹었어?”
“먹었다.”
“다행이네. 뭐 마실 거라도 줄까?”
그렇게 말하며 벽면에 붙은 냉장고의 문을 열어 안을 살펴본다. 유중혁은 무의식중에 그 뒤로 다가가 냉장고를 함께 들여다봤다. 생수와 음료, 야채, 과일, 그리고 보관용기에 가지런히 담긴 반찬들. 의외인데, 비쩍 말라서 제대로 안 먹고 다니는 줄 알았더니.
“뭐가 좋…… 아, 깜짝이야. 언제 왔냐.”
뒤를 돌며 말하던 김독자가 깜짝 놀란 듯 몸을 조금 물렸다. 유중혁은 대꾸하지 않고 직접 손을 뻗어 생수병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뚜껑을 따며 식탁으로 걸어가 의자를 빼내 앉았다. 김독자는 픽 웃으며 마찬가지로 생수병을 하나 들고 맞은편으로 향했다. 뒤에 서있는 줄도 몰랐다. 그래도 알파니까, 페로몬을 조금은 감지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통제력이 장난이 아니다. 뭐…… 억제기구의 효과도 있으려나. 김독자는 유중혁의 목덜미를 잠시 바라보았다.
“효과는 좀 어떤 것 같아?”
목 부근을 바라보며 묻자 뭘 묻는 것인지 알아차린 듯했다. 유중혁은 손을 들어 목덜미를 만지작거리며 답했다.
“괜찮은 것 같다. 아마도.”
“아마도?”
“나보단 네가 더 잘 알 것 같은데.”
그 말에 김독자는 빙긋 웃었다. 그날 밤, 유중혁과의 만남 이후 김독자는 바로 <올림포스>로부터 샘플을 빼냈다. 그리고 연구를 중단시켰다. 이것을 시판할 예정은 앞으로도 영원히 없었다. 유중혁이 의심받을지도 모르는 정황은 하나라도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믿을 만한 인력을 통해 유중혁에게 억제기구를 이식했다. 크기는 손톱만큼 작았으나 뒷목에 이식해야 한다는 것이 단점이었지만, 흉터도 거의 안 남을 정도로 수술은 잘 끝났다고 했던가. 그게 벌써 한 달 전이다.
“그래. 효과 아주 탁월하네. 네가 뒤에 서 있는 것도 전혀 눈치 못 챘다.”
“다행이군. 효과가 없었으면…….”
시퍼런 눈으로 쏘아본다. 짜식, 으르렁대기는. 죽이기라도 하겠다. 김독자는 옅게 웃으며 옆에 놓인 종이와 만년필을 가까이 끌어왔다.
“자, 그럼 정식으로 계약서를 써 볼까.”
유중혁은 그다지 내키는 얼굴이 아니었다. 왜지? 중혁아, 너 구두계약 같은 거 믿으면 안 된다. 큰일나. 그렇게 말할 뻔했으나 한 박자 늦게 떠오른 생각에 그저 입을 다물었다. 하긴. 이 녀석…… 계약서 쓰고도 사기당한 경력이 두 번이나 있지. 김독자는 만년필 뚜껑을 열며 말했다.
“사기 안 칠 테니까 걱정 마.”
“…….”
하여간 의심만 많아가지고. 뭐, 김독자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자신이 믿음직스럽지 않게 보일 것 같기는 했다. 김독자는 종이에 펜촉을 사각사각 긁어내려갔다.
“네가 갑 해라, 유중혁.”
“갑을의 의미가 있나?”
“아니? 없지. 내용이 중요하니까.”
김독자는 노려보는 유중혁의 시선을 무시하며 계속해서 말했다.
“뭐부터 쓸까? 흠. 하나, 을은 갑의 부하가 아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공정히 대할 것.”
“……뭐지, 그 조항은.”
“농담이야.”
은은하게 느껴지던 시선이 한층 따가워졌다. 김독자는 모른 척하며 진지하게 조항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결혼 기간은 1년. 동의하지?”
“그래.”
펜촉이 사각거리며 움직였다.
“갑과 을은 앞으로 2달간 주 1회, 서로의 집을 왕래함으로서 갑작스런 결혼설에 대한 의심을 줄인다.”
“갑과 을은 식을 올린 날부터 동거를 시작하고 1년간 결혼 생활을 유지한다.”
“1년 후, 갑과 을 중 어느 한쪽이라도 결혼 생활의 유지를 원치 않을 경우 이혼한다.”
“을은 갑에게 수술을 이행한 사실을 죽을 때까지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는다.”
그 뒤로도 펜을 조금 더 움직였다. 그렇게 가장 기본적인 사항들만 적은 뒤 김독자는 만년필을 내려놓았다. 이것 외에도 당연히 걸고 싶은 조건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김독자가 유중혁에게 원하는 것들은, 이러한 조항들과 계약에 의한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본질적인 것이었으니까. 그걸 얻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김독자 본인에게 달린 일이다. 종이를 살펴보던 유중혁이 고개를 들었다.
“끝인가?”
“내가 보기엔 문제없어 보이는데. 더 추가하고 싶은 조항 있어?”
유중혁은 입을 다물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첫 만남 이후로 몇 번 더 만나긴 했지만…… 아직도 김독자라는 인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유중혁은, 김독자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들을 가만히 떠올렸다.
<김독자 컴퍼니>는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고작 10년 남짓한 기업. 거기에서부터 유중혁은 이상함을 느꼈다. 제약회사가 고작 10년 만에 이렇게 크게 성장한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2년 전 오메가용 억제제로 크게 히트를 쳤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신약은 개발을 위해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 그건 어디서 나왔다는 말인가. 그래서 조금 조사를 했고, 알게 되었다. <김독자 컴퍼니>의 배경에…… 절대 잊을 수 없는 이름이 있다는 것을.
<홍익>.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14살의 유중혁이 밑바닥까지 추락해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빛이 드는 곳까지 끌어올려줬던 손길을. 오로지 분노와 불신으로 가득 차 노려보던 눈길에도 불구하고 부드럽게 뺨을 쓸어주던 사람이었다. 이수경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 그녀는 알파였지만 무능한 오메가 남편을 대신해 <홍익>의 실질적인 권력을 쥐고 있었다. 물론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네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최소한의 구제만 도울게. 그 뒤로는 스스로 해결하렴.’
그리고 이수경은 정말로 그렇게 했다. 유중혁은 암흑 속에서 딛고 일어날 발판을 얻었고, 시간이 조금 걸리기는 했지만 직접 채무의 변제를 마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수경에게까지 빚을 갚으려 했을 때…… 그녀는 이미 바깥 세상에 없었다. <홍익>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유중혁은, 대단히 괴로웠다. 빚을 졌는데 갚을 곳이 사라졌다. 도움을 받았지만, 내가 도움을 줄 수 없는 곳에 가 있다. 그 기이한 구원의 방식에 스스로에게 환멸을 느꼈던 기억이 선명했다.
그리고 김독자는, 그런 이수경의 아들이었다.
“왜 그렇게 봐?”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으니 김독자가 웃으며 말했다. 웃는 얼굴이…… 닮았군. 틀림없는 그녀의 아들이다. 유중혁은 도저히 김독자의 속내를 짐작할 수 없었다. 어째서 나를 돕는지, 어째서 이렇게 불리하기 짝이 없는 계약 조건을 순순히 받아들이는지…….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그런 점마저 이수경과 닮아 있다는 것이 우스웠다. 왜 나를 도와주는 거죠? 그 질문에, 그걸 원하는 사람이 있어서, 라는 애매한 대답만 내놓았던 이수경 아니던가.
그래서 유중혁은, 다시 한 번 이유를 묻는 대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다. 이대로 하지.”
계약서의 하단에 두 사람의 지장이 나란히 찍혔다. 계약 성립이다, 중혁아. 그 목소리를 들으며 유중혁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이것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이 선택으로 인해 무언가가 크게 바뀔 것이라는, 알 수 없는 예감이 들었다.
유중혁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럼, 끝인가. 가보겠다.”
“응?”
김독자가 따라서 일어서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벌써 가게?”
“……그럼? 다른 할 것이 있나?”
되묻자,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는다. 김독자는 느릿하게 몸을 움직여 식탁에 비스듬히 기대앉았다.
“자고 가.”
은근하게 풍겨오는, 편백나무 향. 유중혁은 그 하얀 얼굴을 내려다봤다. 길고 촘촘한 속눈썹 아래 검은 눈동자가 별처럼 반짝인다. 예민해 보인다 느꼈던 첫인상과는 달리, 웃는 얼굴은…… 제법. 가느다란 손가락이 천천히 다가왔다. 마치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아주 느리게. 유중혁은 숨을 참으며 그 손가락 끝을 응시했다. 조금은 서늘한 감촉이 뺨에 닿고.
“……김독자.”
“무서워? 내가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
유중혁은 불쾌감을 드러내며 손을 가볍게 쳐냈다. 김독자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조금 소리 내서 웃을 뿐이었다.
“뭘 걱정해. 안 잡아먹을게.”
“그걸 지금 믿으라는 건가?”
“거짓말 아냐. 그리고…… 내가 뭘 어쩌겠어? 네가 싫으면 거절하면 되는 거잖아.”
유중혁의 굵은 눈썹이 미미하게 움직였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김독자. 웃기는 놈이군. 베타였던 시절에는 페로몬이라는 것에 휘둘리는 알파와 오메가들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알 수 있었다. 페로몬은 결코 우습게 볼만한 것이 아니었다. 이건, 이성의 영역을 넘어서 있다. 본능의 어느 지점을 은근하게 건드려오는 손길.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동안 만났던 오메가들의 페로몬은……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젠장. 오판이었다. 일을 하며 우성 오메가라는 자들도 만나봤지만 하나같이 향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래서 누군가 강한 페로몬을 흘리더라도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녀석은…….
유중혁은 흐려지는 정신을 다잡으려 애썼다. 허리께에서부터 은근한 열기가 올라왔다. 그저 한 번 닿았을 뿐인데 심박이 빨라진다. 무슨, 사춘기 중학생도 아니고. 스스로도 어이가 없을 정도로 몸이 달아올랐다. 김독자가 말갛게 웃더니 유중혁의 손을 붙잡았다. 그대로 들어 올려 제 뺨에 가져다 대고, 엄지손가락으로 입술을 쓸어 보인다. 조금 전 찍었던 지장의 인주가 조금 남아있었던 탓에 입술에 붉은 자국이 그려졌다. 유중혁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중혁아.”
“…….”
“키스할래?”
두 팔이 느릿하게 목덜미를 휘감았다. 속절없이 끌려가 코끝이 맞닿고, 그 작은 접촉에 머리가 저릿하게 울렸다. 김독자는 조용히 웃으며 속삭였다.
“싫으면, 지금 거절해.”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끊어졌다.
유중혁은 성급하게 고개를 숙여 김독자의 붉은 입술을 깨물었다. 핥아올리자 씁쓸한 맛이 맴돈다. 벌어진 입술 틈새로 혀를 밀어 넣어 얽었다. 그에 맞춰가듯 머릿속을 헤집어놓는 페로몬이 더욱 짙어졌다. 다른 무언가를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그저 몸이 닿는 부분마다 불이 붙은 듯 열이 오를 뿐이다. 질척한 키스가 정신없이 이어졌고, 식탁에 걸터앉아 있던 김독자의 몸이 점점 뒤로 넘어갔다. 가쁜 숨소리가 고요한 공간에 퍼져나갔다. 잡아먹을 듯 격렬한 입맞춤에 김독자의 입에서 옅은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중혁아…….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유중혁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하아…….”
유중혁은 당황한 얼굴로 자신의 두 팔 아래 갇혀있는 김독자를 내려다봤다. 하얀 식탁 위로 흩어진 가느다란 머리카락과 입가에 붉게 번진 인주. 새하얗던 뺨이 열기로 조금 달아올라 있고, 긴 속눈썹은 파르르 떨린다. 여운이 남은 듯한 더운 숨이 입술 사이로 비어져 나왔다. 유중혁은 눈을 질끈 감고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젠장. 더 보고 있다간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자 김독자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김독자. 당장 그만둬.”
간신히 입 밖으로 말을 꺼내놓자, 김독자는 순순히 페로몬을 갈무리했다. 유중혁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눈가를 문질렀다. 실수다. 이건, 명백한 실수다. 이래서는 안 됐다. 이성을 잃고 짐승처럼 본능에 휘둘리는 꼴이라니. 이래서 더더욱 얽히고 싶지 않았던 거다. 오메가에게 당했던 일들과는 별개로, 이렇게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으니까.
“중혁아.”
유중혁은 눈을 뜨고 그를 노려봤다. 무슨 짓이냐고 화를 낼 작정이었다. 그런데…… 김독자는 애매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그 표정에 유중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김독자가 제 입가를 조금 만지작거리더니 말했다.
“너, 오메가 진짜 싫어하는구나.”
“……당연하지 않나.”
“그럼 나도 싫어?”
도대체 뭘 묻는 걸까. 유중혁은 그 얼굴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어째서 그런 표정을 하는 거지? 그저 계약 관계다. 깊이 얽힐 필요도, 이유도 없다. 물론 녀석이 뭘 원하는 건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렇지만, 저렇게 괴로운 얼굴을 할 필요는 없지 않나. 도대체 왜. 유중혁은 문득 김독자에 대해 궁금해하는 자신을 깨닫고 경악했다.
머릿속에 사이렌이 울렸다.
이 녀석은, 위험하다.
유중혁은 대답 없이 몸을 돌렸다. 테이블에 올려뒀던 소지품들을 집어 빠른 걸음으로 집을 빠져나왔다. 무슨 정신으로 차에 올랐는지 모르겠다. 그저 깨달아보니 차가운 운전대를 붙잡고, 시동조차 걸어 넣지 못한 채 머리를 박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겨울의 서늘한 공기가 뜨거운 이마를 식히기를 기다렸지만…… 머릿속에서 김독자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았다. 입술이 닿는 순간 전기가 오르듯 짜릿하게 달아오르던 몸과, 이제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흥분감. 섞여든 타액은 이상할 정도로 달착지근했고, 담백하다 느꼈던 페로몬은 눅진하게 머리에 눌어붙었다. 그건…… 지나치게 기분이 좋았다. 위험할 정도로.
“젠장…….”
잇새로 새어 나오는 입김이 허공에 퍼져나간다. 하얗게 사라지는 잔상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유중혁은 눈을 꾹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