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중혁은 촛불을 켰다.
치직, 작은 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 잔잔한 불꽃이 하나 타올랐다. 오랫동안 잊혀진 장소인듯 이끼가 가득한 돌벽, 습한 공기, 지하 특유의 눅눅한 온도가 불쾌했다. 하지만, 저 안에 있는 것보다 더 불쾌한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이백 년 이상 지하에 갇혀 있던 존재. 그저 입을 꾹 다물고 걸음을 옮겼다. 교구 사람들은 모두 그를 만류했다.
‘가면 분명히 죽을 걸세. 그걸 다룰 수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세상에 없어.’
유중혁은 코웃음을 쳤다. 다룰 수 없다? 웃기지 마라. 고작 악마 한 놈일 뿐이다. 지금껏 제 손으로 죽이고 봉인한 악마들이 차고 넘쳤다. 그렇다면, 왜 ‘그걸’ 찾아왔느냐……. 그렇게 묻는다면. 유중혁은 이를 빠득 갈았다. 그래, 더욱 강력한 악마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강한 힘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게 써먹고 버릴 수 있는 똑같은 악마라면 더욱 좋은 일이지. 이이제이, 바로 그것을 실행할 것이다.
마침내 거대한 철문 앞에 도달했다. 유중혁은 말없이 마술적인 술식이 적힌 문 가운데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음각된 술식 틈새로 마치 핏물같은 붉은 빛이 번져나가고, 문은 잔뜩 삐걱대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안쪽은 빛 한점조차 없는 어둠이었다. 촛불조차 소용없었다. 육중한 공기가 몸을 짓눌렀다. 유중혁은 초를 버렸다. 어차피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혹시 모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허리춤에 매달린 서늘한 검자루에 손을 가져다 대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나와라. 구원의 마왕.”
우웅. 공기가 울부짖었다. 거대하고 강력하며, 범접할 수도, 가늠할 수도 없는 기운이 칼날처럼 새어나왔다. 피부를 찔러대듯 소름끼치는 공기.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틴어, 중국어, 영어, 이탈리아어. 쉴새없이 중얼대는 목소리. 유중혁은 다시 입을 열었다.
“장난치지 마라. 네가 그런 악마가 아니라는 건 이미 알고 있다.”
뚝, 소리가 멎었다. 잠시간의 정적이 지하 감옥을 휘감았다. 천천히, 시야가 밝아졌다. 빛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불가사의한 힘. 유중혁은 조금 긴장했다. 어느 정도로 강력한 존재인지 쉬이 가늠이 가지 않는다. 몸을 굳힌 채 쏘아보자,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새하얀 코트. 이마 위로 돋아난 두 뿔. 어깻죽지 너머로 펼쳐진 불길하리만치 검은 피막 날개. 다른 쌍의 날개로 가려져 있던 얼굴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창백하다시피 하얀 얼굴이었다. 유중혁은 조금 놀랐다. 얼굴만 본다면 대단히 평범한 인간처럼 보였으니까. 어쩌면 차림새 때문일지도 모른다. 코트라니.
감겨 있던 눈이 반짝 떠졌다. 어둠 속에서도 기이한 빛을 발하는 눈동자. 마치 갓 잠에서 깨어난 어린아이처럼 깜빡거리는 눈을 보며, 유중혁은 다시 입을 열었다.
“구원의 마왕.”
잠시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악마는 물끄러미 유중혁을 바라봤다. 목끝부터 발끝까지 잠긴 정갈한 사제복. 악마는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올해가 몇 년이지?”
뜬금없이 들려온 질문에 유중혁은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그래. 신중해야 한다……. 그래서 유중혁은 대답했다.
“2019년이다.”
“2019년. 그래, 그렇단 말이지…… 벌써 그렇게 됐어? 하하…….”
악마는 되풀이해 말하고는 한숨쉬듯 웃었다. 유중혁은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악마는 팔을 들어 코트 소맷자락으로 눈가를 닦아냈다. 뭐 하는 거지? 의문을 품으며 바라보자 악마가 다시 고개를 돌려 유중혁을 바라봤다.
“그래. 내가 구원의 마왕이야. 왜 나를 찾아왔지?”
그것이 대단히 지친 목소리였다고 한다면, 지나친 감상일까. 유중혁은 금방 생각을 지우고 대답했다.
“나와 계약해라. 구원의 마왕.”
“…….”
악마는 큭큭 웃었다. 이내 웃음소리는 더욱 커져 귀청이 터질 정도로 강하게 울려퍼졌다. 소름끼치는 감각에 유중혁은 칼을 뽑을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뭐가 우습지?”
“하하, 큭, 흐흐…… 아하하…….”
한참이나 미친 듯이 웃어대던 악마가 고개를 들었다.
“자신감이 대단하네. 네가 감당할 수 있겠어? 나를?”
악마의 하얀 손이 뻗어왔다. 그 손가락이 유중혁의 얼굴에 닿는 순간 파직, 스파크가 일었다. 악마는 급히 손을 물렸다.
“아하, 제법 강하네. 이 정도면…… 그래,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유중혁은 말없이 그를 노려보았다. 구원의 마왕. 아주 먼 옛날, 시간에 숫자가 붙여지기도 이전부터 존재해왔다고 알려진 고대의 악마. 그것은 악마였으나 악마 살해자였다. 언제나 인간의 부름에 응해 동족들을 끊임없이 죽여왔다. 그리고, 그 강대한 힘에 짓눌린 계약자들은 모두 미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래서 그것은 구원의 마왕이라 불렸다. 인간을 구원하고 끝내는 죽음으로 몰아넣었기에.
유중혁은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두 번 말하지 않겠다. 나와 계약해서, 악마를 살해해라. 구원의 마왕.”
악마의 흰 얼굴에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이 어렸다. 입술을 꾹 닫은 채 유중혁을 쳐다보던 그가 긴 침묵 끝에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믿어볼까.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들으며 유중혁은 시야를 뒤덮는 악마의 커다란 날개와, 흩날리는 검은 깃털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백 년 만에 나타난 ‘구원의 마왕’의 계약자가 되었다.
바야흐로 혼란의 시대였다. 신화 속 존재라고만 여겨졌던 악마들이 땅 위로 기어올라와 인간을 유린했다. 그와 대칭점을 맞추듯 잊혀진 힘이라고 알려졌던 영력을 되찾은 인간들이 고개를 들었다. 서로가 서로를 사냥하는 쳇바퀴가 끊임없이 되풀이되었다. 그 속에서 유중혁은, 가히 독보적이었다. 갑작스레 유성우처럼 등장한, 인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영력을 몸에 두른 사내. 그는 종교가 없었다. 신 같은 건 믿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한 모독적인 발언에도 불구하고 가톨릭은 그를 받아들였다. 유중혁도 편의를 위해 그에 동의했다. 그래서 그는 늘 사제복을 입었다. 사제보다도 더 금욕적인 서늘한 눈매와 거침없는 손속.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잘생긴 얼굴이 더해져 그는 정말이지 인간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누구도 말을 붙이기 어려워했다. 바로 어제까지는 말이다.
“중혁아. 여기 좀 봐보라니까?”
유중혁은 눈을 꾹 감으며 미간을 짚었다. 도대체가 이놈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다르지 않은가. 아니, 하다못해 처음 봤을 때와도. 유중혁은 어깨 위에서 꾸물대는 구원의 마왕을 흘끗 바라보았다. 손바닥 만큼 작아진 악마는 유중혁의 넓은 어깨에 자리를 잡고선 아주 편안하다는 듯이 다리를 통통 튀기고 있었다. 그 누가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악마라고 믿겠는가. 작게 돋아난 뿔과 여섯 장의 검은 날개만이 그가 악마라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었다.
“……그렇게 됐습니다.”
주교도 어이가 없는지 입을 살짝 벌렸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얼른 표정을 수습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다행이네. 자네가 무사해서.”
“당연한 일입니다.”
유중혁은 가감없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도 아무런 대책 없이 대악마와 계약하겠다고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는, 준비한 방법들을 쓸 새도 없이 계약이 성립됐지만. 구원의 마왕은 희게 웃고선 주교를 보고 킥킥 웃었다.
“그렇게 됐어. 잘 부탁해. 뭐, 어차피 당신이랑 더 만날 일을 없을 것 같지만.”
악마의 눈동자가 불길하게 빛났다. 문득 대악마의 눈동자에는 미약한 예지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주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유중혁은 쯧, 혀를 찼다.
“구원의 마왕. 장난치지 마라.”
“아, 들켰어?”
장난스레 웃더니 다리를 까딱거리며 즐거워한다. 이래서야 정말, 긴장감이 떨어지는군. 유중혁은 몰려오는 피로감을 느끼며 한숨을 쉬었다. 계약을 한 탓에 미약하게 정신이 연결된 느낌이 들었다. 썩 불쾌한 감각이다.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악마 따위와 계약하지는 않았을 텐데. 연결된 정신을 통해 유중혁의 기분을 느끼기라도 한 것인지 악마가 조금 웃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일이 잘 된다면 다시 돌아올 일은 없을 겁니다. 기도해 주십시오.”
“그, 그래. 알겠네. 부디 무사하길…….”
주교는 성호를 긋고는 그에게 묵주를 하나 쥐여주었다. 악마가 묵주를 보고선 구역질하는 시늉을 했다. 유중혁은 악마의 반응을 무시하며 말없이 그것을 받아들고, 오른팔에 감은 뒤 교구를 떠났다.
“예나 지금이나 십자가만 보면 구역질이 나.”
이제야 좀 악마다운 소리를 하는군. 유중혁은 팔을 들어 묵주 끝에서 달랑거리는 십자가를 그의 앞에 들이댔다. 악마가 기겁하며 포르르 날아올랐다.
“미친, 그거 저리 치워! 징그럽다고!”
웃기는 놈이군. 어디까지 가능한지 한 번 볼까. 일부러 더 가까이 하자 악마는 유중혁을 노려보더니 십자가를 끌어안았다. 파직, 작은 스파크가 일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유중혁만 쏘아보았다.
“이거 완전 악마보다 더한 놈이네. 어디 악마를 괴롭혀?”
“악마 따위에게 듣고 싶은 말은 아니군.”
확실히, 대악마이긴 한 모양이었다. 십자가 같은 작은 성물에조차 반응하는 것은 그만큼 강력하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동시에 그것에 직접 접촉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구원의 마왕의 강력함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유중혁은 계약 당시를 떠올렸다. 제 몸에 닿기만 해도 번개가 치듯 쏟아지던 스파크의 양. 손가락 하나 닿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상성이 정반대인 상대였다. 그래서 이런 작은 몸을 하고 있다고 했던가.
어느새 악마는 십자가를 놓아주고 다시 어깨 위에 앉아 있었다. 신기하다는 듯 주변을 휘휘 둘러보는 것이, 오랜만에 바깥에 나와 대단히 신이 난 모양이었다. 유중혁은 가만히 머릿속으로 할 일들을 떠올렸다. 일단은 동쪽에 있는 녀석들부터 죽여야겠군. 요즘은 그 쪽이 제일 시끄럽다. 그 다음은, 중국이던가. 남미 쪽도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할 일이 산더미군……. 하지만, 그다지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다들 쉽사리 손을 대지 못했던 강한 악마들을 자신이 상대한다면,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끼리도 처리할 수 있겠지. 그렇다면 지상에서 악마가 사라지는 것도 꿈이 아니다.
문득 시선이 느껴졌다. 구원의 마왕이 날개를 퍼득이며 날아올라 눈 앞에 섰다. 작아졌던 몸이 다시 원래 크기로 돌아왔고. 처음 봤을 때처럼 전신을 짓누르는 기운은 없었다. 억누르고 있는 건가. 유중혁은 새하얀 얼굴을 한 악마를 바라보았다. 악마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유중혁.”
가만히 이름을 부르더니 물끄러미 바라본다.
“너는 이 세상에서 악마를 전부 지워버리고 싶은 거지.”
“그래.”
유중혁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적의를 감추겠다 생각하지도 않았다. 오직 그것을 위해 악마와 계약까지 하지 않았던가. 악마는 눈을 깜빡였다. 느릿하게 입술이 열리고, 한숨같은 말이 새어나왔다.
“그 일이 전부 끝나면, 날 죽여줘.”
구원의 마왕이 눈을 휘어 웃었다.
유중혁은 거침없이 행보를 이어나갔다. 그가 방문하는 곳마다 강력한 악마들의 오체분시된 시체들만이 남았다. 아니, 사실 유중혁은 그다지 한 것이 없었다. 구원의 마왕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손을 한 번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제법 강한 악마들조차 예외없이 터져나갔다. 어떤 악마들은 그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성수에 절여진 듯 고통스러워하기도 했다. 유중혁은, 그것이 대단히 편리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생체병기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될까. 어차피 언젠가는 죽여야 할 놈이다. 그다지 말을 섞을 생각도, 구원의 마왕이라는 악마에 대해서 알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었다. 악마 같은 악랄한 종족과 무슨 대화를 한단 말인가. 말은 필요 없었다. 필요한 것은 힘과 학살뿐.
구원의 마왕이 손에서 뚝뚝 흘러내리는 검은 피를 털어냈다.
“유중혁. 언제까지 이런 잔챙이들만 사냥할 거야?”
붉은 입꼬리가 올라갔다. 유중혁은 미간을 좁혔다.
“네 힘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본 거다.”
“쓸데없이 신중한 놈이네.”
작은 웃음소리가 건조하게 울렸다. 유중혁도 슬슬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구원의 마왕의 힘을 확인했으니, 이제 정말 고위급 악마들을 잡으러 갈 때가 되었다. 그래서 유중혁은 그렇게 했다.
검은 머리칼을 어깨까지 기른 악마가 반색했다.
악마, 바르바토스의 등 너머로 저들끼리 싸우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이 보였다. 구원의 마왕은 그 꼴이 역겹다는 듯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이백 년이 지나도 여전히 하는 짓거리는 똑같네.”
“악마가 어디 가겠습니까? 이 꼴을 보는 게 제 낙인데요.”
그나저나 놀라운 일이군요. 이백 년 전에는, 제게 접근조차 하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이어지는 말에 유중혁은 눈썹을 들어올렸다.
“무슨 뜻이지?”
“아하, 당신이 계약자입니까? 흐음, 그래요.”
유중혁을 위아래로 훑어본 바르바토스는 웃었다.
“상당히 강하군요. 결국 내 차례까지 오다니, 이거 참.”
바르바토스는 큭큭 웃었다. 구원의 마왕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유중혁의 앞을 막아섰다.
“유중혁, 백업해.”
“어디서 명령질이지?”
“새끼, 하여간 비협조적이라니까.”
구원의 마왕은 소리내서 웃고는 날개를 펼쳤다. 검고 붉은 날개가 시야를 뒤덮었다. 유중혁은 등에서 검을 뽑으며 전투와 백업을 준비했다. 가히 멸망과 같은 모습이었다. 바람같이 날아드는 악마적인 힘이 담긴 총탄을 빛나는 검신이 갈랐다. 유중혁은 구원의 마왕의 손에 들린 하얀 검을 바라보았다. 저건, 처음 보는군. 확실히 강한 상대이긴 한 모양이었다. 두 악마의 대치는 끼어들 틈도 없이 격렬해 보였다. 대지가 갈라지고 천둥이 쳤다. 하지만 유중혁은 괜히 유중혁이 아니었으며, 정확하게 빈틈을 발견해내고는 달려들어 검을 내질렀다. 스각, 바르바토스의 팔이 잘려나갔다.
“이놈……!”
멈칫하며 뒤로 물러서는 사이 구원의 마왕의 망설임 없는 칼날이 놈의 몸을 세로로 양단했다. 갈라진 몸이 힘없이 뒤로 넘어갔다. 구원의 마왕은 그 머리통을 짓밟아 터뜨렸다.
“이렇게 안 하면 다시 살아나.”
“……질긴 놈이군.”
“웬만한 고위급 악마는 다 이래. 알아둬.”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유중혁은 뺨에 튄 핏물을 닦아내며 검을 털어냈다. 악마의 몸은 재가 되어 흩날리고 있었다. 구원의 마왕은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검을 집어넣었다. 지친 얼굴이었다. 저릿, 하고 유중혁의 머릿속이 울렸다. 아니다, 저건…… 지친 것이 아니라, 괴로운 것이다. 알고 싶지 않았지만.
그날 밤은 근처의 민간인 집에서 묵게 되었다. 거리가 온통 풍비박산이 난 탓에 숙소가 미어터졌던 탓이다. 다행히도 유중혁을 알아본 주민이 잘 곳을 마련해주겠다고 한 것이 다행이었다. 방은 하나뿐이었지만.
“악마라면서 공간이동 같은 것도 못 하나.”
“이게 무슨 판타지 소설인 줄 알아?”
악마는 손에 든 스마트폰을 연신 만지작거리며 대꾸했다. 판타지 소설이라니. 신문물에 적응이 지나치게 빠른 놈이다. 정작 현대인인 유중혁보다 더 빠삭한 것 같다. 유중혁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짐을 풀어놓은 뒤 방 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인 침대를 바라보았다.
“네가 침대에서 자. 난 안 자도 되니까.”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다.”
유중혁 피도 눈물도 없는 놈. 구원의 마왕이 욕설을 지껄이는 것이 들려왔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씻은 뒤 침대에 누웠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유중혁은 인간의 몸이고, 저 쪽은 인간이 아니다. 이 쪽이 더 효율적이다. 실제로 구원의 마왕은 거의 잠을 자지 않았다. 근 세 달간 행동을 함께 했지만, 자는 모습을 본 것이 손에 꼽았다. 그럴 때마다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실감하게 된다. 하지만…….
유중혁은 고개를 돌려, 의자에 앉아 창 너머를 바라보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뿔과 날개를 모두 집어넣은 모습. 하얀 뺨이 달빛을 받아 더욱 희게 빛났다. 저렇게 있으면, 새카만 눈동자와 머리카락만이 그가 악마임을 나타내는 유일한 증거인 것처럼 느껴졌다. 허공을 헤매며, 무언가를 그리는 듯한 시선. 인간보다도 더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유중혁은 재빨리 눈을 돌려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구원의 마왕은, 악마다.
언젠가는 제 손으로 죽여야 할.
그렇게 생각하며 유중혁은 눈을 감았다.
바르바토스의 소식을 들은 것인지 꼭꼭 숨어버린 악마들을 찾아내기가 어려워졌다. 처리하는 것보다 발견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구원의 마왕과 유중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며, 결국에는 늘 성공했다. 그렇게 찾아내 찢어죽인 고위급 악마의 수가 열 손가락을 넘어갔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군.”
“조심해. 다음 놈은 위험하니까.”
“알고 있다.”
유중혁은 말없이 저무는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악마 아스모데우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강력한 힘을 갖추게 될 놈이다. 빨리 처리할수록 좋다. 찾아내는 데 애를 먹는 바람에 이제야 도달하게 되었지만. 붉게 노을진 하늘이 불길하리만치 새카만 색으로 물들어갔다.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유중혁은 등 뒤로 손을 뻗어 까만 검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그것은 갑작스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유중혁은 몸을 긴장시킨 채 놈을 바라보았다. 작은 몸 주변으로 송곳처럼 날카로운 마기가 흘러넘쳤다. 커다란 눈을 깜빡인 악마가 웃었다.
“당신이 요즘 유명하다는 그 인간이군요?”
높고 아름다운 목소리. 유중혁은 당장이라도 검을 뽑을 듯 손에 힘을 줬다.
“저런, 긴장했나요? 그런 모습도 제법 마음에 들지만.”
소름끼치는 웃음소리가 귓가를 찔렀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검을 뽑아들려는 순간, 악마의 차가운 손가락이 뺨을 스쳤다. 눈 깜짝할 새 일어난 일이었다. 유중혁의 코앞에 선 악마는 그의 뺨을 쓰다듬으며 빙긋 웃었다.
“아름다운 얼굴이군요. 내 취향이에요. 어떤가요? 나랑 같이 가는 건.”
동시에 눈앞으로 새하얀 검의 잔상이 내리꽂혔다. 황급히 몸을 물린 아스모데우스가 그를 노려봤다. 검을 휘두른 구원의 마왕은 새파랗게 타오르는 눈으로 악마를 바라보았다.
“내 계약자에게 손대지 마라, 아스모데우스.”
아스모데우스가 웃었다. 눈가에 기묘한 빛이 어렸다.
“구원의 마왕, 오랜만이에요.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또 다시 인간의 개가 되었다는 소문이요. 유중혁은 뺨에 남은 불쾌한 감각을 씻어내려는 듯 소맷자락으로 북북 닦아내며 악마를 노려보았다. 아스모데우스는 계속해서 말했다.
“정말 실망이에요. 이백 년이나 갇혀 있었으면 슬슬 인간이 싫어질 때도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언제쯤 정신을 차릴 건가요? 당신은 악마잖아요.”
인간은 당신을 도구로 이용할 뿐이에요. 당신도 알잖아요. 아스모데우스의 말에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다. 구원의 마왕이, 크게 분노하고 있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지껄이지 마.”
“내가 모르는 게 있나요? 글쎄요, 아닌 것 같은데.”
악마의 붉은 입술이 홀리듯 부드러운 곡선을 그렸다.
“그렇지 않은가요? 악마 학살자, 구원의 마왕.”
까강, 새하얀 검날이 아스모데우스의 몸이 있던 자리를 내려그었다. 웃음소리만이 잔상처럼 남았다. 하늘로 날아오른 악마가 한껏 비웃음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죽일 건가요? 다른 모든 동족들을 살해했던 것처럼?”
구원의 마왕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검을 고쳐잡으며 유중혁을 흘끗 돌아볼 뿐이었다.
“물러나 있어. 저 놈은 위험해.”
“돕겠다.”
유중혁은 짧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 말의 의미를 알아챈 구원의 마왕은 조금 눈을 크게 떴다. 늘 주도권을 뺏기지 않으려 자신의 요구에 일절 응하지 않던 놈이다. 그런 자존심 강한 녀석이 ‘돕겠다’고 말한 것이다. 구원의 마왕은 작게 웃었다.
“놈은 널 노릴 거야. 그러니까 물러나 있어.”
유중혁이 고개를 저으려는 찰나 구원의 마왕이 다시 말했다.
“살아서, 날 죽여줘야지. 유중혁.”
하얀 미소를 남긴 대악마가 하늘을 가르고 날아올랐다. 일순 멈칫한 탓에 움직일 기회를 놓친 유중혁은 그 신형을 잠시 바라보다가 몸을 숨겼다. 전투를 지켜볼 수 있는 곳으로. 여차하면 백업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구원의 마왕은 유중혁이 끼어들 틈이라곤 주지 않겠다는 듯 맹공을 퍼부어댔다. 아스모데우스도 그에 지지 않고 힘을 쏟아냈다. 그것은 마치, 재앙이었다. 손이 닿지 않을 정도로 아득히 높은 곳에서 일어나는 전쟁이었다. 유중혁은 오랜만에 무력감을 느꼈다.
하늘에서 검은 핏물이 떨어져내렸다. 날개 한 쪽을 뜯긴 구원의 마왕이 아스모데우스의 머리에 칼날을 박아넣고 있었다. 두 악마는 나란히 추락했다. 콰앙, 커다란 소리와 함께 땅에 충돌한 몸체를 향해 유중혁은 다가갔다.
아스모데우스는 이미 목숨을 잃은 듯 몸 끝이 재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구원의 마왕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날개가 뜯겨져 나간 자리에서 핏물이 끊임없이 울컥대며 솟아났다. 온 몸이 상처투성이였다. 유중혁은 그의 곁에 가까이 가서 몸을 숙였다. 악마는 상처입은 짐승처럼 고개를 돌려 그를 외면했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상처에 가져다대려던 유중혁은 주먹을 말아쥐었다. 내가 손을 대봤자, 악화될 뿐이다. 작은 접촉으로도 반드시 스파크가 일어나고 만다. 유중혁은 입을 꾹 다문 채 한참이나 그를 바라보았다.
“구원의 마왕.”
그의 부름에 망설이던 악마가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쳤다. 그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육체적인 상처가 문제가 아니다. 그와 정신이 연결된 유중혁은 느낄 수 있었다. 구원의 마왕은, 슬퍼하고 있다.
“뭐가 그렇게 슬픈 거지.”
악마를, 동족을 죽인다는 게 슬픈 건가? 그렇게 물을 뻔했으나 그만두었다. 그게 답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원의 마왕은 조용히 고개를 떨궜다. 투둑, 투명한 물방울들이 땅 위로 떨어져내렸다. 소리도 없는 흐느낌이었다. 어떠한 악마도 이런 식으로 슬퍼하며 울지는 않는다. 유중혁은 그저 그의 곁에 앉아 가만히 기다렸다.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줄 수조차 없는 자신의 무력함을 곱씹으면서.
유중혁은 구원의 마왕에 대해서 생각했다. 첫째, 구원의 마왕은 악마다. 맞는 말이다. 둘째, 구원의 마왕은 가끔 지나치게 인간적이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유중혁은 약간의 혼란을 느꼈다. 그의 표정을 본 구원의 마왕이 작게 웃었다.
“뭐가 그렇게 고민이야, 중혁아.”
저런 식으로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말이다. 유중혁은 잠시 생각을 멈춘 채 그 말에서 오는 울림을 느꼈다. 악마들의 손에 가족을 모두 잃은 뒤로, 그를 저런 식으로 불러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악마 탓에 이름을 잃었는데, 그 이름을 다시 불러주는 것이 악마라니. 기이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래, 세상에는 이상한 일이 아주 많다. 그러니까, 내가 악마인 저 녀석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도……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유중혁은 물끄러미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뿔도 날개도 없는, 지친 인간의 모습. 악마와 인간의 구분점은 어디일까.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
“구원의 마왕.”
“응?”
“얼마나 오래 살았지?”
조금은 뜬금없는 질문이었을까.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
“중혁아, 그거 알아? 네가 나한테 뭐 물어보는 거 처음이다.”
“……그랬나.”
지금껏 일부러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그랬다간, 망설이게 될지도 몰랐으니까. 이해란 애정의 시작이다.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순간, 일이 크게 잘못될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유중혁은 질문을 철회하지 않았다.
“글쎄, 얼마나 오래 됐더라…….”
빛나는 눈동자가 허공을 헤맸다. 모르겠어. 숫자로 세기엔 너무 오래 살았거든. 말간 웃음소리. 유중혁은 그 소리를 들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너는, 처음부터 악마였나?”
“…….”
구원의 마왕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달빛처럼 처연하고 하얀 미소만을 지었을 뿐이다.
그날 밤, 유중혁은 이상한 소리에 잠에서 깼다. 뭐지? 그는 늘 긴장하며 잠을 잤고, 잠귀도 상당히 밝은 편이었다. 그것을 아는 구원의 마왕은 유중혁이 잘 때면 늘 쥐죽은 듯이 조용히 있었다. 그런데.
유중혁은 몸을 일으켜 소리의 근원을 찾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잠들어 있는 구원의 마왕으로부터 나는 소리였다. 아주 작은, 흐느낌 소리. 오랜만에 잠들어 있는 듯 눈은 감겨 있었다. 유중혁은 그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가 몸을 숙였다. 괴로움과 슬픔으로 잔뜩 일그러진 얼굴.
“……원아……”
꿈이라도 꾸는 건가? 유중혁은 가만히 그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희원아. 현성아…… 상아야. 유승아…….”
구원의 마왕은, 여러 이름들을 불렀다. 유중혁은 알지 못하는 이름들이었다.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제발…….”
그는 한참이나 더 흐느꼈다. 비명같은 울음소리가 잇새로 새어나왔다. 유중혁은 그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지독한 상실감, 자책, 고독, 자기혐오……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로 점철된 홍수 속에서 유중혁은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았다.
“구원의 마왕.”
손을 댈 수는 없었기에 이름을 불렀다. 아니, 이름인가? ‘구원의 마왕’은 이름이 아니었다. 그의 수식언일 뿐. 그렇다면…… 이 녀석의, 이름은 뭐지?
구원의 마왕은 여전히 깨어나지 않은 채 울고 있었다. 유중혁은 망설이다가 천천히 그의 어깨에 손을 가져다댔다. 이상하게도, 스파크는 일지 않았다. 정말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절대로, 그럴 리가 없는데. 이런 식이라면…… 점점 더, 이놈을 악마로 보기가 어려워지지 않는가.
유중혁은 그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간신히 꿈에서 깨어난 구원의 마왕이 눈꺼풀을 깜빡였다. 속눈썹이 팔랑거리며 눈가에 남은 눈물을 떨궈냈다. 그는 잠시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 듯 바르작거리다가 간신히 유중혁을 쳐다봤다.
“……유중혁?”
“그래. 나다.”
무언가 대단히 괴로운 듯 잔뜩 얼굴을 찌푸린 그가 유중혁의 옷자락을 끌어당겼다. 갑작스레 일어난 일인 탓에 유중혁은 속절없이 끌려갔다. 구원의 마왕이 유중혁의 어깨에 이마를 묻었다. 사라지기라도 할까 두렵다는 듯 옷자락을 잔뜩 그러쥔 채 흐느꼈다. 눈물이 옷을 적셨다.
“유중혁, 중혁아.”
“……그래.”
“너는 죽지 마. 넌 꼭 살아야 돼. 제발.”
부탁이야. 내 눈앞에서 죽어버리지 마……. 울면서 웅얼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유중혁은 천천히 손을 들어 그의 등을 쓸어내렸다. 다분히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여섯 장의 날개가 돋아나 있었을 등은 그런 적 없다는 듯 매끈하게 요철 하나 없었다. 얇은 천 너머로 전해지는 온기가 생각보다 너무나도 따뜻해서, 유중혁은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유중혁과 구원의 마왕은 이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팀이 되어 있었다. 지상의 악마들은 상당수가 재로 흩어졌다. 이제 남은 것은 정말로 강력해 그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손을 댈 수 없는 몇 대악마들이나, 너무나도 별볼일 없이 연약한 악마들 뿐이었다.
유중혁은 비행기 옆좌석에 앉은 구원의 마왕을 바라보았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흰 얼굴. 이전 같으면 대체 뭘 하나 싶었겠지만, 이제 유중혁은 알 수 있었다. 또 그 웹소설인지 뭔지를 보고 있는 모양이군. 표정을 보아하니 대단히 중요한 장면인 모양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재밌길래 그렇게 열심히 보는 것인지 조금 궁금해져서 자신도 찾아본 적이 있었다. 그다지 취향에는 맞지 않아서 그만뒀지만. 구원의 마왕은 웹소설을 보며 신나게 웃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생각보다 감수성이 풍부한 놈이었다.
그리고, 또. 유중혁은 그에 대해서 생각했다.
전투를 치르며 악마에게 상처를 입은 몸은 늘 빠르게 회복되었다. 자신보다 강한 자가 낸 상처가 아니면 대부분 금방 없어진다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악마인 구원의 마왕이었으니 대부분의 상처는 빠르게 낫는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다른 상처들은 그렇지 않았다. 가령, 뜨거운 것을 먹다가 덴 혀라든가. 자기가 요리를 해보겠답시고 나섰다가 칼에 손가락을 베였을 때라든가. 그런 상처들은 쉬이 낫지 않았다. 평범한 인간과 똑같은 속도로 아물었다. 그래서 유중혁은 혀를 차며 자잘한 상처들을 소독하고 연고를 바른 뒤 반창고를 붙여주고는 했다. 그러면 구원의 마왕은 신기하다는 듯 그것을 이리저리 돌려 쳐다보고는 했다. 그러면서, 고마워 중혁아, 하고 말해주는 게 조금은 좋았는지도 모른다. 그 말간 웃음이 조금 보기 좋다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상처가 다 나은 뒤 반창고를 떼어내는 구원의 마왕을 보며 유중혁은 생각했다. 어떤 상처들은 영영 아물지 않는지도 모른다고. 모든 상처들이 살이 붙고 제자리를 찾듯 아물 수 있었다면, 저 나뭇가지처럼 마르고 약해보이는 남자가 악몽이 두려워 잠을 자지 않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그는 잠을 자는 것을 무서워했다. 언제나 악몽을 꾼다고 했다. 육신이 한계에 달해 어쩔 수 없이 눈을 붙일 때면 어김없이 괴로워하면서 깨어나 유중혁이 그 자리에 있는지 확인하곤 했다. 유중혁은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그 오래되고 거대한 상처를 감내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내가 살아있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그걸로 되지 않는가.
그래서 유중혁은, 처음으로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악마들을 모두 죽이면, 그 다음엔 뭘 할 거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저 목적만을 위해 달려왔으니까. 막연한 느낌을 가진 적은 있었다. 아마도 그다지 좋은 미래는 아니었던 것 같다. 평범하게 산다는 느낌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유중혁은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구원의 마왕은 그에게 살아달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악마가 모두 사라져 평화로워진 세계라면,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비록 이미 모든 것을 잃어버린 후라고 해도, 어쩌면 다시 한 번. 그리고 만약 그 미래에…… 이 하얀 얼굴의 사내가 함께 있다면.
유중혁은 화들짝 놀라 몸을 움찔했다. 왜 그래? 기민하게 이상을 눈치챈 구원의 마왕이 물었다. 유중혁은 빠르게 치솟은 심박에 당황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 것도 아니다. 미친 것이 틀림없었다. 악마가 모두 사라진 세계라면, 구원의 마왕도 없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유중혁은 다시 생각했다. 악마란 뭐지?
그는 대답을 찾아냈다. 악마란, 악한 존재다.
그가 다시 물었다. 악하다는 건 뭐지?
그는 대답을 찾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선과 악으로 구분지어 인간과 악마를 나눌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인간보다 더 선한 구원의 마왕을 악마라고 해도 좋은 것인가.
어쩌면 아닐 지도 몰랐다. 그가 지금껏 생각해 온 인간과 악마의 이분법이 틀린 것일지도 몰랐다. 그래, 그렇다면, 그 미래에 구원의 마왕도 살아있을 수 있을지 모른다……. 유중혁은 고개를 돌려 입을 열었다.
“구원의 마왕.”
“응?”
“네 이름은 뭐지?”
구원의 마왕은 눈을 깜빡였다. 모로 기울어지는 고개.
“구원의 마왕이잖아?”
“그걸 물은 게 아니다. 네 진짜 이름이 뭐냐고.”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대답을 고민하는 듯 천천히 내리감겼다가 떠지는 눈.
“이름은 따로 있어.”
역시나 그렇군. 다시 물으려는 순간, 그가 한발 먼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네가 그걸 부르진 않았으면 좋겠어.”
유중혁은 입을 다물었다. 무슨 뜻이지?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익숙치 않은가? 혹은, 내가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싫은 것인가. 유중혁의 복잡한 심경과는 상관없이 구원의 마왕이 웃었다.
“내 이름은 김독자야. 그리고 네게는 구원의 마왕이지. 그거면 충분하잖아.”
그치? 중혁아. 빙긋 웃는 그 얼굴을 보며, 유중혁은…… 조금 참담한 기분을 느꼈다.
하늘이 새카맣게 불타올랐다. 대지가 새빨갛게 물들었다.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유황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잿더미가 된 세계. 유중혁은 갈라지는 땅 위에 선 채 피가 흐르는 어깨를 꾸욱 눌러 지혈을 시도했다. 영력으로 막아두기엔 역부족일 정도로 깊게 패인 상처였다. 팔이 잘려나가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로. 유중혁은 고개를 들었다. 무언가가 빠르게 추락하고 있었다. 그는 지상으로 내려꽂히는 구원의 마왕의 신형을 향해 달렸다. 뽀얀 먼지구름을 걷어내고 일어선 구원의 마왕은 입으로 핏물을 토해내며 유중혁을 돌아봤다. 주변으로 기어드는 하급 악마들을 베어낸 유중혁이 물었다.
“괜찮나?”
“그래. 조금만 더 버텨. 곧 끝날 테니까.”
입가를 닦은 그가 웃었다. 유중혁은 조금 안심하는 자신을 느끼며 하늘을 뒤덮은 시커먼 마기를 바라보았다. 지상에 남은 마지막 악마. 과연 강력한 힘이었다. 구원의 마왕은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끌어내 그를 상대했고, 그 탓에 유중혁 또한 영력이 잔뜩 빨려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버틸 것이다. 눈앞에서 죽지 말라고 했으니까. 살아있으라고…… 말했으니까. 유중혁은 남은 힘을 끌어모으며 미처 도망치지 못한 인간들을 구해냈다. 하늘에서 번개가 내려쳤다. 두 악마가 부딪히며 공기에 파문이 일었다.
그리고 마침내, 검은 하늘이 갈라졌다.
유중혁은 숨을 몰아쉬며 빛이 새어드는 곳을 올려다봤다. 재로 산화하는 거대한 마기. 그리고, 새하얀 코트자락을 흩날리며 마찬가지로 새하얀 검을 손에 쥔 남자가 유중혁의 곁으로 날아들었다. 끝났다. 정말로 전부 끝난 것이다. 유중혁은 호흡을 고르려 애쓰며 가까워지는 구원의 마왕을 바라봤다. 온몸에, 온갖 상처를 입은 그는 마침내 유중혁의 앞까지 다가왔다. 하지만…… 구원의 마왕은 땅에 내려서지 않았다. 지상으로부터 조금 위에 몸을 띄운 채, 유중혁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유중혁이 그를 부르려는 순간, 그의 입이 열렸다.
“유중혁.”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검을 뽑아.”
뭐? 유중혁은 이해하지 못할 말을 들은 것처럼 몸을 굳혔다. 유중혁이 움직이지 않자 구원의 마왕이 다시 한 번 말했다.
“유중혁, 검을 뽑아. 어서.”
그러면서, 자신의 하얀 검을 발치에 툭 떨어뜨렸다. 눈을 접어 빙그레 웃는 얼굴.
“날 죽여줘야지. 약속했잖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아득해졌다. 방금 무슨 소리를 한 거지, 구원의 마왕. 되물으려 했으나 어떤 거대한 힘이 몸을 휘감았다. 팔목에 묶여 있던 묵주가 진동했다. 오랜 약속의 언어가 둘을 구속했다. 유중혁은 깨달았다. 아, 그렇군. 이 계약은……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난다.
그제야 유중혁은 모든 것을 이해했다. 이제야 알겠군. 구원의 마왕, 그런 거였어. 그는 언제나 인간들과 그런 계약을 했다. 인간들의 뜻에 따라 악마를 살해해주는 대신, 끝에서는 자신을 죽여주기로 약속하는, 그런 계약. 머릿속으로 그의 기억들이 끊임없이 흘러들어왔다.
미안해요. 나는 역시, 못 하겠어.
머리를 틀어올린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미안합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제가 죽겠습니다.
듬직한 체구의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금까지 고마웠어요. 그러니까, 당신은 행복해지세요.
아저씨, 난 후회하지 않아요. 지금 행복하니까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의 눈앞에서 자살했다. 일견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하지만, 유중혁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구원의 마왕은 언제나 계약자를…… 인간을 사랑했으며, 그들을 위해 기꺼이 상처입었다. 목으로 칼이 겨누어지는 순간에도 그 앞을 막아섰다. 몇 번이고 팔이 잘리고, 눈을 잃고, 걸어다닐 다리를 잃고 날개가 쥐어뜯기는 한이 있어도 그들을 지켰다. 유중혁 또한 마찬가지였다. 구원의 마왕은 수십 수백 번 그의 목숨을 구했다. 자신의 목숨을 내던져가면서.
그런 사람을, 어떻게 또 죽일 수 있을까. 내 손으로.
유중혁은 웃었다. 동시에, 분노했다.
“그래서 그런 말을 했었나?”
스르릉, 새카만 검신이 드러나며 눈에서 불길이 일었다.
“그래서 살아있으라고 했나. 끝내는, 너를 죽여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
위선이고 기만이었다. 배신당한 느낌이었다. 아니, 아니다……. 유중혁은 다시 생각했다. 무엇이 위선이고 기만이란 말인가? 구원의 마왕은 늘 자신이 말한 바를 지켰다. 유중혁 또한 그와 약속하지 않았었는가. 이 모든 일이 끝나면, 그를 죽여주겠다고. 스스로의 의지로 맹세하지 않았었는가.
그렇기에 맺어진 계약이었다. 구원의 마왕은 처음과 똑같았다. 변한 것은 자신의 감정뿐이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어째서. 어째서 내가 너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을 막지 않았지. 어째서 더 차갑게 굴지 않았지? 왜 나를 경멸하고 무시하지 않았지. 그랬다면, 나는……. 검을 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부질없는 질문이었다. 아무리 모질게 굴더라도 결국은 말뿐이다. 그는 수없이 많이 몸을 던져 그를 구했을 것이며, 때로 어떤 행동들은 말보다 더욱 큰 의미를 전달한다. 그러니 차가운 말이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유중혁은 이미 알고 있는데. 구원의 마왕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눈가로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유중혁은 구원의 마왕을 향해 검을 겨눴다. 그는 기쁜 듯이 웃었다. 휘어진 눈매에서 애정이 드러났다.
“너라면 할 수 있을 줄 알았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속는 셈치고 시작했는데, 드디어 결말에 도달했네.”
빠득, 이가 갈렸다.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검을 쥔 손이 파르르 떨렸다. 구원의 마왕은, 아니. 김독자는…… 지친 표정이었다.
“너무 오래 살았어. 기억도 잘 나지 않을 정도로.”
그러니까 이제 그만 쉬고 싶어. 다 잊어버리기 전에, 차라리.
지난한 세월의 무게가 먼지를 털어내듯 퍼져나갔다. 유중혁은 그 숭고한 절망 앞에서 함께 절망했다. 구원의 마왕, 이게 네가 바라는 결말이었나. 유중혁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구원의 마왕.”
“응.”
“……김독자.”
그는 잠시 눈을 크게 떴다. 그러더니 이내 웃었다.
“그래, 중혁아.”
목이 갈라졌다. 타는 공기가 건조했다. 하지만 유중혁은 계속해서 말했다. 반드시 해야 할 말을.
“김독자,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가 당황한 듯 멈칫했다. 쉴새없이 깜빡거리는 눈. 유중혁은 칼을 쥐지 않은 다른 손으로 그의 팔을 끌어당겼다. 붕 떠 있던 그 몸은 맥없이 끌려내려와 품안으로 들어왔다. 마른 몸이었다. 그 등을 으스러지게 껴안으며 유중혁은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네가 가장 바라는 걸 이루어주겠다.”
계약의 막바지에 다다른 둘의 정신은 완전히 연결되어 있었다. 유중혁은 조용히 말했다.
“죽고 싶다면 죽여주겠다. 하지만, 그게 정말 네가 바라는 것인가.”
그 물음에, 김독자는…… 천천히 몸을 떨었다. 피묻은 손이 유중혁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죽고 싶어.”
그 말은 유중혁에게 이렇게 들렸다. 「사실은 죽고 싶지 않아.」
“더 고통스럽기 전에 죽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죽는 것밖에 방법이 없어.」
“중혁아, 나는……”
울음을 삼킨 김독자가 그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그것은 더 이상 악마가 아니었다. 오랜 세월 괴로워했던 한 인간만이 남아 있었다.
“김독자.”
“……응.”
유중혁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이어진 채로 들려오는 그의 과거를 머릿속에 담으며.
“너는 원래 인간이었군.”
“그래. 인간이었어.”
“그런데 마왕이 되기로 결심했군.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응.”
유중혁은 가만히 생각했다. 원래 인간이었다면, 죽었을 때…… 다시 한 번, 인간으로 태어나는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 영혼은 윤회한다고 하지 않던가. 김독자가 조금 웃었다.
“유중혁. 너, 사제복 입고 그런 생각을 하면 어떡해. 죽으면 너는 천국에 가고, 나는 지옥에 간다고 생각해야 하는 거 아냐?”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말했을 텐데.”
신이 있다면…… 이런 끔찍한 일을, 지상에 내리진 않았을 테니까. 유중혁의 생각을 전달받은 김독자가 말없이 그의 등을 끌어안고 토닥였다. 괜찮아, 라고 말하듯이. 가만히 그 손길을 받던 유중혁이 천천히 몸을 물리고 검을 들었다. 유중혁이 무엇을 하려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김독자는…… 웃었다.
그는 눈을 감은 채 팔을 벌렸다. 말갛게 부서지는 미소.
“또 만나자, 유중혁.”
새카만 검날이 허공을 갈랐다.
세상이 복구되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이미 완전히 세계를 구한 영웅 취급을 받게 된 유중혁은 빠르게 모든 것을 버렸다. 누구도 그를 찾아 귀찮게 굴며, 상처를, 희망을 헤집어내지 못하도록. 간혹 봉사활동 현장에서 그와 닮은 남자를 봤다는 증언이 이어졌지만 끝내 행적은 찾을 수 없었다.
유중혁은 조용히 새하얀 비석을 쓰다듬었다. 차갑지만, 금방 따뜻하게 데워지는 돌. 묘비마저 김독자와 닮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무덤 같은 건 없었다. 악마의 몸은 재로 화했으니까. 그 재는 하늘로 날아갔기에, 유중혁은 그저 그를 기억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이것을 만들었다.
김독자. 유중혁은 그 이름을 불렀다. 언젠가는, 그래. 언젠가……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고, 그러니까…… 찾아내겠다고. 기다리라고. 그런 말들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행동으로 전달될 것이라고 믿었기에. 그가 그랬듯이.
따뜻한 바람이 뺨을 스쳤다. 세계에 다시, 봄이 오고 있었다.